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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황금종려상 '추락의 해부' 솔직 감상 후기

부부싸움 녹음 파일이 섬뜩했던 이유

by 나이트 시네마
본문은 구어체로 작성된 리뷰 방송 대본을 AI를 활용하여 다듬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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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오래되었지만 다시금 눈길을 끈 짧은 글귀를 보았습니다.


남들이 별로라고 했던 영화를 봤다.

남들이 맛없다고 한 음식점에 갔다.

영화는 재미있었고 음식은 맛있었다.

행복의 기준은 남들이 아니었다.

내가 행복해야 진짜 행복한 거다.


이 말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문득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남들이 극찬한 영화가 내게는 지루할 수 있고, 모두가 추천한 맛집이 내 입맛에는 맞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나'의 경험과 감정일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서두에 꺼내는 이유는, 오늘 이야기할 영화 '추락의 해부'에 대한 제 감상이 바로 그 지점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제76회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전 세계적인 찬사를 받은 이 작품에 대해, 솔직하고 개인적인 감상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알프스 산장에서의 비극

영화는 프랑스 알프스의 한적한 산장을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성공한 독일인 작가인 아내 '산드라'와 프랑스인 남편 '사뮈엘', 그리고 시각장애를 가진 아들 '다니엘'과 반려견 '스눕'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어느 평범한 날, 아들 다니엘이 반려견과 산책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아빠 사뮈엘이 집 앞에서 피를 흘린 채 숨져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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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한 추락사지만, 그 원인을 알 수 없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인지, 발을 헛디딘 사고사인지, 혹은 누군가에 의해 떠밀린 타살인지 불분명한 상황. 결국 사건의 유일한 용의자로 아내 산드라가 지목되면서, 길고 지루한 법정 싸움이 막을 올립니다.

관객을 배심원으로 만드는 영리한 연출

'추락의 해부'는 법정 드라마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단순한 범인 찾기 미스터리 스릴러와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한 부부 관계의 내면을 섬세하게 해부하는 심리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영화의 제목 '추락의 해부'가 남편의 물리적 추락뿐만 아니라, 한 인간의 삶, 부부 관계, 그리고 우리가 진실이라 믿었던 모든 것들이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를 다층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참 잘 지은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의 가장 영리한 지점은 "그래서 진실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남편이 추락하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대신, 그 추락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엇갈리는 말과 기억, 증언들만을 관객에게 차례로 제시합니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마치 배심원이 된 것처럼, 누구의 말이 진실이고 누구의 말이 거짓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판단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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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산드라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그녀의 편에 서서 변호하고 싶어지다가도, 날카로운 검사가 등장해 예리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 '혹시 산드라가 정말 범인일까?' 하는 의심이 고개를 듭니다. 영화는 이처럼 관객의 심리를 끊임없이 흔들며, 섣불리 어느 한쪽의 편을 들지 못하도록 만드는 연출을 끝까지 유지합니다.

가장 현실적이기에 가장 끔찍했던 장면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언제부터 재밌어지는 거지?'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습니다. 주변의 극찬으로 인해 기대치가 한껏 높아진 상태였고, 개인적으로 무척 피곤한 주를 보낸 뒤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영화를 감상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전개에 다소 심드렁하게 앉아있던 제 정신을 번쩍 들게 한 장면이 있었는데, 바로 법정에서 부부 싸움 녹음 파일이 재생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남편 사뮈엘이 생전에 몰래 녹음해 둔 이 파일 속 부부 싸움은, 소름 끼칠 정도로 현실적이어서 보는 내내 불편하고 괴로운 감정을 자아냈습니다. 결혼 생활을 해보신 분들이라면 공감하시겠지만, 대부분의 부부 싸움은 처음부터 고성이 오가며 시작되지 않습니다. 일상적인 대화로 시작된 이야기는 점차 감정의 그라데이션을 그리며 격해지고, 서로의 가장 아픈 약점과 치부를 후벼 파는 날카로운 말들이 오가다 결국 폭발하고 맙니다. 영화는 이 과정을 마치 실제 부부의 집에 관찰 카메라를 설치해 촬영한 것처럼 생생하게 담아냈습니다.


