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부부의 이탈리아 여행(5일 차)

(2025.9.1-9.10)

by 밤안개

2025년 9월 6일 토요일

"Buon giorno(본 조르노)!" 상쾌한 토요일 아침입니다.

피렌체에서의 아침이 시작되었습니다. 어젯밤 밖에서 늦게까지 소리가 들리고, 새벽부터 웅성거리는 소음 때문에 깊은 잠을 못 잤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잠이 안와서 힘들었는데 엠.에스.지(M.S.G)까지 선사해주니 숙면 포기가 되네요. 그냥 눈만 감고 길게 누워 있었는데 오히려 그게 더 쉼이 된 것 같습니다.


새벽 5시, 샤워를 하는데 문득 이 독특한 샤워시설 앞에서 고대 로마의 황제가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제들이 어쩌면 이렇게 샤워할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나 익숙한 손으로 잡고 여기저기 물줄기를 뿌려주는 핸디형 샤워기가 여기는 없습니다. 천장에 물이 나오는 해바라기 샤워기와 벽면 3군데에 조그만 돌출 형 샤워기 이렇게 4군데에서 물이 나옵니다. 상상을 해보면 황제가 이런 목욕시설에 서있으면 손 하나 까딱 안하고 샤워하는 셈이 됩니다. 오늘 저는 로마황제가 되어 온몸에 마사지 받은 것처럼 샤워했네요. 아주 좁은 부스(booth) 안에서 말입니다.

호텔 화장실 샤워부츠 모습

08시 30분

우피치 미술관 관람과 피렌체 시내 가이드투어가 반나절 동안 예정되어 있습니다. 가이드와는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 청동 기마상 앞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습니다. 15명의 인원이 만들어 졌고, 우리일행은 비교적 이른 시간에 우피치 미술관으로 들어갑니다. 다양한 멤버네요. 신혼부부 2팀, 연식이 있어 보이는 부부 4팀, 친구 2, 혼자 온 청년 1, 다양한 이들이 미술품을 보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걸어갑니다. 오랜만에 패키지여행 느낌이 나네요.


우피치 미술관투어 (3시간)

메디치가문은 수많은 예술품을 피렌체로 사들이거나 직접 예술가들이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마지막 후손 마리아 루이자 데 메디치(Anna Maria Luisa de' Medici)는 이 귀한 소장품들을 대중들이 볼 수 있도록 1765년 공공 미술관을 열어주었습니다. 피렌체 시에 가문소유의 작품들을 기증했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입니다. 이렇게 우피치미술관은 생겨난 것 입니다.

마리아 루이자 데 메디치 조각상과 메다치가문의 문향

가이드의 설명을 다 정리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우선 인상 깊었던 작가나 작품들에 대해 메모한 것 몇 가지 정리해 봅니다.


1. 보티첼리(Boticeli)

우피치미술관 최고의 작품은 단연코 보티첼리(Boticeli)의 <비너스의 탄생, 1485>입니다.

보티첼리의 대표작 <비너스의 탄생>

이 작품 속 비너스의 실제 주인공은 포르토 베레네 출신의 미인인 ‘시모네타 푸스프치’ 라는 여인으로 이 여인과 메디치 가문의 줄리아노 데 메디치는 서로 연인관계였다고 전해져 있습니다. 보티체리는 이 여인 시모네타 푸스프치를 흠모했습니다. <비너스의 탄생> 뿐만 아니라 그의 다른 작품들 속에서도 시모네타의 모습이 보여 집니다. 저도 쉽게 그녀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티첼리의 <찬가의 성모>
보티첼리의 <성 바르나바 제단화>
보티첼리의 <봄>

위 보티첼리의 <봄> 하단의 잔디밭을 찍어서 확대해본 모습이 옆 사진입니다. '이 얼마나 정교한가요.'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2.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h)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수태고지>는 그의 호기심과 과학적 사고관이 두드러지게 관찰되는 작품입니다. 투시 원근법과 공기 원근법이 그것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수태고지> 1472-1475

거리에 따라 크기를 다르게 그러서 원근감을 나타내는 투시원근법과 멀리 있는 것은 흐리게 그리고, 가까이 있는 것은 진하게 그리는 공기원근법이 도입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중세까지만 해도 거리에 상관없이 똑같이 그렸는데, 드디어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 이러한 과학적 시도들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다빈치는 새나 인간 등에 대한 수많은 해부와 연구를 통해 배운 것을 그림에 적용 시켰다는 점입니다. 그림처럼 날개와 팔이 어깨를 공유하도록 천사의 육체를 그렸습니다. 또한 비행기가 착륙한 것처럼 천사가 앉은 바닥에는 풀들이 누워 있도록 그렸습니다. 이런 디테일은 과학자로서의 그의 면모에서 발현된 것입니다.


베로키오&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ll>.1474-1475

위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스승인 벨로키오 와 레오나르도의 공동작품인 <그리스도의 세례>입니다.

