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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ghteoff Dec 01. 2020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식구 외할머니

ㅡ 할머니, 내가 누구야?

갈회색 눈동자를 마주한다

외할머니는 얼마 남지 않은 희미한 기억을 되새김질하다가 말한다

ㅡ 누군지 몰라, 기억 안 나

몇십 겹의 주름이 박힌 얼굴로 웃는 듯 운다 나는 또박또박 말한다

ㅡ 할머니, 나 다연이야

ㅡ 응 다연이

고개를 끄덕인다 빨간 눈이 꾸욱 짓무르듯 다물렸다가 다시 벌어진다 속눈썹이 다 빠진 눈

두어 번 끼니를 챙겨드리고 여러 번의 용변을 봐드리고 나면 하루가 금방이다

할머니는 하루 건너 하루마다 울었다 원초적인 서러움을 달래주어도 마음 깊은 곳 응어리는 무엇으로도 풀리지 않았다 울음을 듣다 보면 힘이 빠졌다


작년만 해도 혼자 집 근처 경로당에 다녀올 수 있었던 할머니는 다른 집에 계시던 올해 갑작스럽게 치매를 맞게 됐다

안 그럴 수 있었는데

왜 이렇게 변했는지는 들어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할머니는 평생 남자가 제일이었고 여자는 흉을 봤다

아는 집에선 딸만 셋을 낳았다며 그 집 대신 걱정을 했다

그러면 엄마는 욕실에서 씻다 말고 화를 냈다 그만하라고

세 자매네 둘째인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나중에 할머니가 또 그 말을 하길래 내가 그랬다

ㅡ 할머니 우리 집도 딸만 셋인데? 우리 집 어떡해?

딸만 셋이여? 할머니는 매번 처음 듣는다는 듯 말했다

ㅡ 딸만 셋이면 어떡해, 제사를 누가 지내줘

ㅡ 내가 지내지! 나도 제사 지낼 수 있어

점점 언성이 높아졌다 몇 분이면 앞의 대화는 죄다 잊어버리는, 아흔이 넘은 노인을 두고서 그러자니 못할 짓이다 싶어 금방 입을 다물었다


그게 작년이고 올핸 그런 대화도 못한다 할머니는 당신 자식이 몇 명인지도, 이름이 뭔지도 이따금 잊어버린다

매일 물어보는 게 일과다 할머니, 내가 누구야?

어떨 때는 단박에 다연이, 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또 어떨 때는 누군지 모른다고 한다

엄마도 귀가하면 묻는다 엄마, 내가 누구야?

가끔은 이모 이름이 나오고 또 가끔은 엄마 이름이 나온다

내 이름과 엄마 이름, 언니, 동생, 이모 이름, 여기가 어디인지, 할머니 이름이 무엇인지까지 다 말해주다 보면 목이 아프다 큰 소리로 또박또박 말해야 할머니가 알아듣기 때문에

계속 주입식 교육으로 말하다가 내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ㅡ 할머니, 내가 누구야?

할머니가 말했다

ㅡ 이 집 딸

나는 맞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기억이 선명히 떠오르는 순간엔 할머니가 계속 되새긴다 당신 자식과 손주들 이름을 중얼거리며 잊어버리지 말아야 하는데 기억해야 하는데 자꾸 까먹는다며

지나가듯 하는 말도 있다 제때 죽어야 하는데 그만 살아야 하는데

고집 센 할머니를 상대하다가도 그런 말을 들으면 어쩔 수 없이 할머니의 마지막을 떠올리게 된다

뭘 먹어서 소화를 시키고, 걷고, 볼일 보는 일 자체가 어려운 사람에게는 남은 생 자체가 버거울 수 있겠다고도 생각한다

얇아진 생명은 무엇으로 연명하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할머니가 화장실을 가겠다며 몸을 일으킬 때 끊기고 만다

화장실 문에 벽에 협탁에 몸을 지탱하며 간신히 걷는 할머니를 보며

삶의 의미를 찾을 시간에 그냥 살아주기만 하면 좋겠다고 바란다

아니 사실 잘 모르겠다 그냥 할머니가 나를 좀 더 자주 알아보기만 해 주면 좋겠다

또 조금만 더 잘 먹고 잘 자기를

덜 아프기를



11월의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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