이 장면이 유독 끔찍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아들 다니엘의 입장에서의 감정 이입 때문이었습니다. 영화는 부부 싸움 현장을 시각적으로 보여주지만, 본질적으로 이것은 법정에서 재생되는 '음성' 파일입니다. 시각장애를 가진 아들 다니엘은 실제 싸움이 벌어지던 그 순간에도, 법정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오직 소리만으로 부모님의 갈등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했을 것입니다. 지금 법정에 울려 퍼지는 그 끔찍한 소리들을, 어린 아들이 홀로 견뎌냈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무척 괴로웠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개인적인 자기반성이었습니다. 곧 결혼 10년 차가 되는 저 역시 아내와 '아이 앞에서는 절대 목소리를 높이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살다 보면 그 약속을 지키기 어려운 순간들이 찾아오곤 합니다. 영화 속 다니엘의 고통에 이입하다 보니, 저희 부부가 언성을 높일 때 방 안에서 그 소리를 듣고 있었을 제 아이의 심정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싸우는 소리를 들으며 어떤 공포와 불안을 느낄까요? 이 장면은 제게 자기반성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진실보다 가십에 열광하는 시선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와,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단연 아들 다니엘입니다. 그는 사건의 유일한 현장 증인이 될 수 있는 인물이지만, 동시에 가장 취약하고 흔들리기 쉬운 존재이기도 합니다. 법정에 서서 엄마와 아빠 사이에 있었던 일을 증언해야만 하는 그의 심리적 압박감은 상상하기조차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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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후반부, 다니엘의 증언이 재판의 결과를 결정짓는 중요한 장면에서 인상 깊었던 연출이 있습니다. 부부의 치부가 드러나는 자극적인 내용(싸움 녹음 파일 등)이 오가는 재판에는 방청석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재판의 향방을 가를 다니엘의 결정적인 증언이 이루어지는 날, 재판정 뒷자리는 텅 비어 있습니다. 이는 대중과 언론의 관심이 사건의 '진실'보다는 자극적인 '가십'에 쏠려 있음을 보여주는 서늘한 연출이었습니다. 범인이 누구인지는 그들의 주된 관심사가 아닌 것입니다. 감독은 텅 빈 방청석이라는 단 하나의 연출을 통해 이러한 세태를 효과적으로 대비시켜 보여줍니다.

언어의 장벽

또 하나 흥미로웠던 지점은 '언어'의 문제였습니다. 독일인인 산드라와 프랑스인인 사뮈엘은 서로의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소통하기로 합의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소통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지, 그로 인해 평소 두 사람 사이에 얼마나 많은 오해와 어려움이 있었을지 짐작하게 합니다.


최근 한 통계에서 부부 싸움의 원인 1위가 '말투'라는 결과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 결과를 영화에 대입해 보면, '말'이라는 것이 관계에서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내가 가장 익숙한 모국어로 감정을 표현해도 온전히 전달되지 않을 때가 많은데, 서툰 외국어로 소통해야만 했던 부부의 관계에는 얼마나 많은 난관과 오해가 쌓여 있었을까요. 어쩌면 단순한 소통의 부재를 넘어, 서로에 대한 깊은 불신과 상처로 이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치며

솔직히 말해, '추락의 해부'는 모두에게 재미있을 영화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2시간 30분이라는 긴 상영 시간과 법정 드라마 특유의 방대한 대사량은, 자극적인 장면이나 빠른 전개를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개인적인 컨디션과 맞물려 이 영화를 온전히 감상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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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만큼은 압도적이었습니다. 특히 주인공 산드라를 연기한 배우 산드라 휠러는 강인함과 연약함을 오가는 복잡한 내면을 스크린에 완벽하게 구현해냈습니다. 그녀의 놀라운 연기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가 과연 지금과 같은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칸 영화제에서 '개 종려상'을 받은 반려견의 연기 또한 CG나 로봇 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가 막혔습니다.


비록 저에게는 2시간 30분의 힘든 여정이었지만, 이 영화를 좋게 보신 분들의 시선이 궁금합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영화를 인상 깊게 보셨다면, 어떤 관점에서 영화를 바라보면 더 깊은 재미를 느낄 수 있는지, 혹은 어떤 장면이 특별한 의미를 가졌는지 댓글로 알려주시면 기쁜 마음으로 배우고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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