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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얼굴' 상징 해석, 결말 해석

연상호 감독이 던지는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질문

by 나이트 시네마
본문은 구어체로 작성된 리뷰 방송 대본을 AI를 활용하여 다듬은 글입니다.

https://youtu.be/9lfy3mU8IR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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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지옥' 등 거대 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로 잘 알려진 연상호 감독. 하지만 오늘 이야기할 영화 '얼굴'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정반대의 지점에 서 있는, 작지만 묵직한 울림을 주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미스터리 스릴러를 넘어, 우리 사회에 내재된 폭력성과 편견의 민낯을 서늘하게 파고들며 관객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거대 자본에서 벗어나 담아낸 감독의 진심

영화 '얼굴'은 제작비 2억 원, 촬영 기간 단 3주, 스태프 20여 명이라는 소규모 환경에서 제작되었습니다. 국내 독립영화 평균 제작비가 3억 원인 것을 감안하면, 그보다도 훨씬 적은 예산으로 완성된 셈입니다. 외부의 대형 투자 없이 만들어진 이 작품에는 배우들 역시 뜻을 함께했습니다.


특히 주연을 맡은 박정민 배우는 러닝 개런티(흥행 수익에 따라 출연료를 받는 방식)로 참여하며 "좋은 이야기에 힘을 보탤 수 있는 것이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혀 작품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실제로 시각장 장애를 가진 아버지를 둔 그에게 이 영화는 더욱 뜻깊은 작업이었을 것입니다.


연상호 감독은 과거 서울독립영화제 등에서 상영되는 독립영화들을 보며 자극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창작자가 자신의 비전을 비교적 자유롭게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독립영화가 지니는 예술적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얼굴'은 거대한 자본의 외압에서 벗어나 감독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마음껏 펼쳐낸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의 초기 애니메이션 작품에서 느낄 수 있었던 특유의 날것 같은 에너지와 사회를 향한 냉철한 통찰력이 영화 전반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 작은 영화는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놀랍게도 전 세계 157개국에 선판매되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는 "기억과 도덕적 모호성에 대해 잊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해외 매체들 역시 이 영화가 단순히 한 개인의 외모를 넘어 인간 사회에 내재된 폭력성과 편견을 드러낸다며 호평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40년 만에 드러난 어머니의 죽음, 그 진실은?

영화의 이야기는 시각장애를 가진 전각 장인(도장을 만드는 장인) 임영규와 그의 아들 임동환에게 40년 전 실종되었던 아내이자 어머니, 정영희의 백골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작됩니다. 태어나 단 한 번도 어머니의 얼굴을 본 적 없는 아들 동환은 다큐멘터리 PD 김수진과 함께 어머니의 죽음 뒤에 감춰진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영화는 1970년대 경제 부흥기 시절의 청계천 봉제 공장을 배경으로 어머니의 흔적을 추적합니다. 사건에 얽힌 여러 인물의 기억과 증언이 서로 교차하며 진실에 다가갈수록, 우리는 '아름다움'과 '추함'이라는 사회적 잣대가 한 인간의 삶을 얼마나 처참하게 뒤흔들 수 있는지를 목격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누가 범인인가'를 찾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은 편견과 마주하게 만드는 매우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이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에 숨겨진 의도

이 영화를 인상 깊게 만드는 첫 번째 요소는 바로 제목입니다. 한국어 제목은 '얼굴'이지만, 영어 제목은 단순히 'Face'가 아닌 'The Ugly(추함)'입니다. 이는 영화가 말하는 '추함'이 단순히 외모를 지칭하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합니다. 영화는 타인을 멋대로 폄하하고 낙인찍는 사람들의 추한 내면과 그 잔인한 시선을 정면으로 겨냥합니다.


'얼굴'은 한 개인의 악행이 아닌, 집단의 편견과 무관심, 그리고 비겁함이 어떻게 한 사람을 괴물로 만들고 비극을 낳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외모만으로 타인을 재단하는 폭력적인 시선과 그 뒤에 숨은 인간의 열등감, 자격지심이 개인을 어디까지 타락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관객은 누구 한 명을 콕 집어 비난할 수 없는, 책임이 안개처럼 흩뿌려진 진실 앞에서 큰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일부 관객들이 "너무 불편해서 별로였다"는 후기를 남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는 연상호 감독이 다분히 의도한 불편함이며, 바로 그 지점을 통해 우리 사회의 혐오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영화가 말하는 'The Ugly'는 스크린 속 특정 인물의 얼굴이 아니라, 어쩌면 바로 우리 자신, 혹은 우리 사회의 추악한 민낯일지도 모릅니다.

