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광역시 | 슬도 & 대왕암공원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 ‘작가님’이라는 호칭과 ‘사진 좀 찍어주세요.’라는 부탁을 종종 듣곤 한다. 풍경과 건물을 주로 촬영해 인물 사진에는 영 소질이 없는 나에게는 꽤 곤혹스러운 부탁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알아서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촬영 결괏값이 나오는 카메라와는 다르게 휴대폰의 카메라는 심도 차이와 렌즈의 왜곡 등으로 예상보다 예쁘게 나오지 않기도 한다. 게다가 내가 사용하는 iPhone 기종이 아닌 Galaxy 기종을 주며 사진을 요청할 때는 더욱 난감하다. 물론 진짜 전문가는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는 전문가가 아니니 도구를 많이 가린다. 좋은 장비가 좋은 결괏값을 가져온다는 꽤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사진 촬영을 요청받으면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 하지만 그들이 카메라가 아닌 휴대폰을 내미는 순간 자신이 없어져 ‘아 저는 인물을 잘 못 찍는데.. 괜찮으세요?’라고 되묻는다. 그들은 ’그래도 작가님은 좋은 카메라를 써보셨으니 우리보다는 낫겠죠. 당연히‘라고 대답하며 휴대폰을 내 손에 쥐어주고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올해 초여름 즈음 광주광역시에 갔을 때의 일이다. 점심을 먹고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가던 중, 인근 공사장에서 신호수 일을 하시던 분이 나를 보더니 ‘좋은 카메라를 들고 다니시네요. 저도 한 장 찍어줄 수 있습니까?’라고 물어왔다. 나는 숫기도 없고, 낯도 가리고, 꽤 내성적인 성향이라 갑자기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오면 경계를 한다. 그분은 70-200mm의 대형 렌즈를 장착하고 돌아다니는 내가 당연히 사진작가라고 생각을 했다고 했다. 나는 정중히 거절을 했지만 그분은 속상했는지 ‘예쁜 것만 찍으시나 보네’라는 말을 하며 거절한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사실 촬영을 해드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포토 프린터도 있어 바로 현상을 해드릴 수도 있는 외출 중 드물게 모든 것이 갖춰진 상황이었지만 사진이 혹여나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걱정에 거절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후회되는 순간 중에 하나다. 그분도 어렵게 용기 내어 말씀하셨을 텐데 내가 너무 쉽게 거절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또 다른 일화는 올해 봄, 순천에서였다. 이날도 역시 70-200mm 렌즈를 장착하고 벚꽃과 낙안읍성의 초가집을 촬영하러 갔을 때였다. 70대쯤 되어 보이는 세명의 일행이 캐논사의 카메라로 무언가를 열심히 촬영하고 있었다. 그들을 지나치던 중 ’ 사진작가이신가 보네 ‘라며 내 카메라로 작품을 한 번 찍어서 보여줄 테니 카메라를 달라고 했다. 세 명은 나의 카메라로 촬영을 하며 그들끼리 토론을 하고 있었다. ‘사진학과 학생이다’, ‘아니다 사진작가다’라면서. ‘둘 다 아닌데요’라며 카메라를 다시 받아 들고 그들의 토론을 종결시켰지만 그들은 내가 떠나는 순간까지 나를 ‘작가님’이라고 불렀다. SD카드에 저장된 사진을 보며 ‘이렇게 잘 찍었는데 작가가 정말 아니냐’며 취미로 하기에는 실력이 좋다며 감사하게도 엄지를 치켜세워주었다.
이번 경남 양산과 울산광역시 여행 중에도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을 정말 많이 받았다. 울산광역시의 ‘방어진항’에서 길을 따라 걸으면 ‘슬도’라는 육로로 이동이 가능한 자그마한 석섬이 나온다. 이곳에서 한참을 바다와 조개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작은 섬에서 촬영을 하고 있었다. 카메라에서 손을 떼자마자 ‘작가님이시죠? 저희 사진 한 장 찍어주실 수 있으실까요?’라며 한 부부가 휴대폰을 나에게 내밀었다. 역시나 ‘제가 인물을 잘 못 찍는데 괜찮으세요?’라며 말을 연 나는 그들에게 사진이 잘 나올만한 벤치에 앉아보시라며 구도를 잡아주고 Galaxy 휴대폰 카메라의 촬영 버튼을 두 번 눌렀다. 그런데 이날은 무슨 일인지, 무슨 심경에 변화가 있었는지 ‘제 카메라로 찍어드릴까요?’라며 그들에게 역제안을 했다. 그들은 그래도 되냐며 예상보다 너무 흔쾌히 응해주었고, 나는 렌즈를 바꿔가며 총 두 장의 사진을 촬영해 SD 카드에서 내 휴대폰으로 사진을 옮겼고, 문자로 두 장 모두 전송해 주었다. 인물 사진의 정석으로 촬영한 두 장의 사진이었다. 그들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너무나 고맙다고 해주었다. 그들에게 사진을 전송해 주고 내 휴대폰에서 사진을 지우기까지 오랫동안 그 사진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슬도에서 대왕암공원으로 걸어가는 1시간여의 산책길을 걷는 동안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 사람들을 만난 상황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첫째,
내가 보인 아주 작은 성의로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
둘째,
결괏값과 상관없이 누군가에게는 오랜 시간 좋은 추억이 될 수 있다.
셋째,
거절보다는 실행하고, 판단은 내가 아닌 그들에게 맡긴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객관적이 아닌 철저히 주관적인 영역이기에 누군가에게는 최고의 사진이 될 수도,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한 컷에 불과하다. 브런치에 사진과 글을 기고하기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나의 아름다웠던 순간, 빛나던 시간을 사진과 글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작가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며 타 커뮤니티에 글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받았고, 포털 사이트 메인에도 여러 차례 나의 글이 올라갔고, 댓글로 응원을 받고, 메일로 응원과 여러 제안을 받으며 재미가 붙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나의 추억과 시선을 기록하기보다는 남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좇지는 않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들기도 했고, 내 사진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에 대한 자신이 많이 떨어지기도 했다. 가장 큰 이유라면 '작가님’이라는 호칭에 어울리는 사진과 글을 쓰고 싶었지만 그에 미달하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던 것도 컸다. 그래서 여행과 사진 촬영은 계속했지만 브런치에 글을 기고하지는 않았다. 이번 경남 양산, 울산광역시 여행을 다녀오며 조금 더 어른이 됐고, 자신감도 얻었다.
글과 사진으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은 아니더라도 세상을 즐겁게 사는 사람, 그런 세상을 내 나름대로 잘 기록하는 사람으로 남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