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이 Oct 08. 2024

어린 엄마는 화가 많아

대화 잘하기, 끊어내기, 연결하기

말을 잘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기 짝이 없다. 능수능란한 말 내가 어른스러워지는 대화를 요즘 들어 늘고 있다고 와닿았던 때가 있다.


자신의 의견을 확고하게 내비칠 줄 알고 그간에 쌓아왔던 상처를 정리해서 잘 얘기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상대에게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는 말을 한다는 것.


나는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를 나도 모르게 받고 있었다.


"왜 나만 힘들어해? "


라며 스스로 생각하며, 힘들어했다. 어디 풀곳이 없고 내 가족들에게 울분을 토할 때면 속마음은 '사실 나 너무 힘들어 위로해 줘, 내 얘기 좀 들어줘'였다. 화가 나는 게 아니었다. 그저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했다는 마음이었다. 말로는 남편에 대한 비방을 할지라도 사실은 나를 돌아보게 만들고 위로받지 못해 그간에 쌓였던 게 화로 분출되었던 거였다. 가족들과 대화할 때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준 사람이 있었다.


"밤이 씨는 사실 육아로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라는 말이었다. 맞다. 모든 게 날 서있었다.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나의 불찰. 그 덕에 아직도 나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 말에 조금 더 내가 화를 내는 부분에 있어 조금 더 세심하게 꿰뚫어 보려고 했다. 만약 육아를 하기 전 그냥 성인이 된 나는 과연 이렇게 까지 성장할 수 있었을까, 스스로 보살피려고 할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처음 그와의 만남을 통해서 내가 그에게 많은 걸 배울 거라는 생각은 했었다. 정말 나에게 없는 게 많은 그는 예상대로 배울게 많았고 스무 살 초반에는 이때까지만 해도 어리숙함이 있었기에 정확한 화가 나는 포인트를 인지하지도 못해 불같이 화를 낼 때가 잦았다. 사실 시간이 지나서 되돌아보면 그렇게 까지 화낼만한 일은 없다. 되려 미안해질 만큼 그게 그렇게 화날 일인가 싶기도 하고 속마음은


"네가 정말 미워 죽겠어."

가 아닌

"너를 사랑하는 만큼 기대고 싶었어, 그래서 서운해"


사실은 상대방에게 기대고 싶을 때 기댈 수 있기를 원했었고, 혼자 육아를 한다는 자체에 버거움에 시달려 어린 나이에 어리광을 부렸던 게 아닐까, 사실 그때의 일이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에게 있어 아기란, 정말 작고 소중한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중에 하나다. 제일 먼저는 아이를 가진 것. 스스로 선택했고, 그에 후회를 결혼 초에 많이 했었다. 22년도 평균 결혼나이 여 31세 나는 보다 9살 빨리 결혼한 건데, 당시 다툼이나 성격차이가 보여 잘못 선택했나 라는 생각. 사실은 본질적인 화의 원인을 깨우치지 못해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던 거 같다. 내 탓 이면서도 탓하고 싶지 않아, 내면에 괘씸한 마음이 상대를 깎고 나를 올리려 하는 행동. 그것은 전부 나를 깎아내리는 행동에 불과했다. 배우자를 욕되게 하는 짓은 결국 나를 욕되게 하는 짓이다.


어느 순간부터 남편과의 싸움이 줄어들었다.