아래 인물 중 과연 누가 레오나르도가 그린 걸까요?

왼쪽에 있는 두 아이입니다.

스승인 벨로키오는 레오나르도에게 이 그림을 그리게 한 후부터는 더 이상 본인이 제자 레오나르도를 따라 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소녀들의 머릿결을 자세히 보면, 모나리자처럼 거장의 섬세함과 디테일이 그대로 보여지지 않나요?

위 <그리스도의 세례>에 왼쪽 옆면을 확대한 모습


3. 미켈란젤로

조각가로 알려진 미켈란젤로가 피렌체 유력가문인 스토로치가의 딸 출산기념 으로 그린 그림이 <성가족>입니다. 이 그림을 담고 있는 액자 또한 미켈란젤로의 작품 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마리아의 품이 아닌 마리아의 어깨 위에 있습니다. 의뢰를 받은 미켈란젤로는 이 그림을 완성하고 스토로치가에 그림비용을 요청했는데 뒤에 나체로 있는 남자들 모습에 실망한 의뢰인이 값을 깎아달라는 요청을 했고, 미켈란젤로는 단호히 거부를 했습니다. 결국 이 그림은 나중에는 원래 제시한 가격보다 2배 많은 가격을 지불하고 나서야 의뢰인이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성가족> 1503-1504


4. 카라바조

피렌체여행에서 가장 궁금했던 화가가 카라바조입니다. 그는 빛과 어둠을 이용해서 극적인 효과를 내는 바로크미술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끔찍한 작품을 많이 그렸습니다. 아래 메두사는 본인의 얼굴을 모델로 그린 그림으로 페르세우스에게 목이 잘린 메두사를 아주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카라바조의 <메두사>는 여성이 아닌 남성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카라바조 본인의 얼굴을 모델로 표현 했습니다.


카라바조의 조수를 모텔로 그린 <바쿠스> 신의 머리 위 나뭇잎들은 시들어 있고, 과일들도 싱싱해 보이지 않습니다. 왼쪽 포도주가 채워진 유리병을 찍어보면 깜짝 놀라게 됩니다. 누군가 비춰진 사람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가만보면 바쿠스신의 손톱에 낀 때가 보이기도 합니다.

카라바조 술의신 <바카스>. 1595


피렌체 시내투어(1시간)

야외로 나와 사람들이 가장 많은 곳을 따라 가다보면 보이는 것이 베키오 다리입니다. 다리 양쪽에는 귀금속 세공소와 보석상이 늘어서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이 동물을 도축하는 자리였으나 메디치 가문에서 이들을 몰아내고, 품의 있는 보석상점들을 이주시키면서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다들 포토 존에서 사진 찍기 여념 없습니다.

베키오다리 위 전경
베키오궁전 인근모습(미술관 창에서 바라본 풍향계(바람이 불면 이 깃발은 돌아감) / 말이 지나는 모습 / 마피아에게 폭격받은 것을 추모하기 위해 설치된 조형물1
레오라르도 다 빈치 동상 / 마피아에게 폭격받은 것을 추모하기 위해 설치된 조형물2


우피치 미술관을 나오자마자 보이는 시뇨리아광장 입구에 있는 건물이 베키오 궁전입니다. 궁 옆에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 있고, 그 옆에는 헤라클레스 동상이 있습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보면 청동으로 된 메두사의 머리를 들고있는 페르세우스의 청동상을 볼 수있는데, 여기는 과거 타지역에서 온 용병들이 텐트를 치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평민출신의 단테 알리기에리는 라틴어 대신 피렌체 사투리로 신곡을 썼습니다. 이탈리아 어를 세계에 알린 선구자 단테가 살았다는 집 앞에는 지금도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땅바닥에 물을 부으면, 희미하게 그의 얼굴이 나타납니다.

벽에 붙어진 조그만 단테 흉상
단테의 집 표식

피렌체에서 또 하루가 지나갑니다. 오늘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우피치미술관의 수많은 작품들입니다. 물론 책이나 유트뷰를 통해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작가들이 직접 활동했던 피렌체에 와서 그들이 그린 진품을 보는 감동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메디치 가문에 대한 설명과 그들과 얽힌 이야기는 듣는 내내 흥미롭고 재미있었습니다. 현대인들이 16세기 르네상스 작품들을 이렇게 쉽고, 편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메디치라는 가문의 시대를 앞선 예술적 가치에 대한 혜안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는 근시안적 관점에서 벗어나 미래를 더 크게 바라보는 시각을 키워야겠습니다. 눈앞에 경제적인 단 맛에 빠져 귀중한 인류의 문화예술을 소홀히 여기며 우매한 개발이익에 눈이 어두웠던 것은 아닌지 반성의 생각이 드는 귀한 시간 였습니다. 이탈리아의 또 하루해가 저물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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