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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로 빚어낸 호러 걸작 '포제션'(1981) 후기

이해하려 하지 말고 체험하라

by 나이트 시네마
본문은 구어체로 작성된 리뷰 방송 대본을 AI를 활용하여 다듬은 글입니다.

https://youtu.be/ajaB586O4p0


오늘 깊이 있게 들여다볼 영화는 1981년작, 안드레이 줄랍스키 감독의 포제션입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이 작품은 논리를 따지며 머리로 이해하는 영화가 아니라, 온몸으로 체험해야 하는 영화라는 점입니다.


사실 이 작품은 개봉 당시 영국에서는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유해 비디오(Video Nasty)로 분류되어 금지되기도 했던 문제작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는 시대를 앞서간 걸작이자 컬트 영화의 끝판왕으로 재평가받으며 수많은 시네필들을 매혹시킨 작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독이 관객의 멱살을 잡고 질질 끌고 가는 듯한 강렬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배우들의 연기는 마치 이 작품을 끝으로 은퇴하겠다는 각오로 임한 것처럼 처절하다 못해 기괴하기까지 합니다. 실제로 주연 배우였던 이자벨 아자니는 이 영화를 촬영한 후 정신적인 후유증 때문에 몇 년을 고생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감독의 실제 이혼 경험이 투영된 광기

본격적인 줄거리 소개에 앞서, 등장인물들이 왜 그토록 광기에 사로잡혔는지 영화의 탄생 배경을 먼저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배경을 알고 나면 이 난해한 이야기들이 비로소 이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를 연출한 안드레이 줄랍스키 감독은 실제로 자신의 이혼 과정에서 겪은 지옥 같은 고통을 이 영화에 고스란히 갈아 넣었습니다. 당시 여배우였던 아내와의 이혼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자살까지 생각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감독은 자신을 괴롭히는 것에 대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각본을 썼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정화하려 했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만들면서 비명을 지르고 싶었고, 내 안의 괴물을 끄집어내고 싶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제작 과정 자체가 그에게는 일종의 치료였던 셈입니다.


따라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알 수 없는 광기들은 감독이 이별 과정에서 느꼈던 배신감, 질투, 자기 파괴적인 감정들을 오컬트 호러라는 장르를 빌려 시각화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감독의 절박함은 영화 속 장면들에 그대로 투영되었습니다. 감독이 회상하기를, 한때 저녁 늦게 귀가했을 때 5살 난 아들이 텅 빈 집에서 혼자 잼을 온몸에 묻힌 채 남겨져 있던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장면은 영화 속에 그대로 재현됩니다. 부모의 싸움과 방임 속에 방치된 아이의 모습은 감독이 느꼈던 가정 붕괴의 죄책감과 공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냉전 시대 베를린, 갈라진 부부

영화의 배경은 차가운 냉전 시대, 베를린 장벽이 가로막고 있는 서베를린입니다. 영화 내내 흐르는 칙칙하고 푸르딩딩한 색감과 분단된 도시라는 배경 자체가 이미 갈라질 대로 갈라진 주인공 부부의 상황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주인공 마크는 첩보 활동으로 추정되는 긴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오랜만에 귀가하여 아내의 따뜻한 환대를 기대했겠지만, 마크를 맞이하는 건 아내 안나의 싸늘한 시선과 이별 통보뿐입니다. 마크는 안나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음을 직감하고 추궁하지만, 안나는 그저 마크를 떠나고 싶어 할 뿐입니다.


아내의 내연남으로 의심되는 하인리히는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한 기이한 인물이고, 안나는 점점 이해할 수 없는 기행을 일삼으며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숨어들어 갑니다. 초반부는 다소 폭력적인 부부 싸움으로 시작되지만, 안나가 점점 더 미쳐가고 마크가 집착적으로 진실을 파헤치면서 이 영화가 단순한 불륜 치정극이 아님이 드러납니다.


안나는 집을 나가 베를린의 낡은 아파트에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공간을 만들고 숨어버립니다. 마크는 어떻게든 가정을 지켜보려 발버둥 치던 중, 아내와 똑같이 생겼지만 성격은 정반대인 아들의 유치원 선생님 헬렌을 만나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단순한 외도 문제인 줄 알았던 이야기는 점차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초현실적인 영역으로 관객을 몰아넣습니다.

