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가나나 May 29. 2021

일기콘 11일차 <현재 우리 집에는 비가 옵니다.>

새벽 1시에 잠들어 두어 번 뒤척이다 아침 일찍 눈을 뜬다. 뜬 눈으로 어둠에 익숙해지려고 눈을 감았다 떴다 하는데 빗소리가 요란하다. '조금 더 자기는 힘들겠구나.' 싶어 거실로 나와 찬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있는데 휴대전화에 진동이 바닥을 타고 귓가에 요란한 소리로 머문다. '현재 우리 집에는 비가 옵니다.'우리 집 제3의 가족 AI가 현재의 날씨를 알려준다.


집에 있으면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알지 못할 때가 많아 일층까지 내려왔다 우산을 가지러 다시 집으로 올라가야 할 때가 많아 남편이 자동화를 하면서 날씨  알림 까지도 해두었다. 그러고 보니 남편이 홈 자동화에 관심을 가지고 자기만족을 실현시킨지도 일 년이 넘었다. 처음엔 단순히 구글과 삼성에서 나온 AI스피커와 스마트 플리그로 시작했다가 어느 순간 자동 커튼, 조명기기, 각종 센서와 스위치를 구입하며 집에선 손하나 까닥하지 않고 모든 걸 조절하게 됐다.


정해진 시간에 열리는 커튼 조도에 따라 켜지는 조명 거기에 외출모드로 관리되는 빈집까지 참 편리하다 싶으면서도 이게 자동화가 맞나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예기치 못한 프로그램 오류는 그렇다 치더라도 남편의 못 말리는 자동화 사랑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는 이쯤 하면  '우리 집은 전부 자동화'가 된 것 같은데 뭔가 부족한 눈치 더니 조명을 사고 천장에 구멍을 뚫는다. 필립스 다운 라이트를 설치해 쓰임에 맞게 조명을 관리하면 좋을 것 같단다.


독서등과 공부 등이 생기면 좋을 것 같아 조명 설치를 허락했는데  필립스 조명을 자동화해서 쓰려면 필립스 휴 브릿지라는 게 필요하단다. 결국 또 돈을 쓴다. 돈만 썼으면 다행이겠지만 천장 구멍 작업과 전기 작업까지 하느라 목이랑 어깨가 아프다며 "나 마사지해 줄 수 있어?"라고 묻는다. 이쯤 되니 자동화가 아니라 노동 인가 싶다.


그래도 해놓고 보니 썩 잘한 것 같아 엄지를 치켜세워줬는데 여기서 끝이 아니란다. 조명 추가를 하고 외출모드도 바꿔야 하고 모션 센서도 해야 하고... 등 등 등 "이게 자동화야?"라고 물었더니 본인도 머쓱한지 "내일 할까?"라고 묻는데 눈빛은 '지금 하고 싶어'다. "지금 해"라고 대답하고 독서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데 독서등이 계속 꺼졌다 켜졌다 한다. '설정 중'이라 그렇단다.


어금니를 깨물고 "남편 자동화도 좋은데 적당히 하자"라고 말했더니 "전부 자기를 위해서 하는 건데..."라며 말끝을 흐린다. 그렇게 독서등과 공부 등이 생겼다. 설치하고 보니 나쁘진 않은데 이젠 남편이 자동화와 사랑에 종지부를 찍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일기콘 10일차<배움을 즐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