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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소라 감독 <해피엔드> 결말 해석

두 소년의 우정과 갈등을 통해 본 개인과 사회 시스템의 충돌

by 나이트 시네마
본문은 구어체로 작성된 리뷰 방송 대본을 AI를 활용하여 다듬은 글입니다.

https://youtu.be/yZPqd3P46h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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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소라 감독의 2024년 작품 <해피엔드>를 감상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전도연, 최민식 배우 주연의 1999년 한국 영화 <해피엔드>(정지우 감독)를 떠올리실 수 있겠지만, 오늘 이야기할 영화는 2024년에 공개된 네오 소라 감독의 동명 작품입니다.

청춘 영화의 외피, 그 안에 담긴 묵직한 메시지

처음 포스터나 예고편을 접했을 때는 졸업을 앞둔 고등학생들의 풋풋한 우정과 성장을 그린 전형적인 청춘 영화일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이 작품이 단순히 청춘의 아름다움만을 찬미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까운 미래의 일본 사회를 배경으로, 그 속에서 살아가는 두 소년의 우정과 갈등, 그리고 그들이 마주한 사회의 불안하고 위태로운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해낸 작품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편안하지만은 않았고, 오히려 다양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며 깊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작은 사회, 학교: 불안과 통제의 축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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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요 배경이 되는 고등학교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낭만적인 학창 시절의 모습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현실 사회의 불안과 모순, 감시와 통제의 문제점들을 축소하여 보여주는 또 다른 작은 사회로 그려집니다. 이 학교에는 '파놉티(Panopty)'라는 인공지능 감시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학교 측은 '학생들의 안전과 효율적인 관리'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촘촘하게 감시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도구로 활용됩니다. 학교 방침에 어긋나는 행동이나 발언은 즉시 감지되어 벌점이 부과되는 시스템입니다.


이 시스템을 도입한 학교의 교장은 현실 사회 속 권력자의 모습을 투영합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은 다 너희들의 안전과 미래를 위한 것"이라는 그럴듯하지만 기만적인 말로 학생들의 자유를 억압합니다. 이에 저항하는 3학년 학생들에게는 "너희들 요구대로 감시 시스템이 폐지되더라도 내년에서야 가능할 텐데, 너희는 이미 졸업하고 없을 것 아니냐. 너희와 상관없는 일에 왜 나서느냐"는 논리를 펼치며 3학년과 1, 2학년 사이를 교묘하게 갈라놓고, 연대하려는 움직임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교장의 모습은 지진에 대한 공포를 이용해 사회를 통제하려는 영화 속 총리의 모습과 겹쳐 보이며, 학교라는 작은 사회와 일본 사회 전체가 동일한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음을 시사하는 듯했습니다.

너무 다른 두 친구, 유타와 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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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답답하고 불안한 사회의 한가운데, 너무나 다른 배경과 성격을 가진 두 친구, 유타와 코우가 있습니다. 이들 외에도 미국계 흑인 소년 톰, 대만계 소녀 밍, 그리고 가난하지만 유쾌하고 패션에 관심이 많은 아타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친구들이 등장합니다. 영화는 이 다채로운 배경을 가진 아이들의 우정이 사회적 압력과 개인적인 신념의 차이 속에서 시험받고 흔들리며 변화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따라갑니다.


유타는 겉보기에는 세상 걱정 없어 보이는, 음악과 친구들과의 현재에만 몰두하는 소년입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토종 일본인으로, 미래에 대한 거창한 계획이나 고민보다는 지금 당장 친구들과 함께 DJ 부스에서 음악을 틀고 옥상에서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고 떠드는 이 순간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라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의 밝고 태평해 보이는 모습 이면에는 변해가는 친구들을 보며 느끼는 외로움과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반면 코우는 유타와 가장 친한 친구이지만, 유타와는 사뭇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는 일본에서 4대째 살고 있는 재일 한국인입니다. 일본 사회 내 소수자에 속하는 코우의 일상에는 차별과 편견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길거리에서 경찰에게 부당하게 검문을 당하거나, 학교 내 자위대 특강 참여에 제한을 받는 등 구체적인 차별 사례들이 영화 속에 묘사됩니다. 코우는 장학금을 받고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이러한 부조리한 현실에 어느 정도 순응하고 침묵하려 합니다. 하지만 같은 반 친구 후미와의 만남과 여러 사건들을 겪으면서 점차 사회의 문제점들에 눈을 뜨게 되고, 결국에는 부당함에 맞서 저항하는 무리들과 함께하게 됩니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 흔들리는 우정

코우가 점차 사회 문제에 눈을 뜨고 변화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행동주의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는 반면, 유타는 그런 코우의 급진적인 변화가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현재의 안온함마저 깨뜨릴까 봐 두려워하고 불안해합니다. 사회 시스템이 개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면서, 가장 가까운 친구 사이마저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어버리는 현실적인 모습이 반영되어 씁쓸함을 자아냈습니다.


유타와 코우가 함께 있을 때 경찰이 나타나 코우에게만 신분 증명을 요구하는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연출되는데, 이는 그들이 처한 불평등한 현실과 그로 인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관계의 균열, 그리고 사회적 낙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유타는 코우에게 "시위한다고 세상이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코우는 그런 유타를 "현실에 안주하는 한심한 녀석"이라고 여기며 둘 사이의 거리는 점차 멀어집니다. 심지어 코우는 자신의 어머니에게조차 "세상이 이렇게 불공평한데 왜 엄마는 이렇게 편하게 사냐"고 다그치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철없는 모습일 수도 있고, "나는 너희들이 침묵하고 있는 부조리함에 이렇게 저항하고 있어!"라는 우월감이나 선민의식이 엿보이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이는 코우의 저항 의식이 때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관계를 파괴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복합적인 면모입니다.

