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이 자주 닥쳤던 나에게

2022년 잘 가라 2023년 절대 죽지 않아!

by 몰드브 회사원


최근에 아이폰을 구매했는데 단축어로 이것저것 만들어놓으니 잡생각 안 하고 바로바로 그 일을 실행할 수 있어서 갓생을 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아이폰의 시리가 '갈아입은 옷을 정리하세요'하고 음성으로 말하게 한 뒤 5분 대기시간을 입력해 놓고 그 뒤에는 또 '세수를 하세요' 음성입력을 하고 10분 대기시간을 입력해 둔다. 그러면 나는 음성을 들은 즉시 5분 동안 갈아입은 옷을 정리하고 그 뒤 시간 맞춰 들리는 '세수를 하세요' 음성에 10분 동안 세수를 하면 된다.



하지만 하루라도 단축어 기능을 건너뛰는 날에는 말짱 도루묵이다. 크리스마스날 친구들과 밤을 새우고 나니 이틀 만에 단축어 갓생이 어그러졌다. 그 후 지금까지 새벽 2시를 넘어 잠을 청하고 데빌생(갓생의 반대말-내가 지어냄)을 빌어먹는다. 다이어리 쓰기도 매년 잡는 계획 중에 하나다. 그러나 작년에 샀던 다이어리를 보면 기록은 1월이 끝이다. 그전 해는 어떤가? 마찬가지다. 일기를 열심히 쓰면 그 달 이후로 3개월 이상 공백은 기본이다. 하고 싶은 게 생길 때마다 호기롭게 계획을 짜며 다짐하지만 실천하는 데에는 죽을 쑨다.



2022년은 연달은 계획 실행 실패로 무기력이 짙은 한 해였다. 연말이 되었지만 아직도 무기력은 말끔히 지워지지 않는다. 꾸준히 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완벽하게 하고 싶어 하는 성격 때문인 것 같은데, 성과가 없는 실행이 의미가 없다고 무의식이 오더를 내리는 것 같다. 노력했는데 성과가 없을까봐 두렵다.



갓생을 위한 지난한 애씀은 오랫동안 계속됐다. 대학생 때부터 작심 3일 마인드로 근근이 운영되어오고 있던 내 오래된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느꼈던 깊은 공허감, 수험기간 이 악물고 버텼던 마음가짐, 아르바이트 후 집에 가며 느꼈던 기분 같은 것들이 남아있다. 글을 읽다 보면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저녁 어스름의 창문 앞에 서있기도 하고, 동굴 같은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다그치며 지체하기도 하고,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던 아르바이트생이 되어 있기도 한다.



다이어리는 띄엄띄엄 슬픔으로 이어져있다. 슬플 때에만 기록이 하고 싶기 때문이다. 안 좋은 감정들을 소화시키기 위해 애를 쓴 흔적들이 보인다. 올해도 여전히 때때로 우울했지만 죽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다. 다이어리가 띄엄띄엄 있는 게 더 좋은 것이었겠구나. 기록해야 하는 깊은 슬픔은 이제 조금 덜하구나 싶다.



우울한 날에는 울고 난 다음 다시 명상 어플을 켜서 '외로움', '우울' 따위 단어를 검색해 본다. 더 지혜롭게 외로움을 견디고 불안과 우울을 해소하는 방법을 알고 싶었다. 내 간절한 희망이 2022년 명상 시간을 기록해 주었지만 우울과 친구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물음의 답은 아직은 '글쎄'다.



다 성과 없는 허공의 발차기일 뿐이었다 생각하니 서글퍼질 뻔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한 해동안 놓치지 않고 지니고 있었던 화두가 나 자신을 보살피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그려오는 것도 여간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마음을 달래 본다. 나는 언제나 시작하고 있었고 지금도 시작 중이다. 실행하지 못했다고 해서 너무 아쉬워하지 말자. 새해마다 다이어리를 계속 구매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한 해를 오롯이 채운 다이어리가 한 개도 없지만 나는 10년 넘게 다이어리를 구매하고 글을 썼다. 올해도 새 다이어리를 샀다. 이것은 빌드업. '더 큰 일을 시작하고 실행할 때 더 퀄리티 있게 잘하면 되지!' 하고 2023년으로 가보자. 나는 나를 위로하는 데에는 이제 달인이니까.





작년(2022년) 1월 1일 다이어리


'아이와 나의 바다'가 올해 첫 곡으로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날 온전히 사랑하지 못해서' 외로운 나날들이지만 매일매일 시기질투로 힘들고 못난 나를 마주하고 패배감에서 도망치고 결국 진 것 같은 날들로 채워지지만 그래도 계속 '어둠에 눈 감지 않'고 스스로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새해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작가의 이전글동굴 속에서도 스스로를 보살피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