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과제 4개를 연달아 제출하고 숨 좀 돌리나 싶었는데 기말고사 과제 3개를 갑작스럽게 제출하라는 공지가 떴다. 마음에 무게가 더해진 듯 어깨가 축 처진다. 거기다 오늘은 디카시 수업까지 있는 날이다. 책상 위에 쌓여있는 A4용지 뭉텅이들을 보면서 한 숨이 쉬지 않고 나온다. 동네 문화센터에서 운영하는 수업이라 강제성이 없기에 갈까 말까 고민하다 '가지 말아야겠지...'혼잣말을 하며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켰는데 강사님에게 메시지가 온다.
"비 오는 목요일입니다. 오늘은 감성 충만한 작가님의 특강이 있는 날입니다. 음악과 영상 감상하시면서 안전 운전하시고 이따 10시에 뵙겠습니다"
강사님이 보내준 유튜브 링크를 연다. 음악과 꽃이 흐른다. '아, 이러면 곤란하지....' 아침, 감성을 자극하는 그 메시지에 마음이 바뀌어 옷을 갈아입는다. 4일째 감지 않은 머리에선 기름이 좔좔 흐르고 축 처진 어깨가 볼품없어 보인다. 일주일의 절반을 컴퓨터 앞에 앉아 폐인처럼 지냈으니 이런 몰골인 게 이상하지도 않다.
'문화 공판장'이라는 간판이 붙은 옛날엔 수산 공판장으로 쓰던 조립식 패널 건물 안에 앉아 수업이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패널을 두드리는 빗소리도 꿉꿉한 냄새를 풍기며 돌아가는 온풍기도 싫지 않다. 시를 쓰는 분위기가 있다면 이런 분위기일까. 빗소리가 잦아들 때쯤 시작된 특강은 세 시간이 지나서야 끝난다. 오늘은 나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눈으로 사물을 바라봐야 한다는 배움을 얻는다. 그리고 강의 마지막엔 자신의 시를 쓴다. 3번째 강의를 듣고 처음으로 '창작'이란 걸 하는구나 싶다.
10명이 자신이 쓴 시를 발표하는데 뒤통수를 한 대 맞은듯한 서늘함이 느껴진다. 아니, 감성을 잃은 50+세대를 위한 '다시 뛰는 감성, 디카시'라고 하지 않아나? 그런데 이 분들 감성이 충만하다 못해 철, 철, 철 넘친다.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가 샘솟는 사람들 그들 틈에 속세에 찌든 30+가 끼여있으려니 내 감성을 어디서 충전해야 할지 몰라 충전기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두 눈 가득 미소를 머금은 사람들과 마주친다. '어, 그 미소 제가 살게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다 들어간다. 괜히 축 처진 어깨를 한 껏 들어 올리고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는데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이 웃고 있질 않으니 여전히 배움의 즐거움이라고는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여유 넘치는 미소에서 배움의 즐거움이 느껴지는 사람들. 배움을 즐길 수 있는 여유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주머니 가득 든 돈과 시간일까? 빗장 풀려 활짝 열린 마음일까? 조금 가까워지면 소근소근 물어봐야겠다. "배움의 즐거움은 주머니와 마음 중 어느 쪽으로 무게가 더 쏠리나요? 그걸 알면 제가 조금은 쉽게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