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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주년 부산국제영화제, 축제의 뒤를 돌아봐야 할 시간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심사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

by 나이트 시네마

https://naver.me/GhSvd9L3

본문은 구어체로 작성된 리뷰 방송 대본을 AI를 활용하여 다듬은 글입니다.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대한민국 대표 영화 축제,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한 프로그래머가 개인 SNS에 남긴 글이 영화계 전체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출품된 영화들을 1.5배속, 심지어 2배속으로 보거나 건너뛰며 검토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토로한 그의 글은 수많은 영화인의 공분을 샀습니다. 자식처럼 공들여 만든 작품을 출품한 감독의 허탈함과 무력감은 지극히 당연하며, 영화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부족한 처사라는 비판 역시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단순히 한 개인의 ‘자질 부족’이나 ‘부적절한 행동’으로 규정하고 넘어가는 것이 과연 올바른 해결책일까요? 그의 고백은 개인의 변명이나 하소연이라기보다, 높은 노동 강도에 내몰린 영화제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가 한 개인을 통해 터져 나온 ‘비명’에 가깝습니다. 이제는 특정 개인에게 향하는 분노의 화살보다는, 영화제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때입니다.

개인의 어깨에 지워진 수천 편의 무게

이번 논란의 핵심은 ‘과연 모든 출품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보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의 시스템 안에서는 물리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는 작품의 수는 매년 200편을 훌쩍 넘습니다. 이는 이미 치열한 예심을 거쳐 선정된 결과물이며, 실제 예심 단계에 출품되는 작품의 수는 이를 아득히 뛰어넘는 수천 편에 이를 것으로 추정됩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작품이 출품 마감일에 임박해서야 집중적으로 몰린다는 현실입니다. 물론 출품작이 조기에 제출된다면 심사에 큰 도움이 되겠지만, 많은 제작사가 빠듯한 후반 작업 일정을 소화한 뒤에야 출품할 수 있기에 이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결국 한정된 수의 프로그래머들이 매우 짧은 기간 안에 이 모든 영화를 검토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 편당 2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을 온전히 할애하는 것은 이상에 가까운 일이 되어버립니다. 프로그래머의 고백처럼 주말도 없이 밤을 새워도 하루에 수십 편의 영화를 검토해야 하는, 이른바 ‘스크리너 지옥’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고충은 비단 이번에 목소리를 낸 프로그래머 한 명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일하는 많은 프로그래머들이 비슷한 어려움을 토로해왔습니다. 이는 영화에 대한 애정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주어진 시간을 절대적으로 초과하는 과도한 업무량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특히 올해 BIFF는 30주년이라는 중요한 해를 앞두고 오히려 핵심 인력인 프로그래머의 수가 줄어들어, 행사 준비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내부에서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이번 논란은 어쩌면 예견된 인재(人災)였을지도 모릅니다.

불안정 노동이 만연한 문화예술계의 민낯

이번 사태는 부산국제영화제라는 특정 조직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문화예술계 전반에 깊이 뿌리내린 열악한 노동 환경과 불안정한 처우의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수많은 영화제 스태프와 프로그래머들은 안정적인 고용 형태가 아닌, 프로젝트별 단기 계약직이나 프리랜서 신분으로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과거에 비해 처우가 일부 개선된 측면이 있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여전히 ‘스크리너 지옥’이라 불리는 비현실적인 업무 강도는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국제적인 행사를 치러내야 하는 영화제 조직의 특성상, 대부분의 실무는 단기 스태프들의 희생과 열정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업무 강도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용 불안은 경험 많은 중견 인력들이 현장을 떠나게 만드는 주된 원인이 되며, 이는 장기적으로 영화제의 전문성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2024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술인들이 창작 활동 외에 느끼는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으로 낮은 보수와 고용 불안이 꼽혔습니다. 화려한 레드카펫과 축제의 이면에는 이처럼 불안정한 노동에 시달리는 수많은 문화예술 노동자들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입니다. 프로그래머의 ‘2배속 관람’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의 표면으로 드러난 하나의 증상일 뿐입니다.

비난이 아닌 근본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

한 프로그래머의 SNS 글이 결과적으로 부적절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계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개인에 대한 비난과 질책에서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 사건은 그동안 모두가 알면서도 애써 외면했던 ‘판도라의 상자’를 연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이제는 건설적인 대안을 찾는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가장 먼저, 프로그래머를 포함한 영화제 스태프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충분한 인력을 확보하고 업무 분담을 합리화하여 개개인에게 가해지는 업무 강도를 낮추고, 이에 합당한 보상 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또한, 출품 시스템 자체의 개선도 시급합니다. 출품 마감 시기를 분산하거나 조기 출품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 심사 기간의 현실화를 위한 영화제 전체 일정 조정 등 시스템 전반을 수술대에 올려놓고 면밀히 검토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책임감과 영화에 대한 애정만으로 영화제를 운영하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프로그래머를 비롯한 내부 구성원들의 목소리가 존중받고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소통 체계를 마련하여 신뢰와 협력의 조직 문화를 구축하는 노력이 필수적입니다.


한 사람의 글로 촉발된 이번 논란이 소모적인 감정싸움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창작자는 존중받고, 노동자는 보호받으며, 관객은 신뢰할 수 있는 건강한 영화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진지한 성찰과 대화가 절실합니다. 프로그래머의 고백이 한국 영화계의 곪아 있던 상처를 드러냈다면, 이제는 모두가 함께 그 상처를 치유할 방법을 모색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30주년을 맞는 올해, 이 논의가 부산국제영화제와 한국 영화계 전반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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