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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결 Feb 22. 2024

균열

고소한 냄새가 나

 우리는 자꾸만 익숙한 것을 찾아간다. 평소와 다르게 시도했다가 균열이 일면 불편하기 때문이다. 하던 대로만 하면 중간은 갈 텐데 괜히 시도했다가 실패할까 두려운 것이다. 차라리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괴로울 일도 없었을 텐데 스스로를 책망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방치하다니. 열망과 욕망은 균열에서 나온다. 메마르고 차가운 겨울의 땅이 녹는 것도 균열에서부터이다. 매번 땅이 갈라지는 모양이 다르기 때문에 싹들은 움트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 생의 치열함이 봄을 트이고 여름 장마를 견딜 뿌리를 자리 잡게 하는 것을 변화를 두려워 안주한다면 다시 꽃을 피워내긴 힘든 것이다.


 한때 열망과 욕망을 방치하고 무기력했던 적이 있다. 그저 머물며 세상을 관망했다. 점차 몸에서 게으름의 썩은 내가 났고, 오래된 나의 열망과 욕망은 감자에서 독을 품은 싹처럼 살아있는 채로 시들어갔다. 먹기 위해선 도려내야만 하는 싹이 돼버린 것이다. 흉 진 몸을 고집하며 나의 게으름이 나에게서 무엇을 빼앗아 갔는지 몰랐다. 생의 불꽃은 하고자 하는 의지와 그 불씨를 지키려 하는 의지인 것을 어리석게도 스스로 깨닫지 못했다. 녹슨 내 안의 불꽃은 쇳내만 풍기며 마지막 숨을 힘겹게 쉬는 게 다였다. 안쓰러워 위로하는 이들의 진실된 말들을 싫은 소리로만 들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 해도 듣는 사람이 준비가 안되면 소용이 없더라. 이런 나에게 다시 심장에 작은 불씨를 지핀 건 예상외의 것이었다.

 

 바로 '하기 싫어서 미뤘던 일'들이었다. 정확히는 '잘 못할 것 같아서 미뤘던 일들'이다. 이것들을 시도해 두려움이란 허상을 이겨내고 성취로 바꾸어 보니 몸이 설렘으로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불편한 균열이 흔들림이 설렘이 된 것이다. 도려진 부분들에 생살이 다시 돋고 화르르르 살아 움직이자 비로소 내 몸에서 진동하던 썩은 내가 참기름처럼 감질나는 고소한 냄새로 바뀌었다. 단내는 질리지만 고소한 냄새는 자꾸만 깊게 들이쉬고 싶다. 균열에서 변화로 변화에서 성취로 바뀌며 나는 고소한 맛은 나를 더욱 푹 빠지게 했다.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주는지 몰랐던 게 억울할 정도였다. 깊이 빠지고 사랑하기 위해선 두려움을 이겨낼 용기가 필요한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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