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의 불 끝에 남은 재가 거름이 되기까지
본문은 구어체로 작성된 리뷰 방송 대본을 AI를 활용하여 다듬은 글입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우리를 다시 한번 신비로운 판도라 행성으로 초대했습니다. '아바타' 시리즈의 세 번째 챕터인 '아바타 불과 재'를 드디어 IMAX 3D로 관람하고 왔습니다.
'아바타' 시리즈는 개봉할 때마다 영상 혁명에 가까운 비주얼을 선보이며 찬사를 받지만, 그에 비해 스토리는 다소 평이하거나 아쉽다는 평가를 늘 꼬리표처럼 달고 다닙니다. 저 역시 이러한 평가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아바타'가 선사하는 비주얼 쇼크는 그 빈약한 스토리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릴 만큼 강력합니다. 1편과 전작 '물의 길'에서 경험했던 시각적 충격은 여전히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작품의 초기 시사회 후기가 비주얼은 확실하지만 서사는 부실하다는 쪽으로 흘러갈 때도 저는 크게 우려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바타'는 원래 그런 맛에 보는 시리즈라는 것을 간과한 반응이 아닐까 생각하며 극장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뚜껑을 열어 본 결과, 이번 작품 역시 왜 오늘날에도 극장이 존재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온몸으로 증명해 주는 작품임은 분명했습니다.
다만,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부실한 서사를 비주얼만으로 모두 상쇄하기에는 이제 약간 힘에 부치는 느낌을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의 압도적인 장점과 다소 아쉬웠던 서사, 그리고 영화가 담고 있는 깊이 있는 주제 의식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압도적인 비주얼
비주얼에 대한 찬사를 먼저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의 기술력은 여전히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영화를 관람한다기보다는 마치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 팀이 목숨을 걸고 판도라 행성에 직접 가서 촬영해 온 영상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바다 위를 유영하는 거대한 생명체들의 피부 질감이나 나비족의 미세한 근육 움직임 하나하나가 숨 쉬듯 살아있었습니다. 이는 집에서 아무리 좋은 사양의 TV로 시청한다고 해도 결코 느낄 수 없는, 오직 극장의 거대한 스크린과 사운드 시스템 안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황홀경입니다. 시청각적인 체험만으로도 비싼 티켓값이 전혀 아깝지 않은, 말 그대로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선사합니다.
스파이더의 정체성
이번 영화는 인간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전쟁을 다루면서도, 그 안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파고듭니다. 그 중심에는 스파이더가 있습니다. 인간의 육체를 가졌으나 나비족의 문화 속에서 자라난, 두 세계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이 소년의 혼란이 이번 작품의 핵심 테마입니다.
이러한 캐릭터 설정은 대중문화에서 꽤 익숙한 클리셰이기도 합니다. 고릴라 사이에서 자란 타잔이나 늑대 무리에서 자란 모글리가 털도 없고 날카로운 이빨도 없는 자신의 모습에 괴리감을 느꼈던 것처럼, 스파이더 역시 산소 마스크 없이는 숨조차 쉴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의 육체와 나비족의 영혼 사이에서 극심한 성장통을 겪습니다.
또한 두 세계의 다리 역할을 하는 슈퍼맨이나 '스타트렉'의 스팍과도 궤를 같이합니다. 크립톤 행성 태생이지만 지구에서 자라며 가교 역할을 요구받는 클라크 켄트, 인간 어머니와 벌칸 아버지 사이에서 감정과 논리의 충돌을 겪는 스팍처럼 스파이더 또한 인간과 나비족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증명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파이더에게는 앞선 캐릭터들과 다른 결정적인 비극성이 존재합니다. 바로 식민 지배 구조 안에서 태어난 침략자의 핏줄이라는 점입니다. 혈통은 가해자인 인간 쪽에 있지만, 정서적 소속은 피해자인 나비족 쪽에 있다는 점은 그에게 식민성과 전쟁의 책임이라는 훨씬 무겁고 복잡한 짐을 지웁니다.
모노노케 히메와의 비교
영화를 보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걸작 '모노노케 히메'가 강하게 연상되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자연과 문명의 대립을 다루며, 그 경계선에 선 인물을 조명합니다. 스파이더는 중재자인 아시타카보다는, 자신을 인간이 아닌 들개라 생각하는 산(원령공주)과 더 닮아 있습니다. 온몸에 파란 줄무늬를 칠하고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거부하려는 스파이더의 모습은 산의 모습과 겹쳐 보입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는 결핍에 있습니다. 산과 달리 스파이더는 판도라의 대기를 마실 수 없어 항상 기계 장치인 마스크를 써야 합니다. 이 마스크는 마치 너는 결국 이방인일 뿐이라고 낙인찍는 족쇄처럼 느껴져, 스파이더를 산보다 훨씬 위태롭고 안쓰러운 존재로 만듭니다.
