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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예르모 델 토로의 명작, '셰이프 오브 워터' 리뷰

어둠 속에서 건져 올린 기묘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by 나이트 시네마

https://youtu.be/j_84qCvnNlY

본문은 구어체로 작성된 리뷰 방송 대본을 AI를 활용하여 다듬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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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2017년 작품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기묘하면서도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어른들을 위한 동화입니다. 델 토로 감독의 작품 세계를 꾸준히 따라온 분들이라면, 그가 유독 전쟁이나 그와 유사한 억압적인 시대를 배경으로 삼는 것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눈치채셨을 겁니다. '판의 미로'는 스페인 내전을, '헬보이'는 제2차 세계대전을, 그리고 최근작인 넷플릭스의 '피노키오'는 파시즘이 지배하던 이탈리아를 무대로 삼았죠.


이번 작품 '셰이프 오브 워터' 역시 미국과 소련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이던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감독은 왜 이토록 어둡고 혼란한 시대를 반복적으로 소환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가장 짙은 어둠 속에서야 비로소 가장 밝은 빛이 그 진가를 발휘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감독이 궁극적으로 그리고자 했던 순수함과 사랑의 가치가 암울한 시대적 배경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더욱 강력한 힘을 얻게 됩니다.


영화의 주된 무대인 미 항공우주연구센터는 국가 권력과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곳이지만, 그 내부는 차별과 폭력, 비인간적인 경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델 토로 감독은 바로 이런 시대의 광기 속에서, 역설적으로 사회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이들의 인간성이 얼마나 위대하게 빛날 수 있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지금부터 이 기묘한 동화가 어떤 지점에서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그리고 감독이 이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시대의 광기 속에서 피어난 소외된 이들의 연대

영화의 중심에는 너무나도 다른 네 존재가 있습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청소부 엘라이자, 그녀의 곁을 지키는 가난한 동성애자 화가 자일스, 현실적이지만 따뜻한 마음을 지닌 흑인 동료 젤다, 그리고 아마존에서 잡혀온 미지의 수중생물 '어인'입니다. 이들은 1960년대 미국 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난 소수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함께 연대하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는 과정은 이 영화의 핵심적인 정서를 이룹니다. 권력의 중심부에서 벌어지는 비인간적인 암투와는 정반대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기꺼이 손을 내밉니다. 감독은 이들의 연대를 통해 진정한 인간성의 가치는 강자의 오만한 권력이 아닌, 약자들이 나누는 공감과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샐리 호킨스의 경이로운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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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심장은 단연코 주인공 엘라이자를 연기한 배우 셀리 호킨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대사 한마디 없이 오직 표정과 눈빛, 섬세한 몸짓만으로 한 인간의 복잡다단한 내면세계를 완벽하게 스크린에 그려냅니다. 관객들은 그녀의 연기를 통해 언어라는 장벽을 넘어 소통하는 것이 무엇인지 체험하게 됩니다.


수조 속에 갇힌 미지의 존재를 처음 마주했을 때의 순수한 호기심, 그가 겪는 고통을 지켜보며 느끼는 깊은 연민,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는 뜨거운 사랑의 감정까지. 샐리 호킨스는 이 모든 감정의 흐름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섬세하게 표현해냅니다. 덕분에 인간과 미지의 존재가 사랑에 빠진다는, 자칫 설득하기 어려운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어느새 엘라이자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 기묘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됩니다.


참고로, 이 신비로운 크리처를 연기한 배우는 더그 존스입니다. 그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불릴 만큼 '헬보이'의 에이브 사피엔, '판의 미로'의 판과 페일맨 등 수많은 작품에서 감독이 창조한 기묘한 존재들에게 영혼을 불어넣어 온 장인입니다.

상징과 은유

'셰이프 오브 워터'는 영화 곳곳에 상징적인 장치들을 숨겨두어 그것을 해석하는 재미 또한 상당합니다.


먼저 제목인 'The Shape of Water(물의 모양)' 자체가 영화의 핵심 주제를 관통합니다. 물은 정해진 형태가 없습니다. 어떤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 그 모양이 자유롭게 바뀝니다. 감독은 사랑 또한 이와 같다고 말하고 싶었던 듯합니다. 사랑 역시 인종, 종족, 성별, 장애와 같이 세상이 만들어 놓은 편협한 틀이나 경계에 갇히지 않고, 어디에나 자유롭게 스며들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이고 강력한 힘이라는 것을 제목 자체가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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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인 스트릭랜드와 관련된 상징들도 흥미롭습니다. 그는 성공한 미국 백인 남성의 상징인 캐딜락을 구매하며 '아메리칸드림'을 이뤘다고 믿지만, 정작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차의 색깔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합니다. 이는 그가 추구하는 성공이 얼마나 겉만 번지르르하고 공허한지를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또한, 어인에게 물린 뒤 점점 썩어가는 그의 두 손가락은 그의 내면이 얼마나 부패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각적인 은유로 기능합니다. 폭력과 증오를 선택할수록 그의 인간성 또한 함께 썩어 문드러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죠.


