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무엇을 외면하고 있습니까?
본문은 구어체로 작성된 리뷰 방송 대본을 AI를 활용하여 다듬은 글입니다.
혹시 '8번 출구'라는 게임을 아십니까? 한때 전 세계적으로 150만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엄청난 화제를 모았던 인디 공포 게임입니다. 개인적으로 공포 게임을 선호하지 않아 직접 플레이해본 것은 아니지만, 플레이 영상을 보면서 '아이디어가 참 기발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게임은 이른바 '리미널 스페이스(Liminal Space)', 즉 분명 익숙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기묘하고 낯설게 느껴지는 공간, 혹은 '백룸(Backrooms)'이라고도 불리는 개념이 주는 특유의 공포감을 '워킹 시뮬레이터'라는 장르로 효과적으로 풀어내며 수많은 사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런데 이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 <8번 출구>가 개봉했습니다. 이 영화는 개봉 전 칸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되어 8분 동안 기립박수를 받았으며,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96%라는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는 현재까지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비디오게임 각색 작품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으며, 베스트 포스터 디자인 상까지 수상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영화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이었습니다. 원작 게임은 '틀린 그림 찾기'라는 아주 단순한 규칙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이 설정을 가지고 90분짜리 장편 영화를 만든다고 하니, 자칫 잘못하면 주인공이 똑같은 지하도만 계속 걷다가 끝나는, 굉장히 지루한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모두 보고 나니, 제가 했던 걱정은 완전히 기우였습니다. 영화는 이 단순한 설정을 가지고 매우 쫀득하고 심리적으로 사람을 압박하는 스릴러를 만들어냈습니다. 원작 게임의 핵심 규칙은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거기에 깊이 있는 서사를 부여하여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무한 루프
영화의 주인공은 '헤매는 남자'라고만 불립니다. 그는 퇴근길 지하철에서 내리는 장면으로 처음 등장합니다. 그때 헤어진 여자친구에게서 전화 한 통이 걸려오는데, 그는 '임신'이라는 매우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됩니다.
하지만 이 남자는 자신이 아버지가 될 수도 있다는 그 '책임' 앞에서 명확한 대답을 주지 못하고, 전화를 회피하듯이 끊어버립니다.
그리고 아주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출구를 향해 걷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합니다. 걸어도 걸어도 똑같은 지하보도가 끝없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분명 '0번' 출구에서 시작했는데, '8번' 출구가 도무지 나오질 않습니다. 그는 하얀 형광등 불빛 아래, 그 지하 통로를 계속 맴돌게 된 것입니다.
그가 갇힌 지하도 벽에는 기묘한 네 가지 규칙이 적혀 있습니다.
- 첫째, 단 하나의 이상 현상도 놓치지 말 것.
- 둘째, 이상 현상을 발견하면 즉시 되돌아갈 것.
- 셋째, 이상 현상이 없다면 앞으로 나아갈 것.
- 넷째, 8번 출구를 통해서 밖으로 나갈 것.
말 그대로, 이 무한 루프의 지하도를 탈출하기 위해서는 벽의 포스터가 바뀌거나, 없던 물건이 생기거나, 혹은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는 등 미세한 '이상 현상'들을 찾아내야만 합니다.
공포를 자아내는 방식
이 영화가 영리하다고 느꼈던 첫 번째 지점은 공포를 만들어내는 방식입니다. 요즘 공포 영화들처럼 무언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놀라게 하는 '점프 스케어' 방식의 공포는 최소한으로만 사용됩니다. 호러 장르치고는 상당히 절제된 편입니다.
대신, 이 끝없이 반복되는 공간 자체가 주는 심리적인 압박감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이 압박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롱테이크' 촬영 기법을 정말 효과적으로 사용했습니다. 카메라는 계속해서 주인공의 뒷모습을 집요하게 따라가거나, 혹은 주인공의 시선이 되어서 이 공간을 훑어봅니다.
이는 관객 역시 주인공과 같이 이 기묘한 지하도를 실제로 '걸으면서' 미로를 탐험하는 듯한 현장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끼게 만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처음 한두 번은 '그냥 걷네' 싶다가도, 이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나중에는 자신도 모르게 화면에 집중하면서 '어? 방금 저 벽에 붙은 포스터 뭔가 이상한데?', '어? 아까 저기엔 저런 물건 없었는데?' 하며 주인공과 같이 '이상 현상'을 찾게 됩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지하도'라는 공간 자체가 가진 상징성입니다. 지하철역과 지하도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매일 지나치는, 그러나 누구도 머물고 싶어 하지 않는 '통과의 공간'입니다. 형광등 불빛 아래, 사람들은 빠르게 지나가고, 아무도 서로를 신경 쓰지 않는 곳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이 무감각한 일상의 공간을 무한히 반복시킴으로써, 우리가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공허함과 소외감을 극대화합니다.
