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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가나나 Feb 17. 2021

통영에 오게 된다면 통영딸기를 사 가세요.

고향에 내려온 지 3일이 지났다. 백수가 되고 세계여행을 계획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한 달에 2~3주씩 고향인 통영에서 지내고 있는데 이번 달로 꼭 3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나의 유년은 항상 중2병에 시달렸던 것처럼 두 볼을 달아오르게 할 만한 추억이 많았고 타향살이를 시작하고부터는 왜인지 고향방문을 꺼리게 됐었다. 모처럼 기회가 되어 통영에 머무르며 고향을 오감으로 느끼는 중이다.



항상 경부고속도로를 빠져나와 통영-대전 간 고속도로에 차를 올리면 '우리나라에 산이 많구나.'라며 새삼 놀란다. 4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동생집에 짐을 푼다. 빈집은 우리가 떠나올 때 모습 그대로다. 찬 온돌바닥을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 걷는다. 커튼 걷어 내고 보일러를 켠다. 햇살이 비친 주방과 거실, 그리고 그곳에 서서 내려다 보이는 나부동산과 은은한 바다는 절정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올 때마다 봄 같은 날씨를 선물해 줬던 남쪽의 고향인데 이번엔 고약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어제, 오늘 한파 주의보가 내렸다. 오래된 알루미늄 샷시가 바람에 흔들리며 쇳소리를 낸다. 위이이~ 윙~위잉~ 하는 바람소리도 요란하다. 바람 부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바람이 부는지도 모를 청명한 하늘을 보며 남편은 "우리가 날을 잘못 골라서 내려왔나..."라며 볼멘소리를 한다. 근 3일 동안 추워서 나가지 못하고 내내 집에 앉아 이불만 뒤집어쓰고 있으니 답답할 법도 하다.


오늘도 오전 내내 이불속에서 뒹굴거리다 해안로 드라이브라도 하자면 나갔다. 통영반도 쪽으로 나가지 않고 미륵도 안에 있는 산양일주로를 따라 달린다. 좀 천천히 달리고 싶은데 뒤쫓아 오는 차들이 답답해 하는 눈치다. 비상 깜빡이를 켜고 길을 비켜주길 반복한다. 이렇게 달릴 바에는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하고 집에서 가지고 온 커피를 마시는 게 좋을 것 같아 세포마을에 차를 세우고 작은 바다를 바라본다.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는 원앙무리는 그 자체만으로 아름답다. 잔잔한 수면 위에 바람이 지나가고 파르르 떨린다. 일순 물보라가 일며 작은 물 조각이 비처럼 내리다 바다의 수면 위로 사라진다. 남편은 옆에서 계속 "우와, 우와, 저것 좀 봐."라며 탄성을 지르고 난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응, 아, 어"정도의 장단을 맞춰준다.


같은 자리에 30분 남짓 있으니 슬슬 지겨워진다. "이제 돌아갈까?"말을 먼저 꺼낸 건 내쪽이었지만 남편은 진작에 시동을 걸고 있었다. 지나왔던 길을 돌아가며 왜인지 집으로 그냥 돌아가기가 아쉽다.

"시장 구경이라도 갈까?"

"글쎄..." 남편은 시큰둥한 표정이다.

"집 근처 마트라도 들릴까?"

남편은 마지못해 집 근처 마트로 행선지를 변경했다.

마트에 들러 장을 봤다. 남편은 오래된 맨션에 자꾸 바람이 든다며 다이소에서 문풍지를 고른다. 나는 과일 코너를 돌아보는데 '수, 목 돌풍'이라고 적힌 알록달록한 종이가 곳곳에 붙었다. '날을 잘 골랐네.'오랜만에 쇼핑할 생각에 들떴다. '원산지 : 국내산'이라고 적힌 '대야 딸기'를 앞에 두고 몇 대야를 살지 고민 중인데 슬며시 다가온 남편이 1kg에 8,900원밖에 안 하니 먹고 싶은 만큼 사도 괜찮다며 소비에 부채질을 해댄다.

대야 3개를 손에 들었다.

"근데 통영은 딸기가 왜 이렇게 싼 거야?"남편이 묻는다.

"통영 딸기야."

"통영에서 딸기가 나와?"오빠는 의외라는 말투다.

"응. 통영 딸기 엄청 유명한데 몰랐어??"

"근데 왜 집 앞에선 못 봤지..." (여기서 집은 경기도 집.)

"당연하지, 너무 맛있으니깐 여기서 소비가 다 되는 거야."

통영딸기는 맞지만 생각만큼 유명하진 않은데 남편은 순진해서 믿는 건지 아니면 믿어 주는 척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통영딸기'가 있다는 것에 상당히 놀란 눈치다.


집으로 돌아와 남편은 바람이 드는 문 곳곳에 문풍지를 바르고 나는 딸기를 씻는다. 대야 제일 밑단에 깔린 딸기도 모두 큼직하다. 눈속임 없는 과일은 오랜만이라 씻으면서도 신이 났다. 빨간 소쿠리에 담긴 빨간 딸기가 탐스러워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달콤 시큼한 딸기즙이 양볼 가득 고였다 이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조금 쌀쌀하게 느껴지는 거실에 남편과 둘이 앉아 콧물을 흘리며 시원한 딸기를 먹고 또 먹는다.

"딸기 철에 오길 잘했네."

아침까지만 해도 날을 잘못 골라 왔다던 남편은 통영 딸기맛에 푹 빠진 눈치다.


혹시, 통영에 오게 된다면 통영딸기를 사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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