저항과 타협, 그리고 진정한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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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일방적으로 누구의 편을 들지 않습니다. 사회 변화를 열정적으로 외치던 코우는 정작 자신의 대학 장학금이 걸린 문제 앞에서는 침묵하는 현실적인 타협을 선택합니다. 반면에 시위에 대해 냉소적이었던 유타는 부당하게 빼앗긴 음악 동아리의 장비를 되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마지막에는 모두가 지켜보는 학교 강당의 연단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그 사건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모두 지겠다고 용감하게 선언합니다. 거창한 구호나 이념보다 때로는 친구를 지키려는 작은 행동, 혹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려는 태도가 더 진실된 용기일 수 있음을 유타를 통해 보여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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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영화는 이 균열과 갈등 속에서도 여전히 빛나는 우정의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포착합니다. 감시 시스템 철폐를 외치는 서툴지만 진심 어린 아이들의 모습, 힘든 일이 있을 때 서로의 어깨에 기대거나 꼭 껴안으며 말없이 건네던 위로의 순간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유타의 마지막 용기 있는 외침까지. 영화는 '그렇게 해서 세상이 뭐가 바뀌는데?'라는 냉소적인 질문 앞에서, 결과가 어떻든 간에 함께 저항하고 연대하는 그 과정 자체가 얼마나 소중하고 의미 있는지를 강조하는 듯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우리가 절망 속에서도 여전히 희망을 이야기하고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는 이유라고, 영화는 조용히 말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프레임 속의 인물들: 시각적 언어의 힘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특히 감탄했던 연출 방식은 유타와 코우, 이 두 주인공을 화면 안에 담아내는 방식이었습니다. 영화를 유심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감독은 의도적으로 창틀이나 문틀, 복도의 기둥, 계단 난간, 다리의 구조물 같은 화면 속의 다양한 '선'과 '프레임'을 이용해서 두 인물을 시각적으로 분리시키거나, 마치 어딘가에 가두는 듯한 구도를 반복적으로 사용합니다.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아주 가까이에 붙어 있을 때조차도 이 프레임은 어김없이 등장해서 그들 사이를 갈라놓고 각자를 가둬둡니다.


이 '프레임'과 '선'은 그들이 처한 서로 다른 사회적 환경의 보이지 않는 벽, 그들이 느끼는 내면적인 거리감, 관계의 균열, 그리고 그들을 억압하고 분리시키려는 사회 시스템의 힘 같은 것들을 시각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러한 시각적 언어 덕분에 관객들은 대사나 설명 없이도 두 소년이 느끼는 답답함과 불안감, 그들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사회의 압력을 훨씬 더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멈춰진 순간: 결말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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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결말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졸업과 함께 톰은 미국으로 떠나고, 아타와 밍은 연인이 되어 그들만의 시간을 보낼 테고, 코우는 아마도 계속해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유타의 미래는 영화 속에서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습니다. 예전처럼 헤어지면서 장난스럽게 "아이시떼루(사랑해)"라고 외치지도 않습니다. 어딘가 조금은 서먹하고, 담담하게, 어쩌면 조금은 쓸쓸하게 서로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넵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장면에서도, 앞서 언급했던 그 '프레임' 연출이 아주 명확하게 등장합니다. 카메라는 육교의 구조물을 두 사람 사이에 두고, 그들을 분리시켜 담아냅니다. 그동안 그들이 함께했던 시간이 끝나고, 이제는 각자의 길을 가야만 하는 현실적인 이별의 순간, 혹은 건널 수 없는 그들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것이겠죠.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유타가 자신과 코우 사이를 가로지르던 그 육교 구조물의 '선'을 순간적으로 확 넘어서면서 코우를 간지럽히는 장난을 칩니다. 그리고 그 찰나에 화면은 그대로 정지되고, 음악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평소에도 유타는 친구들에게 갑자기 다가가 간지럽히는 장난을 자주 쳐왔었습니다.


이 엔딩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제가 느낀 점을 말씀드리자면, 비록 현실의 시간 속에서는 각자의 길을 가며 멀어질지라도, 함께했던 시간의 소중한 기억과 우정만큼은 그 어떤 사회적 구조물이나 보이지 않는 선으로도 완전히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경계를 넘어서려는 찰나의 순간을 정지시켜버린 것은, 앞으로 그들 앞에 어떤 삶이 기다릴지, 그들의 관계가 또다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평소처럼 친구 사이에 해맑게 장난치며 웃고 떠들었던 그 순간이 이대로 멈춰서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유타의 바람을 강조하려는 장면 같기도 했습니다.

불안한 세상 속, 희망을 묻는 영화

네오 소라 감독의 <해피엔드>는 청춘 영화라는 익숙한 외피 속에, 획일화를 강요하고 소수자를 배제하며 감시와 통제가 일상화된 현대 사회의 모순을 그리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끝까지 지켜나가야 할 인간적인 연대의 중요성을 담아낸 인상 깊은 작품이었습니다.


이미 망해버린 것처럼 보이는 답답하고 불안한 세상 속에서도, 우리는 왜 여전히 희망을 이야기해야 하고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는지,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이라 할지라도 저항하고 목소리를 내는 행위 자체가 왜 소중하고 의미 있는지, 영화는 이러한 묵직한 질문들을 등장인물들의 서툴지만 진심 어린 행동들과 그들의 복잡한 관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함축하는 멈춰진 순간의 강렬한 이미지를 통해 던지고 있습니다.


보고 나서도 오랫동안 곱씹게 되는 영화였습니다. 혹시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이 계시다면, 어떤 점들이 인상 깊으셨는지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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