죄책감의 연옥
그렇다면 이 영화의 핵심적인 질문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 남자는 도대체 왜 이 지하도에 갇힌 걸까요?
앞서 말씀드린 그 '전화', 바로 '임신' 소식을 듣고 '회피'했던 그 순간. 정확히 그 순간, 이 무한 루프의 지하도에 갇히게 됩니다.
이 지하도는 단순한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주인공이 회피한 그 '죄책감'이 구현된 일종의 '연옥'으로 보입니다. 그가 마주치는 수많은 '이상 현상' 중에는 그가 외면한 현실을 직접적으로 상기시키는 것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카와무라 감독은 인터뷰에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모가 되는 것에 대한 공포, 혹은 자신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지 확신하지 못할 때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이 끝없는 회랑은 책임과 성장에 대한 두려움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는 이 남자의 심리적인 함정으로 보였습니다. 그가 이 루프를 맴도는 과정은 자신의 후회와 두려움을 마주하고, 책임을 받아들이는 내면의 성장을 이루는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갑니다. 주인공의 개인적인 죄책감뿐만 아니라, 더 넓은 의미의 '사회적 무관심', 즉 '방관자적 태도'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영화의 가장 첫 장면을 다시 떠올려보면, 주인공이 지하철에서 한 남성이 시끄럽게 우는 아기와 그 엄마를 향해 고함을 치는 상황을 목격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다른 승객들처럼, 그 상황을 그저 외면합니다. 이어폰을 꼽고 스마트폰만 바라보면서 말입니다.
바로 이 '외면'이야말로, 현대인인 우리가 일상에서 너무나 무심코 저지르고 있는 또 다른 '이상 현상'이라고 영화는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벽에 적힌 첫 번째 규칙이 "단 하나의 이상 현상도 놓치지 말 것"이었습니다. 이는 '당신이 일상에서 외면하고 있는 그 문제들을, 그 잘못된 부분들을 더 이상 못 본 척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확장됩니다. 주인공은 이 무한 루프 속에서 타인의 고통을 외면했던 자신의 과거를 강제로 복기하면서, 그 '이상 현상'들을 찾아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8번 출구>가 상징하는 것
그렇다면 이 영화의 제목인 <8번 출구>는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첫째로, 가장 표면적으로는 0번부터 7번까지의 시련을 통과한 후에 도달해야 할 '탈출구'이자 '목표', 즉 해방을 상징할 것입니다.
둘째로, 숫자 8을 옆으로 눕혔을 때의 형태, 바로 '무한대(∞)' 기호입니다. 주인공은 지금 '무한 루프'에 갇혀 있습니다. 즉, '8번 출구'를 찾는다는 것은 자신이 갇힌 이 '무한의 굴레' (개인적인 죄책감, 사회적인 무관심, 책임을 회피하려는 습관)를 스스로 끊어내고, 마침내 '책임'을 선택하는 바로 그 순간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셋째로, 0에서 8로 가는 여정 자체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0은 '무(無)', 즉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은 상태이고, 8은 완성과 순환을 의미하는 숫자입니다. 주인공은 0번 출구에서, 즉 '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상태에서 시작해서, 8번 출구, 즉 '완전함'에 도달하기 위한 여정을 걸어야 합니다. 이는 미성숙에서 성숙으로, 회피에서 책임으로 나아가는 인생의 통과의례를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출구'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출구'를 찾으려 합니다. 힘든 상황에서 벗어날 출구, 관계의 문제를 해결할 출구,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날 출구 등. 하지만 영화는 진짜 '출구'는 밖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것들을 정면으로 마주할 때 비로소 열린다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여정을 경험해 보시길 권하며
<8번 출구>는 심리적으로 쫀득하게 조여오는 특유의 긴장감과, 공간 자체가 만들어내는 불안, 그리고 롱테이크 기법의 훌륭한 활용을 경험하고 싶은 관객이라면 분명히 즐기실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 호러나 스릴러 장르 그 자체를 즐기고 싶었던 분들이라면 다소 아쉬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일상에서 외면하고 싶은 순간들과 마주하는 용기에 대한 이야기를 원하신다면, 이 끝없는 회랑으로의 여정을 한번쯤 경험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이 영화는, 어쩌면 지금 스크린을 보고 있는 우리에게 '당신은, 당신 삶의 8번 출구를 찾았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은 어떻게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