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애프터썬 후기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주의!
*다른 사람과 해석이 다를 수 있어요. 제가 이해한 대로 썼습니다.
영화 after sun
며칠 동안 튀르키예를 여행하며 휴가를 보내기로 한 부녀는 따사로운 햇볕 아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바다에 들어가 스쿠버 다이빙을 하고, 수영장에서 수구를 하고, 호텔 내부에 있는 오락실에서 다른 손님들과 게임을 즐기기도 한다.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돌아와 뻗은 소피의 어깨너머로 아빠 캘럼은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며 춤을 춘다. 자못 위태로워 보이지만 침실은 고요해 소피의 잠자는 숨소리만 들릴 뿐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계속 캘럼이나 소피에게 예상치 못한 사고가 일어날까 봐 조마조마했다. 고요한 영화가 불안했다.
소피가 캘럼이 건넨 물안경을 보지 못해 물안경이 바다 깊은 곳으로 떨어지는 장면이 있다. 캘럼은 물안경이 빠진 깊이 헤엄쳐가고, 물안경은 이미 빛이 보이지 않는 암흑으로 사라지고 있다. 까만 화면 위에서 무언가 사고가 날 것 같았지만 아무 일 없이 다음 장면이 이어진다. 소피는 기분이 가라앉은 캘럼을 확인하고 비싼 물안경을 바다에 빠뜨려 미안하다고 이야기한다. 캘럼은 애써 괜찮다고 대답한다. 캘럼은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스쿠버 다이빙을 하기도 한다. 사고가 날까 불안했지만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영화가 큰 사건을 맞을 것이라는 내 직감은 계속 틀린다.
호텔에서의 마지막 날 금방 있었던 일로 기분이 상한 소피는 캘럼에게 그만하라고 돈 없는 거 안다고 이야기한다. 캘럼도 기분이 상한 듯 혼자 숙소로 돌아가더니 조금 있다 바다에 뛰어든다. 화면에는 어둡고 끝이 없는 바다만 보인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만 들린다. 캘럼이 자살하려고 한 것 같았는데 어김없이 다음 날 캘럼은 소피와 즐거운 휴가를 보낸다.
캘럼은 줄곧 안전장치 없이 바다의 깊고 어두운 곳으로 향한다. 비싼 물안경이 바다에 빠졌을 때 물안경을 찾기 위해 깊은 곳으로 잠수하고, 자격증을 갖추지 않은 채 스쿠버 다이빙을 한다. 스스로 바다의 깊고 어두운 곳으로 몸을 던진다. 그리곤 젖은 몸으로 바다에서 돌아와 혼자 힘겹게 울부짖는다.
캘럼을 바다의 깊고 어두운 곳으로 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휴가 중 맞게 된 캘럼의 생일. 소피는 아빠 캘럼의 11살 생일 얘기가 떠올랐는지, 같은 장소에 있는 다른 여행객들에게 셋을 외치면 생일 축하 노래를 함께 불러달라고 부탁한다. 깜짝 생일축하 합창이 울려 퍼지지만 캘럼의 표정은 애매하다. 아무도 몰랐던 캘럼의 11살 생일은 많은 사람의 축하를 받더라도 결코 돌아올 수 없다. 11살 소피는 이 사실에 대해 알지 못한다.
영화 중간중간에 어른이 된 소피가 클럽 같은 곳에 서 있는 장면이 나온다. 소피가 무엇을 하는지 정확하지 않다.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 같기도 불쾌한 일을 겪은 것 같기도 하다. 그 장면은 맥락과 상관없이 엉뚱하게 튀어나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화 막바지 그곳에서 소피는 20년 전 튀르키예에 함께 갔던 31살의 캘럼을 찾는다. 캘럼은 이상하게 춤을 추고 있고 소피는 아빠를 잡으려 애를 쓴다. 아빠를 안으려 애를 쓴다.
사람의 움직임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번쩍이는 조명은 모자이크처럼 느껴져 부서지는 파도같다. 캠코더로 찍은 지지직거리는 저품질의 비디오와 번쩍이는 사이키 조명은 파도처럼 철썩거리며 소피와 캘럼의 시간을 채운다. 그것들은 모두 연결되어있지 않고 조각조각 찢어져있는 듯하다. 비디오 화면은 저화질이어서 이어 붙인 듯 불안정해 보이지만 어린 아빠와 그보다 어린 소피는 그 속에서 영원의 시간을 보낸다.
튀르키예 휴가지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캘럼이 고향을 떠난 사람은 이제 다시는 소속감을 느낄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본인은 고향에서도 소속감을 느낀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캘럼이 어렸을 때 제대로 된 생일 축하를 받았다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을까. 현재 시간에는 비디오 속 천진난만한 소피도 소피를 지키는 캘럼도 없다. 캘럼은 끊어진 듯한 세계에서 좀처럼 소속되지 못하고 혼자 춤을 춘다. 캘럼에게는 소속감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이 세상에 존재함을 느끼게 하는 유일한 소속감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끝내 돌아올 수 없는 저 멀리에 있는 아빠가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아빠를 안으면 내 안에서 아빠가 파도처럼 부서진다.
p.s. 우울한 기운이나 무기력한 상황에 있는 분들에게는 비추
우울한 기운에 잠식되기 쉬운 영화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