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주말 토요일, 넷플릭스에서 괜히 <은중과 상연>을 시작했다가 하루 온전히 드라마에 시간을 쏟고야 말았다. 1편당 1시간이나 되는 긴 러닝타임에, 15부까지 되는 드라마를 과연 끝까지 볼 수 있을까 했는데_ 이 드라마는 중간에 끊기면 다시 보기 힘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무리해서 완주했다.
좋아하는 배우 리스트에 김고은 배우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김고은 배우가 나오는 작품은 대부분 다 본 것 같다. 작품 보는 눈이 참 좋은 것 같고, 연기도 참 잘한다. 다만, 이번 작품을 보면서는 연기를 잘하는 것과 별개로 모든 캐릭터가 점점 김고은화 되고 있다는 점이 다소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그래서 더 박지현 배우의 연기력이 돋보였는지도. 연극적인 서사가 부여되는 악역(?)이기도 하고.
각설하고, 조금 호흡이 길긴 했지만_ 근래 본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았던 드라마였다.
은중이가 좋았던 이유는, 관계에 있어서 상당히 깔끔한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친구였던 상연이와 자신의 남자친구와의 관계에 의심이 들 때, 은중이는 친구와 남자친구를 의심하고 싶지 않다고 직접 말하고, 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믿어준다. 그 믿음이 배신당했다고 느꼈을 때, 이 삼각의 관계에서, 너와 나의 관계에서는 제3의 인물을 배제하고 오직 "너"의 선택과 감정을 지적하는 것이 좋았다(은중과 상연 사이에서는 오로지 상연의 생각만을, 은중과 상학 사이에서는 오로지 상학의 선택만을 문제 삼는다). 사람들은 의외로 이런 상황에서 타인을 끌어들여 탓하고, 다른 감정을 복잡하게 얽히게 하는데 말이다.
상연이는 이기적이고 못된 사람이 맞다. 이걸 부정할 수는 없다. 타인에겐 관대하지만 자녀를 포함한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한 엄마, 혼자서도 감당하기 힘든 고통 속에 표현마저 쉽게 할 수 없었던 오빠, 그리고 그냥 이상한 아빠. 이런 가족들로 인해 평생 외로웠을 상연이지만, 성인이 되었다면 스스로 극복했어야지 자신이 가진 것은 보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을 질투하고, 끊임없이 자기 연민에 빠져있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그 울퉁불퉁한 마음은 인간이 당연히 가지고 있는 감정이고, 상연이는 여러 차례 그 감정을 다스려보고자 노력도 한다. 은중이를 여전히 좋아했으며, 상학과의 오해를 풀어주려고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오랜 마음을 접어 보려고도 했다. 그렇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뜻대로 되는가.
실제 인생에서 상연이 같은 친구를 만났다면 표면적으로만 드러나는 그녀의 행동만으로도 다시는 상종하지 못할 친구가 되었어야 맞지만, 드라마라는 것은 전지적인 시점에서 그녀의 마음과, 노력과, 상황을 함께 보게 되니까 이해하게 돼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은중이가 싫었던 이유 역시, 은중이는 너무나도 맞는 행동과 맞는 말만 했기 때문이었다. 드라마 전반에서 은중이는 "좋은" 친구지만, 상연이는 그런 선의를 원하지 않았을 때가 있었다.
나 같아도, 은중이가 억지로 쥐어주는 월세는 받기 싫었을 것 같다. 그런 걸 보통 오지랖이라고 하나. '관계를 오래 잘 지속하려면, 상대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싫어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지론인 나에게는, 특히나 눈쌀 찌푸릴 법한 은중이의 오지랖이 있었다.
촬영 현장에서의 폭행 에피소드에서도, 은중이는 옳은 소리, 맞는 말만 한다. 누군가는 그렇게 옳고 곧은 은중이가 멋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내가 봤을 때,
행동한 건 상학 선배였고, 해결한 건 상연이었다.
좋은 소리, 맞는 말, 그건 나도 할 수 있어 그래서 뭐가 해결 돼 라는 내 마음의 소리는, 극 중 상연이가 삐뚤게 행동하는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은중이는 놀랍게도 단호하게 상학 선배와의 관계는 정리했음에도, 그토록 나쁜 친구였던 상연이는 "끝내 받아준다". 이유는 죽음 때문이겠지. 더 이상 관계 회복의 여지도, 우연한 만남도 불가능해지는데, 그 이유가 내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라 죽음으로 인한 것이라니. 은중이는 상연이와의 마지막을 스스로 끝맺음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너를 용서함으로써, 그 무섭고 외로운 길을 배웅해 주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마지막을.
오랜만에 많은 생각을 곱씹으면서 본, 좋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