충격적인 지하철 발작 씬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전설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이자벨 아자니의 지하철 발작 씬입니다. 최근 2024년 작 '오멘: 저주의 시작'에서도 오마주된 바 있는 이 장면에서, 안나는 지하철 통로에서 우유와 식료품을 쏟으며 온몸을 비틀고 비명을 지릅니다.


마치 유산하는 듯한 고통을 겪는 이 모습은 안나가 가진 선한 자아, 즉 신앙이나 모성애, 도덕 같은 가치들을 스스로 유산시키고 그 자리에 악이라 할 수 있는 순수한 욕망을 잉태하는 과정을 표현한, 거의 행위 예술에 가까운 명장면입니다.


비하인드 스토리는 더욱 놀랍습니다. 감독은 이 장면을 위해 아자니에게 "공기와 섹스하라"는 매우 추상적이고 파격적인 디렉팅을 했다고 합니다. 새벽 5시 텅 빈 지하철에서 촬영된 이 장면은 배우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요구했기에 여러 번 찍을 수도 없었고, 대부분 첫 번째 테이크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아자니는 이 장면을 위해 며칠간 자신의 가장 어두운 감정들을 끄집어내고 원초적인 고통을 떠올리며 극도의 감정적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실제 촬영에서는 완전히 자신을 내맡겼고, 이 연기로 1981년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결과일 것입니다.

파괴된 일상의 상징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중요한 상징 중 하나는 우유와 식료품입니다. 앞서 언급한 지하철 장면뿐만 아니라, 영화 내내 안나가 장을 봐오는 식료품과 우유가 깨지고 쏟아지는 장면이 반복됩니다. 가장 일상적이고 가정적인 소재인 식료품이 가장 끔찍한 파괴의 현장에 함께 뒹굴고 있는 것입니다.


안나가 식료품 가방을 벽에 내던지며 우유가 쏟아져 나오고, 하얀 액체와 붉은 피가 그녀의 몸에서 쏟아져 나오는 장면은 순수함과 모성의 상징인 우유가 신체적, 정신적 붕괴와 뒤섞이는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후반부에 사설탐정이 안나의 비밀을 목격하고 살해당할 때, 안나가 깨진 우유병으로 그를 찌르는 장면 역시 가정을 지탱하던 생명의 상징이 살해 도구가 되는 아이러니를 섬뜩하게 연출한 대목입니다.

도플갱어와 욕망의 괴물

영화를 보다 보면 안나와 똑같이 생긴 여자가 또 등장합니다. 바로 아들의 유치원 선생님 헬렌입니다. 헬렌과 안나는 이자벨 아자니가 1인 2역으로 연기하며, 한쪽은 순수함을, 다른 한쪽은 파괴를 상징합니다. 헬렌은 마크가 바라는 이상적인 아내의 상징입니다. 미쳐 있지도 않고, 식사도 잘 챙겨주며, 아이에게 상냥한 여자입니다. 마크는 자신을 힘들게 하는 현실의 아내에게 지쳐, 그녀와 똑같은 얼굴을 했지만 성격은 정반대인 환상으로 도피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안나가 숨겨둔 비밀, 바로 그 괴물의 정체 또한 도플갱어 설정과 연결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징그러운 괴물의 특수효과를 담당한 사람이 영화 E.T.에서 귀여운 이티를 만든 카를로 람발디라는 사실입니다. 이티를 만든 손길로 촉수 괴물을 만들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영화 후반부로 가면 이 괴물은 점차 인간의 형상을 갖춰가는데, 놀랍게도 남편 마크와 똑같은 모습이 됩니다. 이는 안나가 자신을 구속하고 억압하는 현실의 남편 대신,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수 있는 완벽하게 이상화된 남편을 스스로 창조해낸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도플갱어 설정이 완성됩니다. 마크에게는 아내와 똑같이 생겼지만 순종적인 헬렌이 있고, 안나에게는 남편과 똑같이 생겼지만 자신의 욕망만을 위해 존재하는 괴물이 있는 것입니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의 진짜 모습을 감당하지 못하고 각자의 환상 속 파트너를 찾아 도피해버린 셈입니다.