또한 산은 아시타카를 통해 인간성을 일부 수용하며 자신만의 자리를 찾아가지만, 스파이더는 생부인 쿼리치와 양부인 설리 사이를 오가며 양쪽 모두에게 상처받고 이용당합니다. 그가 진정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선택하고 인정받는 것은 영화의 엔딩에 이르러서야 가능해집니다.
불과 재가 상징하는 융합의 메시지
영화의 부제인 '불과 재'는 단순한 전쟁의 이미지가 아닙니다. 감독의 의도처럼 불은 파괴와 분노를, 재는 그 이후의 상실과 재건을 상징합니다. 이 지점에서 '모노노케 히메'의 엔딩과 흥미로운 대조를 이룹니다.
'모노노케 히메'의 결말이 폐허 속에서 싹트는 새싹을 통해 서로 다른 자리에서 서로를 그리며 살아가자는 공존의 거리두기를 보여주었다면, '아바타 불과 재'는 한 발 더 나아갑니다. 다 타버린 재가 거름이 되어 땅에 스며들듯, 서로 다른 존재들이 섞이고 융합되는 과정을 그려냅니다.
전쟁터에서 태어난 물의 부족 아기, 그리고 마침내 나비족의 일원으로 인정받으며 에이와의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스파이더의 모습은 완벽한 융합을 상징합니다. 재는 죽은 땅이 아니라, 이방인이었던 스파이더를 진정한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가장 비옥한 토양이 되었습니다. 스파이더는 이제 인간과 나비족을 잇는 첫 번째 혼종으로서 판도라의 운명을 쥔 열쇠가 되었습니다.
아쉬운 점
하지만 이러한 주제 의식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서사의 헐거움이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관객이 스파이더의 고뇌에 완전히 몰입하기 위해서는 그가 설리 가족, 특히 네이티리나 제이크 설리와 쌓아가는 정서적 유대가 훨씬 더 섬세하게 묘사되었어야 했습니다.
영화 초반, 스파이더를 바람 상인 편에 보내자는 설리의 말에 반대하던 아이들이 막상 떠나는 길에 배웅이나 가자며 금방 수긍하는 장면은 감정선이 튀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영화 중반부, 설리가 스파이더와 함께 탈출한 후 그를 죽이려 시도했다가 실패하는 장면입니다. 주인공인 설리의 도덕적 딜레마를 보여주기 위함이라 해도, 그 과정이 너무 급작스럽고 작위적으로 연출되어 개연성을 해쳤습니다. 갈등과 해소가 치밀한 빌드업 없이 편의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또한 이번에 새롭게 등장한 재의 부족(바랑과 그 일당들)의 활용도 역시 실망스럽습니다. 첫 등장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광기 어린 모습은 긴장감을 고조시켰으나, 극이 진행될수록 단순한 NPC 수준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리더인 바랑조차 위기 상황에서 너무 허무하게 패닉에 빠지며, 갈등을 유발하기 위해 인질극 패턴을 지나치게 반복하는 점은 피로감을 유발했습니다.
3시간 17분의 무게와 총평
3시간 17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또한 진입장벽입니다. 중반부 서사가 늘어지고 이야기가 단조롭게 흘러가다 보니,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기보다 다음 장면이 무엇일지 궁금해지는 주객전도 현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관객의 화장실 타임을 배려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루즈한 구간이 분명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영화를 추천합니다. 서사의 단점들을 모두 덮어버릴 만큼 시각적 경험의 가치가 압도적이기 때문입니다. 다소 지루한 중반부를 견뎌내면, 후반부 최후의 전투 장면에서 확실한 보상을 받게 됩니다. 내가 전장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전율은 극장이 아니면 결코 느낄 수 없습니다.
정리하자면 '아바타 불과 재'는 서사의 정교함보다는 세계관의 확장과 시청각적 스펙터클에 방점을 찍은 영화입니다. 집에서 OTT로 보겠다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가능한 한 가장 큰 스크린에서 판도라의 숨 막히는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껴보시길 권합니다.
영화 속 스파이더의 선택과 재의 부족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댓글로 다양한 의견을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