1인 2역

영화의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장치는 주인공 박정민 배우가 아들 '임동환'과 아버지의 젊은 시절 '임영규'까지 1인 2역을 소화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박정민 배우가 감독에게 직접 제안한 아이디어라고 하는데, 인간 내면의 이중성과 '추함의 대물림'이라는 주제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습니다.


영화 마지막, 다큐멘터리 PD가 동환에게 던지는 "오늘따라 아버지랑 더 닮아 보입니다"라는 대사는 이 모든 상징을 완성하는 서늘한 경고입니다. 이는 단순히 부자지간의 외모가 닮았다는 의미를 넘어, 진실을 외면하고 덮으려는 아버지의 비겁함, 그 추함이 아들에게도 고스란히 전이되었음을 암시합니다. 결국 아들은 진실을 밝히는 자가 아니라, 아버지의 세계와 시선에 동조하는 공범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도장의 섬뜩한 역설

시각장애인인 아버지가 한 사람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증표인 '도장'을 만드는 장인이라는 설정 또한 매우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도장은 타인을 멋대로 규정하고 낙인을 찍는 폭력적인 도구로 변질됩니다. 그는 아내를 '추한 여자'라는 사회적 편견 속에 가둬버리고, 그 부정적인 이미지를 낙인처럼 새겨버립니다. 동시에 그는 자기 자신에게도 '볼 수 없는 자'라는 열등감을 낙인찍습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보이는 것'에 더욱 집착하는 인물이라는 설정은 모든 비극의 씨앗이 됩니다.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없기에, 다른 사람들의 말과 시선이라는 '보이는 것'에 의존해 아내의 이미지를 만들고, 그 왜곡된 이미지를 진실이라고 믿어버린 것입니다. 결국 그가 만드는 도장은 자신의 열등감과 세상의 편견으로 누군가를 낙인찍는 도구가 되어버립니다.

논쟁의 중심, 엔딩의 의미

원작과 영화 모두 정영희의 사진을 공개하며 끝을 맺습니다. 이 엔딩을 두고 "얼굴을 끝까지 보여주지 않는 편이 주제를 더 잘 살렸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습니다. 얼굴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진정한 추함은 외모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과 시선에 있다는 메시지를 더 강조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정영희의 얼굴을 공개한 데에는 크게 세 가지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첫째, 정영희를 한 명의 온전한 인간으로 회복시키는 과정입니다. 마지막에 그녀의 사진을 보여주는 것은, 편견의 대상이었던 그녀에게 '정영희'라는 개인의 진짜 얼굴을 돌려주는 행위와 같습니다. 사진 속 그녀는 괴물도, 추녀도 아닌, 그저 시대를 살아간 평범한 여성이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관객의 편견을 직면하게 만드는 거울의 역할입니다. 영화를 보는 우리 역시 '정영희는 얼마나 못생겼을까'라는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평범한 얼굴이 등장하는 순간,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정도'의 기준은 대체 무엇일까요? 어느 정도여야 '괴물' 혹은 '추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기준이 과연 존재하는 걸까요? '그 정도는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정영희의 얼굴은 결국 관객 자신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진짜 추한 것은 당신의 시선일 수 있다"는 질문을 던집니다.


셋째, '추함'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그녀의 얼굴이 공개되는 순간, '추함'이라는 비난의 화살은 더 이상 그녀를 향할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 추함은 누구의 몫이 될까요? 바로 그녀를 괴물로 만들고 방치했던 주변의 모든 인물들, 나아가 우리 사회의 비겁함과 무관심에게로 그 책임이 고스란히 돌아가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엔딩에서 정영희의 얼굴을 공개한 것은 메시지를 약화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직설적인 방법으로 주제를 완성하는 감독의 의도된 선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무리

이 영화는 2018년에 출간된 동명의 그래픽노블을 원작으로 합니다. 단편 만화라 분량은 짧지만, 영화와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먼저 본 후 원작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큰 맥락은 동일하지만, 원작에는 영화에서 다루지 않은 디테일들이 조금 더 담겨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의 깊은 여운을 원작을 통해 곱씹어보며 부가적인 디테일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할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영화 '얼굴'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상태로 처음부터 다시 보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느끼게 하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 하나를 남깁니다. 진정으로 추한 것은 과연 누구의 얼굴이냐고 말입니다. 혹시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이 계신다면,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셨는지 자유롭게 공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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