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가나나 May 27. 2021

일기콘9일차<레드문 아니고 보름달>

3년 만에 개기월식이 있는 날이란다. '핏빛 보름달', '레드 문'이라며 내가 활동하는 쌍안경 모임에선 며칠 전부터 들썩인다. 오늘은 나도 마음이 동해 아침부터 "오늘 보름달이 뜬다는데, 뜬다는데"라며 남편에게 밤에 나가야 한다고 눈치를 준다. 7시 40분쯤 얼른 나가야 한다고 재촉했더니 나가기 싫은 눈치다. 혼자 간다고 했더니 그건 더 싫은지 옷을 천천히 입는다. 쌍안경 두 개를 챙겨 들고 우리 동네에서 달이 가장 먼저 보이는 곳으로 향한다. 그런데 오늘은 달이 안보인다. 40분을 기다리다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구름이 많아 못 본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일찍이 개기월식을 볼 목적으로 "달이 가장 잘 보이는 장소"를 선점한 사람들이 올려준 동영상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랜다.


신기하고 아름다운 건 준비된 사람한테만 보여주나?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괜히 레드문은 고사하고 보름달도 보지 못한 게 심술이 나서 눈을 감아도 자꾸만 눈이 떠진다. 잠든 남편을 홀로 두고 거실로 나오니 살짝 열린 커틈으로 빛이 들어온다. '보름달이 모습을 드러냈나 싶어' 커튼을 열었다. 달님을 보지 못한 아쉬움에 잠 못 드는 사람이 있는걸 어찌 알고 창문 앞까지 찾아와 빛으로 노크를 한다. 우리 집에서 제일 좋은 쌍안경을 꺼내 30분 동안 꼼짝 않고 달님만 바라본다. 소원이랄 것도 없는 소원을 빌면서 말이다.


창으로 쏟아지는 달빛 아래서 글을 쓰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일기콘 8일 차 <백수라서 다행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