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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길의 애정 Jul 03. 2022

사라지기 전에

서울 종로구 | 세운·청계상가

 장마전선이 북상하자마자 더위가 휘몰아친다. 덕분에 맑은 하늘에 하얀 구름을 얼마 만에 본 건지. 창밖을 보니 구름이 자꾸 불러낸다. 무더위일 것이 불 보듯 뻔했지만 장고 끝에 새로 들인 TAMRON 17-70mm F 2.8의 데뷔전도 치러줄 겸, 못 이기는 척 구름의 부름에 응답하기로 한다. 더워진 날씨에 차가운 느낌의 흑백사진을 남기고 싶어 흑백사진의 무드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세운상가 주변을 가보기로 한다. 


 더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세운상가 주변 골목은 얼마 전부터 내게 이제는 찾아올 때가 된 것 같다며 초대장을 보냈다. 특히 을지로의 오늘은 내일 당장이라도 요즘의 것으로 바뀔 수 있기에 하루라도 빨리 오라는 듯 최근 들어 자주 생각이 났다. 나 스스로 보낸 초대장에 당장 응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 새로 들인 렌즈와 대비되는 케케묵은 기억을 가진 그곳의 상충성이 예상외의 시너지로 좋은 결과물이 나오길 바라며 종로로 가는 버스를 탔다. 

 한 블록 정도 차이가 나는 종로와 을지로 일대는 고향 같은 곳이다. 바람 잘날 없던 학창 시절을 보낸 모교가 위치해있고, 현재 재직 중인 회사가 사옥 이전을 하기 전까지 3년 정도 을지로로 출근했기에 미로 같은 수백, 수천 개의 골목길도 꽤나 익숙하다. 


 카메라가 없이 지나다닌 청계천 인근은 상점 앞 좁은 보도블록에 물건을 내놓아 통행에 불편함이 많은 곳, 공구에 관해 아는 바가 없기에 전혀 쓰임의 용도를 모르는 철제품들이 즐비한 곳이었지만 오래된 건물과 손때 묻은 기계들, 시대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오래된 간판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유의 멋이 있는 곳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시간을 일부러 내어 찾아간 이곳. 하교 후 돌아다니던 그때 그 시절이 그대로 남아 있는  청계천 옆 골목은 애써 구도를 잡지 않아도 밖으로 내어 놓은 물건들은 사진의 훌륭한 소재가 되었고, 골목마다 비슷한 듯 보이나 조금은 다른 분위기는 더 오래 머무르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한다. 주말이기에 대부분 내려와 있는 셔터는 주말에만 느낄 수 있는 고요함과 쓸쓸함을 불러일으켜, 흑백사진에 더욱 어울리는 무드를 연출한다.  

 아직도 내게는 을지로 일대는 조명·의자 상가, 철제품 제조사, 철물점이, 충무로 일대는 제본 골목, 진양 상가의 화환, 대한극장의 간판장이가, 종로 일대는 LP 판매점, 시계 골목, CGV 피카디리 대신 단성사가 익숙하다. 그중 두드러지게 변화한 을지로의 변화가 여전히 낯설다. 힙지로, 뉴트로의 성지로 불리면서 많이 멀어졌던 지난날이다. 일대는 디지털카메라보다는 필름 카메라가, 컬러 인화보다는 흑백 인화가 아직은 어울리는 곳인데, 요즘 세대에 맞춰 변화하는 모습이 난생처음 멋을 위해 높고 가는 굽의 구두를 신어본 여성의 걸음걸이처럼 어색하고 불편하게 보인다. 


 종로 4가 일대는 재개발이 한참 진행 중이다. 광장시장 근처에 오랫동안 자리했던 시계 골목의 상인들은 재개발 사업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건물은 철거 중이다. 세운지구는 녹지화가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재개발은 찬반을 논하는 양측의 입장차가 크고 어느 것 하나 100% 옳은 결정은 없다고 생각하기에 쉬이 왈가왈부할 수 없지만, 이곳을 짧게나마 누비며 골목골목마다 다녀보니 점점 이런 분위기를 자아내는 장소가 사라지고 있어 아쉬움이 커진다. 

 때로는 새것이 꼭 능사이지 않을 때도 있다. 옳고 그름을 따지고자 써 내려가는 글은 아니다. 옛것이 자꾸 사라지고 있어 소중하게 보냈던 지난 시간을 추억할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사라지는 요즘이 아쉬워 이렇게 오늘의 시선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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