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와 MZ 사이 그 어딘가
그런 게 바로 젊꼰인가요....?
어느 날 나는 아주아주 높은 기수의 선배님으로부터 "박변 남편을 잘 모셔야 해"라는 조언을 들어버렸다. 기분이 나빴다기보다는 그 표현이 너무 생소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아주 잠깐 찰나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그분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은 아주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시며 동시에 내 눈치를 살피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말로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말은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는다고 해서 내가 진짜로 남편을 모셔야 하는 것도 아니고(모시는 게 뭔지 일단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모실 수 있나요), 내가 오늘 당장 우리 남편에게 "내가 당신을 모시겠소"라고 하면, 우리 남편은 대번에 "왜 그래 내가 뭐 잘못했어?"라고 할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내가 묘한 표정을 지은 것은 전혀 다른 이유였다.
첫째, 나는 저 말이 아무렇지도 않다.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그런 발언을 한 사람을 평가하는 사례로 누적될 뿐이다. 아 뭐 거창한 평가는 아니고, 이를 테면 세상의 변화를 섬세하게 캐치하지 못하는 분이구나 라는 정도의 가벼운 에피소드.
둘째, 그렇지만 누군가에게는 기분 나쁘거나 황당함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말이다. 내가 그 부분을 지적해주지 않는다면, 그분은 이 문제점을 영원히 모르고 지나가게 될까? 그렇다면 알려줘야 할까?
셋째, 그래도 나는 어느 정도 그분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을 만한 백그라운드를 알고 있고, 경험을 통해서 그를 확인한 바도 있기 때문에, 어떤 악한 의도로 나에게 저런 말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훈수 두면서 나랑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일텐데, 그분이 다른 데에서 불필요하게 오해를 받기를 원하지 않을 만큼의 애정이 있는가?
넷째, 여기도 나름 위계질서가 있는 조직사회인데 새파랗게 젊은 여성 변호사가 자신의 실수를 지적하는 것에 대해서 기분 나빠하지 않고 자신의 발언을 되돌아 볼만한 인품을 가지고 계신 분일까?
다섯째, 사람은 누구나 지적을 당하면(게다가 공개된 자리에서) 자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어떻게 말해야 감정이 아니라 나의 '의견'을 '가볍게' 전달할 수 있을까?
라는 오만가지 생각을 그 짧은 시간 안에 했기 때문이다. 이 생각들에 대해서 그래도 나름 긍정적인 YES 신호가 떴기 때문에, 나는 내가 그 짧은 시간에 떠올린 가장 최선의,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리액션을 해주었다. 다행히 그분은 머쓱해하시며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시는 것 같았고, 주변사람들도 이 상황이 적당히 마무리되었다는 점에 안도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 상황에서 나는 '요즘 젊은이'의 위치에 속한다. 그렇지만 너무나도 당연하고 우습게도, 어딘가에서는 '요즘 젊은이'들의 행동과 말이 이해가 안 되거나 선을 넘는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경우에 나는 "남편 잘 모시기" 사건의 생각 흐름과 똑같은 방식을 작동시킨다.
충고랍시고 이야기를 건넸다가 괜한 오해와 비난을 마주하고 싶지 않으므로, 그냥 피해 버리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꼰대 프레임에 갇히고 싶지 않은 나는, 대부분 세번째, 네번째 질문에서 YES 시그널을 못 받기 때문에 그냥 포기하고야 만다. 이게 무슨 결과를 가지고 올지에 대한 걱정과 고민도 있지만, 나도 많이 피곤하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내가 지적이라는 걸 한다는 것은 그 상대방에게 애정도 있고 신뢰도 있고 이런 상태라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는 것.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맨날 피곤하다며 침대에 누워있는지 이해를 못 하는 남편에게, 비록 내가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일지언정 나의 뇌 속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