공간이 말해주는 심리

영화 속 공간의 상징성 또한 매우 중요하며,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마크와 안나가 함께 살던 집입니다. 겉으로는 평범한 가정집이지만 영화에서는 점차 전쟁터로 변해갑니다. 물건을 던지고 소리를 지르며 폭력이 오가는 이 공간은, 가정이라는 안식처가 오히려 가장 위험한 곳이 되어버린 역설을 보여줍니다. 특히 집안에서의 폭력 장면에서 감독은 클로즈업을 자주 사용하여 배우들의 광기를 날것 그대로 담아냈습니다.


두 번째는 안나가 비밀을 숨겨둔 낡은 아파트입니다. 이곳은 안나의 진짜 욕망이 서식하는 공간입니다. 사회와 남편이 요구하는 아내의 역할에서 벗어나 원초적 욕망을 해방시키는 곳이죠. 어둡고 습하며 썩어가는 듯한 비주얼은 마치 자궁 같기도 하고 무덤 같기도 하여, 생명이 잉태되는 동시에 죽음이 공존하는 곳임을 암시합니다.


세 번째는 베를린이라는 도시 자체입니다. 분단된 도시와 장벽은 갈라진 부부의 은유이자 냉전 시대의 억압적 분위기를 담고 있습니다. 춥고 황량하게 그려진 거리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감시합니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단순히 촬영 허가 문제 때문이 아니라, 분열과 감시가 일상인 베를린의 분위기가 영화의 주제와 완벽히 맞아떨어졌기에 선택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제목의 이중적 의미

영화의 제목인 포제션(Possession)은 두 가지 의미를 관통합니다. 하나는 "너는 내 것"이라고 말하는 부부간의 지독한 소유욕을 의미하며, 다른 하나는 악령에 홀린 상태인 빙의를 뜻합니다. 서로를 소유하려던 집착이 결국 서로를 괴물에게 홀리게 만들었다는 중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절묘한 제목입니다.


샘 닐이 연기한 마크의 변화도 인상적입니다. 처음에는 이해심 있는 남편이었으나 점점 편집증적인 스토커로 변해갑니다. 아내를 미행하고 사설탐정을 고용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그의 모습은 사랑이 얼마나 쉽게 집착과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괴물 마크가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갈 때 진짜 마크는 어둠 속으로 추락하는 대비는 비극의 끝을 예고합니다.


결말은 매우 충격적입니다. 진짜 마크와 안나는 파국을 맞아 죽음에 이르고, 그 자리를 안나가 낳은 괴물 마크와 마크가 선택한 헬렌이 대신하게 됩니다. 이 둘이 만나는 순간 밖에서는 전쟁이 난 듯 사이렌이 울려 퍼집니다. 이때 안나와 마크의 어린 아들은 헬렌에게 문 열지 마라고 소리치다 욕조에 스스로 몸을 던져버립니다.


부부 싸움과 이혼이라는 전쟁터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아이라는 사실이 뼈저리게 다가오는 장면입니다. 부모의 광기를 목격하며 방치되었던 아이가, 헬렌에게 문을 열지 말라고 경고하다가 결국 죽음을 선택하는 모습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인간관계는 좋을 때보다 안 좋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이 깊이 와닿는 대목입니다.

마치며

솔직히 이 영화의 서사는 개연성이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 도대체 상황이 왜 이렇게 흘러가는지 의문이 드는 순간이 많습니다. 하지만 배우들의 미친 연기력은 그 모든 개연성을 압도합니다. 포제션은 머리로 이해하려 하면 안 됩니다. 이혼이라는 과정이 주는 지옥 같은 고통, 살을 찢고 나오는 듯한 감정의 밑바닥을 영상으로 체험하는 영화입니다.


극장에서 봤다면 정말 기어 나왔을 것 같은 영화지만, 동시에 영화가 뿜어내는 기괴한 에너지에 홀린 듯 끝까지 보게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호불호는 갈릴 수 있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여러분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보셨나요? 댓글로 자유롭게 감상을 남겨주시면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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