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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Dec 03. 2022

명동이 살아났다.

코로나의 늪에서, 내 마음에서.

 소공동 신세계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장식이 볼 만하다고 하여 12월의 첫 주말을 맞아 아이들과 서울 구경을 다녀 왔다. 코로나의 늪에 빠진 지난 2년여 동안 세계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 중 한 곳이 명동이라고 생각한다. 작년, 재작년에 명동 성당 구유 구경도 할 겸 연말에 명동에 갈 때마다 길거리 간식도 거의 없어지고, 상가 공실도 너무 많아지고, 사람이 없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던 명동의 거리를 보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었는데, 그래서 올 해도 어느 정도는 한가하려니 생각하고 구경을 나갔는데 생각보다 너무 사람이 많고 복작거려 옛 정취가 느껴져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오랜만의 북적임에 신이 났다.



나의 20대 초반 대학시절을 돌이켜보면 언제나 명동이 배경화면처럼 등장한다. 충무로에서 술국에 소주를 먹고, 남산 1호 터널을 나오면 바로 있는 부산 오뎅집에서 오뎅 한 두 꼬치에 사케를 마시고, 피맛골에서 임연수 튀김에 막걸리를 먹고, 명동 롯데 맞은편에서 좌석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일이 태반이었기에, 명동은 새내기 시절, 서울로 통학하는 설렘을 지나고서는, 그저 일상으로 지나가는 길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곳이었다. 한국인의 쇼핑의 메카에서 어느새 외국인 관광객의 거리가 되어 버려 복잡해지고, 비싸 지고, 한국인이라고 역차별을 받는 일이 몇 번 생기고서는 명동은 그냥 버스를 타는 곳이 되었고, 명동 성당 말고는 볼 것도, 볼 일도 없어져버린 곳이 되어버린 것이다. 명동에 대해 묻는 중국인 친구에게, 미국인 친구에게 우리 한국인들은 명동 별로 안 다녀, 안 좋아해.라고 말하기도 했다. We Koreans don’t really go to Myeong dong. 我们韩国人不怎么喜欢明洞。라고 일반화시키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때는 정말 그랬다. 진심으로.


그러던 명동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는 가기가 힘든 곳이 되었다. 애 데리고 좌석버스를 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차를 타고 가려면 경부고속도로가 너무 밀리고 주차 자리도 마땅치가 않다. 아이들 데리고 갈 식당 찾기도 힘들며, 유모차를 끌고 혹은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다니기엔 너무 사람이 너무 많아 어쩌다 볼일이 있을 때나, (미국에서 고모부가 오신다거나, 결혼식이 있다거나) 겨우 갈까 말까 한 곳이 되었다. 그것도 코로나 이전에.


코로나 이전의 명동

코로나가 터지고는 2020년 연말에 한 번, 2021년 연말에 한 번 아이들과 간 것이 전부였다. 명동성당에 구유 구경을 하러, 코로나 사태 이후의 명동거리는 눈물이 날 정도로 휑했다. 상가는 다 공실로 변했고, 길거리 간식들은 자취를 감추었으며 외국인도, 한국인도 구경하기 어려워진 이름뿐인 번화가. 번화가가 번화가일 때, 번화가라서 싫었지만, 번화가가 타의로 번화가가 아니게 되어 쓸쓸해진 광경엔 나도 괜스레 슬퍼졌다. 코로나로 일상이 묶인 것도 서러운데 나의 20대의 추억까지 같이 지워진 것 같은 서운함이 들어서 말이다. 이 명동의 상인들은 코로나 시기를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걱정도 되고 말이다. 그게 바로 1년 전인데, 오늘 방문한 명동의 거리는 예전의 모습을, 그러니까 내가 싫어하던 명동의 모습을 어느 정도 되찾은 상태였다. 전성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어디나 사람들로 북적였고, 외국인 관광객의 모습도 많이 눈에 띄었으며, 무엇보다 길거리 간식 노점이 성황을 이루어 나도, 아이들도 신나게 구경을 하고 사고, 먹었다. 제일 신이 났던 건 바로 나.


코로나 시국 쓸쓸하던 명동 거리.


거리마다 화려하게 크리스마스로 장식이 되어 설레었다. 옛날엔 초대형 크리스마스트리를 봐도 지금과 같은 설렘, 기쁨을 느끼진 못했다. 아마 매일 지나가면서 보는 흔한 광경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가씨였고, 매일 번화가를 지나다녔고, 언제나 양말이나 장갑, 모자 같은 간단한 물건들을 지나가며 구경하고 살 수 있었고 길거리 간식의 냄새도 너무 익숙하여 오감을 자극하지 않았다. 오늘의 나는 아니었다. 사람 구경이 재미있었고, 길거리에서 양말을 구경하며 신이 났고, 길거리 간식의 냄새에 코를 킁킁 거리며 이제는 과식은 커녕 정량 먹는 것도 힘들어 진 위장이 원망스러웠다. 이럴 때는 내일 먹을 능력을 땡겨다 쓰고 싶은데 그런 가불도 불가한 나의 위장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길거리 간식!!! 어디보자!!

우리 한국인들은 명동 같은데 잘 안 다닌다고 퉁명스럽게 얘기하던, 옛날의 내가 아니었다. 나도 명동이 너무 재밌고, 신나고, 맛있고, 설레었다. 하마터면 길거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뻔했다. 예전엔 명동 거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외국인을 보며 여기가 그럴 정도인가? 생각했는데 명동의 귀환이 너무나 반가워 명동의 번화함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뻔했다. 아이들의 손을 잡아야 해서 그러진 못했지만.


명동살아나서 좋다. 코로나의 늪으로부터 살아 돌아온 것 같아 반갑고, 나의 마음속에도 명동의 설렘을 되찾은 것 같아 기쁘다. 명동에서 설레던 나는 20대 초반이었기에 오늘의 설렘으로 스무 살의 나를 만난 것 같아 반가웠다. 번화가의 복잡함에 진저리를 내고 시큰둥하던 내가 사람 구경하며 좋아하다니, 다시 소녀가 된 걸까, 나이가 들은 걸까.


반가워 명동. 코로나의 상처를 잊고, 나의 심드렁함에서 벗어나, 거리에서, 내 마음에서  다시 예전이 활기를 되찾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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