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재의 봄

2026.3.15

by 밤안개

아버지 가신 것처럼 겨울이 지나가고 마당 앞에 새싹이 올라왔습니다. 가만 들여다보면 노란색 몽우리가 보이는게 아니겠어요. 이제 막 올라온 어린싹이 사람들 볼세라 조심스럽게 꽃망울을 터트렸나 봅니다. 양손에 분리수거할 종이, 플라스틱을 들고 바다 앞에 나가 또 한 번 놀랍니다. 속 살을 드러낸 모래 위로 햇살은 봄의 정령을 내려보내고, 얼마나 아름다운지 짐작도 못할 사람들은 바다와 함께 한 폭 그림 안에 담겨 있습니다. 왜 바다는 이 아름다운 살갗을 이제야 보여주려는지 어리둥절한 나는 사진만 찍어 액자 안에 넣습니다. 사나운 파도, 풍랑, 두려웠던 밤은 어디로 보내고 어린 소녀처럼 수줍어하는 협재바다 앞에서 나는 그만 찡하고 눈물이 납니다. 봄이 왔습니다.


책 읽고 있는 거실 창으로 햇살이 내려왔습니다. 무릎 옆에서 자던 강아지가 스르르 창가 앞에 놓인 물그릇을 한참 핥다가 햇살비치는 거실바닥에 벌러덩 누웠습니다. 라디오에서는 클래식 선율이 동그랗게 방을 메우고 나는 돌연 담안으로 보이는 넝쿨과 솔잎 끝이 잔잔히 흔들리는 것을 읽습니다. 이 짧고, 가늘한 봄의 선율은 남쪽 섬(島)에서 어디로 이어져 보이지 않은 그분께로 갈 수 있을는지요? 봄이 오면 떠나겠다던 이도 결국 가지 못하고, 바람이 멈추면 이제 그만 내려놓겠다는 그도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머무는 협재에 그만 봄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망각(忘覺)으로 점철된 섬(島)의 여름이 지나고, 해안을 휘도는 삭풍(朔風)으로 뼈만 남은 해안은 칭칭 흰 붕대를 동여맨 채로 혹독히 겨울을 견뎌 내고서야 벗을 만난 듯 반가운 얼굴을 내밀고 웃습니다. 하늘에서 날아온 섬, 속이 빈 대(竹)가 오늘도 금능에서 벌어질 붉은 낙조를 바라봅니다. 그는 외로워 울고, 서글퍼 울고, 힘들어 울다 오늘 바다 건너 협재의 봄을 만났습니다. 비양(飛暘) 섬(島)에도 이젠 봄이 찾아왔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