영화 중반, 갑작스럽게 흑백으로 전환되며 펼쳐지는 뮤지컬 시퀀스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억압된 현실 속에서 단 한 번도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했던 엘라이자가 사랑이 주는 벅찬 감정을 온몸으로 노래하고 춤추는 그 순간은, 그녀의 내면이 얼마나 풍부하고 아름다운지를 보여주는 황홀한 장면으로 기억됩니다.

명확한 선과 악

물론 이 영화가 모든 사람에게 긍정적으로만 다가간 것은 아닙니다. 일부 관객들은 인간과 수중생물의 로맨스라는 설정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렵거나 불편하게 느끼기도 했고, 스트릭랜드라는 악역이 너무 평면적으로 그려져 아쉬웠다는 비판도 존재합니다.


이러한 의견들에는 충분히 공감 가는 지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장르가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설정들이 어느 정도 이해되기도 합니다. 동화 속 악당은 때로 명확하고 절대적인 악으로 그려져야만 주인공들의 순수한 사랑과 선함이 더욱 극명하게 대비되면서 주제가 선명해지는 효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스트릭랜드는 개인의 서사를 가진 입체적 인물이라기보다, 당시 사회가 강요했던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권력 그 자체를 상징하는 역할에 가깝습니다.

구원의 서사

이 모든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는 마지막 장면은 가히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평생 엘라이자의 약점이자 상처라고 여겨졌던 목의 흉터가, 물속에서 그녀가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아가미로 변하는 순간은 온몸에 전율을 일으킵니다.


육지에서 그녀는 장애를 가진 사회적 약자였지만,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물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완전한 형태를 찾고 영원한 안식을 얻게 됩니다. 불완전했던 두 존재가 서로를 통해 온전해지는 이 순간이야말로, 델 토로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진정한 '사랑의 모양'이 아니었을까요.

종교적 메타포로 읽기

'셰이프 오브 워터'는 성경과 연관 지어 해석할 때 더욱 풍성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영화의 핵심인 '어인'은 인간들에게 붙잡혀 와 실험 대상이 되고 학대당하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를 단순한 괴물이 아닌, 어딘가 신성하고 구원자 같은 존재로 묘사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그의 '치유 능력'입니다. 그는 자신을 돌봐준 자일스의 상처를 낫게 하고 빠졌던 머리카락을 다시 자라게 해주며, 마지막에는 총에 맞아 죽어가던 엘라이자에게 아가미를 만들어주어 다시 살려내는 기적을 행합니다. 이는 신약성경에서 예수가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려낸 기적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박해받으면서도 타인의 고통을 끌어안고 치유하는 모습에서, 어인은 예수의 상징, 즉 구원자의 메타포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주인공 엘라이자의 서사를 통해 더욱 분명해집니다. 목소리를 잃고 세상과 소통하지 못했던 그녀는 어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삶이 변화하고, 마침내 물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어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로맨틱한 해피엔딩을 넘어, 과거의 상처와 고통을 벗어나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구원'과 '재탄생'의 서사로 읽힙니다. 특히 엘라이자가 물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 장면은, 세례를 통해 과거의 죄를 씻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기독교 의식과 깊은 연관성을 가집니다.


영화의 모든 장면에 등장하는 '물' 역시 중요한 상징입니다. 성경에서 물이 정화, 죄의 씻음,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처럼, 이 영화에서도 물은 엘라이자의 억압된 욕망을 해방시키고 그녀를 궁극적인 구원으로 이끄는 신성한 매개체 역할을 합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기묘하고 아름다운 질문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장기가 집약된 명작입니다. 기괴하고 아름다운 판타지 로맨스라는 외피 속에, 소수자들의 연대, 구원과 재탄생이라는 깊이 있는 신화적 서사를 품고 있습니다.


물론 복잡한 해석 없이, 감독 특유의 낭만적인 동화로 감상하더라도 충분히 아름답고 감동적인 작품입니다. 하지만 어인을 예수적 존재로, 엘라이자의 변화를 구원의 서사로, 그리고 물이라는 이미지를 신성한 변화의 매개체로 해석하며 감상한다면 이 영화가 가진 메시지는 한층 더 풍성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고 혐오하는 세상 속에서, 가장 연약해 보이는 존재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지켜내는 이 기묘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우리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남깁니다. 여러분은 이 기묘한 사랑 이야기를 어떻게 보셨는지, 또 어떤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으셨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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