그와의 싸움이 줄어들기 시작한 건 나 자신을 돌아보고 인정하기 시작해서였다. 그깟 자존심 하나에 인정하지 못했고 욕심부렸던 건 나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 나는 그간 자존심만 내세웠던 겉만 세 보이는 그런 사람이었던 거다. 또 나를 잘 몰랐다.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다. 인정하기 시작한 건 회사를 다니면서 이다. 사회생활 하던 시절 같은 부서에서 만약 내가 실수를 한다면 누구 하나 나무라지 않고 같이 해보자 라며 되려 격려해 주며 응원해 주었다. 할 수 있다며 다독여 주었다. 진짜 어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나의 선임자는 마른 체구를 가지고 있어 여리여리 했는데, 하나하나 알려주고 자신감이 없는 나에게 할 수 있다며 그 작은 체구에서 두 손을 거머쥐며 파이팅!이라고 응원해 주었다. 뭔가 조금은 할 수 있겠는데 라며 의욕이 솟구치기도 했다. 여러 사람에게 배워봤지만 이런 사람은 처음이었다. 격려해 주고 소신껏 자기발언하면서 정확하게 알려줄 때 깊은 생각을 할 때면 고개를 위를 보다 생각났는지 이내 고개를 바로 하곤 나에게 알려주는 모습들이 프로처럼 보여서 배우고 싶었다. 회사는 나에게 정말 여러 가지로 배움을 안겨주었던 유일한 곳이었다. 그 안에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고 해보지 못한 일들을 해보면서 남편과의 대화에서도 안정감을 찾을 수 있게 됐다. 그러곤 대화를 하며 깨달았다. 남편은 누구보다 나를 생각해 주고 사랑하는 사람이지 나에게 가시 세우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걸 늦게 깨달았지만, 조금씩 마음에 세겨가면서 이전에 차갑다고 느껴졌던 말들이 이제는 부정적인 의도록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인정하게 되면서 조금씩 내 안에 화를 누구러 뜨리게 되었다.


왜 그럴까 - 육아 한텀 쉬어가기

육아를 하면서 많은 사건사고가 있다. 특히 자매 이거나 남매이면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한 일보다 늘 시끄러운 일이 다반사. 나에겐 두 딸이 있는데, 어른이 보기에 정말 별거 아니지만 아이들 눈높이에서 보면 정말 속상하고 서운한일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종종 싸움이 있고 누구 하나 큰소리로 울면서 올 때 먼저는 어떤 이유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그 원인을 물어본다. 엄마가 먼저 보지 못한 상황에 놓일 때는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 두 아이의 얘기를 들어보고, 만약 두 아이의 말이 틀리다면, 내 기준에 혼내는 게 아닌


"왜 그럴까... 뭐가 문제일까..?"


하며 한숨 쉬고 바라보는 게 다이다. 어쩌면 답답해 보일 수 있고 결론짓지 못해 서운해하지 않을까 싶지만 그렇다고 잘못하지 않았는데 잘못했다고 한 명만 나무라 치는 건 그것 또한 과연 잘한 걸까 라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아이의 일은 아이들 스스로 해결하고 깨우치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 생각하여 관여하지 않는 편이다. 엄마가 놀아주는 건 한계점이 있지만 아이들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은 오롯이 아이들만 가지고 있기에 그 자리에 어른인 내가 관여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그저 바라보며 사고 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육아는 마음처럼 되는 일이 하나 없다 특히 자칫하면 뿔난 황소가 돼버릴 수 있는데, 만약 아이로 인해 화가 나는 상황이라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입으로 내뱉으며 그 말이 내 귀에 들릴 수 있도록 말하는데


"엄마도 화내기 싫어" "나도 화내기 싫어"


라는 말이다. 엄마 이전에 나는 나다. 나라는 사람도 아직 어리고 부족하다. 이 말이 귀에 들리면 맞아 나도 화내는 건 싫지.. 그리고 아이에게 화내는 건 좋지 못하다는 걸 인지 시켜준다.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스스로 컨트롤하기 시작한다. 이때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라고 질문한다.



과거의 어린 나를 되돌아보며 생각해 보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나 또한 어릴 적 어떻게 하면 더 좋았을지 ,  어떤 건 싫었는지 똑같이 있었을 것이고 확실히 육아를 통해 나 자신을 성장시키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건 내면을 자꾸 비치고 바라보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인정하고 되돌아봐야지만 전보다 더 성장한 내가 될 수 있을 거다.


늘 겸손하고 낮추는 자세로 , 듣고 싶은 한마디, 따뜻한 말에서는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인 줄 알고 말하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반대로 아는 것이 많다면 말을 아낀다고 한다. 능변은 은이고, 침묵은 금이다.

내가 존중받길 원하는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