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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가나나 Feb 02. 2022

2022 제주(걷자, 걷자 사계해안을...)

산방산, 용머리 해안을 거쳐 사계해안을 걷는다. 용머리 해안로를 따라 사계해안으로 진입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는 사계 마을을 구경하며 가기로 했다. 마을로 가는 길에 인도는 없다. 아슬아슬 갓길을 걷는다. 한쪽으로는 푸른 대파밭이 펼쳐져있고 뒤로는 산방산이 우뚝 솟아 균형을 맞춘다.

"제주도 대파가 유명한가?"

대파밭 옆에 또 대파밭 그 옆에 또 대파밭... 끝없이 이어지는 대파밭 덕분에 잡초도 대파로 보일 지경이 될 때쯤 생긴 의문이다.

"글쎄..."그가 대답하고 검색을 한다.

"유명한지는 모르겠는데 월동 경작물이라네..."

뭐, 그렇다면 의문풀린다. 밭 하나에 여러 가지 작물을 재배하나 보다.


마을로 들어가니 돌담 안에 놓인 작은 농가주택들이 아기자기하다. 내가 생각한 제주의 모습, 그사이에 어울리지 않는 건물이 서있다.


사계리 꿈드림 문화숲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북카페로 책 대여는 사계리 주민만 가능하고 외지인은 커피를 마시거나 책을 읽을 수 있다.



무인으로 운영되고 코로나 19로 인해 방문객들은 제주 안심체크, 혹은 방명록 작성을 해야 한다. 음료 과자는 모두 1천 원. 과일은 무료로 먹을 수 있는 제주도에서 가장 혜자스러운 장소다. 이 장소를 오래도록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신의 예쁜 마음"이 필요한 곳이기도 하다.


전면 책장에 꽂혀있는 그림동화는 잠깐 쉬어가는 우리 같은 사람에게 잠깐의 쉼을 선물한다.

따듯한 커피 한잔과 마음의 책 한 권,

"그래 이게 제주지"





꿈드림 문화숲에서 커피 한잔 마시고 마을을 가로질러 샛길로 나오면 사계해안사구가 나온다. 이곳은 제주올레 10코스로 흰 물떼새가 3~6월에 알을 낳기에 출입이 통제되는 경우도 있다.

 

해안사구를 사이에 두고 도로와 바다가 나뉘어 있는데 바다는 보이지 않고 바람과 파도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온다.

'우~~ 우~~~ 우~~ 싹'

"저기 너머에 바다가 있나봐!" 아무도 없는 곳에서 소리친다. 왠지 모를 기대와 벅차오름이 저너머에 있다.


해안사구를 올라가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제주의 바람과, 바다와 말. 말발굽 소리는 모래와 바람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하얀 파도가 부서져 멀어지는 그곳은 하늘과 육지가 만나는 지점일까.


제주올레 10코스를 따라 걷는다. 어디까지 걸을 거냐는 남편의 물음에 "송악산 까지"라고 답해버렸다.

"걸을 수 있겠어?"그가 다시 묻는다.

"오빠만 괜찮다면!"


해안사구를 지나 사람발자국과 새 발자국이 찍혀 있다는 사계화석발굴지를 지난다.


점점 산방산이 멀어지고


형제섬이 가까이 보일때


송악산이 가까워졌다.

여기서 또 한 번 남편은 나를 시험한다.

"송악산 올라갈 거야?"

"....."

"안가????"

"응, 사실........ 진지 동굴 보러 온 건데!!"

난 다 생각이 있었다. 산방산이 멀어지는 걸 느꼈을 때 많이 지쳐있었고 송악산을 가는건 무리라는 걸 깨달았다. 그때 생각난 게 있었으니 제주공항 관광안내센터에서 가져온 책에서 봤던 '진지 동굴'이다.

남편은 "동굴???"이라며 내 얼굴을 쳐다본다.




1945년 무렵 건립된 진지동굴은 일제강점기 말 패전에 직면한 일본군이 해상으로 들어오는 연합군 함대를 향해 소형 선박을 이용한 자살 폭파 공격을 하기 위해 구축한 군사 시설이다. 그 형태는 일자형, H형, 디귿자형 등으로 되어 있으며 제주도의 남동쪽에 있는 송악산 해안절벽을 따라 17기가 만들어졌다.

제주도 주민을 강제 동원하여 해안 절벽을 뚫어 만든 이 시설물은 일제 침략의 현장을 생생하게 증언함과 더불어 참혹한 죽음이 강요되는 전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제주 관광청>


현재는 관광객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진지 동굴 초입까지 가면  송악산 해안절벽을 따라 구멍이 뚫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픔의 역사, 일제강점기. 일본은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기고 35년 만인 1945년 떠났다. 떠나는 순간까지 대한민국 이곳저곳에 난도질을 해놓고 말이다. 우리는 언제나 그것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도려내지 않고 보존한다. 대한민국 역사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되새기면서 말이다.



진지동굴을 멀리서 바라보고 송악산 초입 공원으로 향한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송악산이라고 적힌 표지석이 있다. 비록 오르진 않았지만 오른 척은 할 수 있겠지 싶어 사진 한 장을 남기고 돌아간다.


오늘 우리에게 제주란 "파도, 바람, 역사"다. 산방산에서 봤던 바람구멍, 해안사구 너머에서 들려온 파도소리, 아픔의 역사로 남아 있는 17기의 동굴.

용머리 해안에서 봤던 켜켜이 쌓인 제주의 시간은 파도, 바람, 역사와 함께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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