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짧은 이야기 1
영화전단지
베란다 책장에는 두꺼운 스크랩 파일 몇 권이 한줄로 꽂혀있다. 파일등에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이라 쓰여진 이것들은 한 때 내가 꽂혀서 열심히 모았던 영화전단지 뭉텅이들이다.
그 때는 한창 영화관을 차지하고 있던 헐리우드영화가 하락세를 타면서 한국영화와 일본영화가 붐을 일으키기 시작할 때였다. 친구와 거의 일주일에 두어번은 극장으로 퇴근했고 영화전단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일본영화와 함께 인디영화의 붐도 일어나 서울 인디영화관에서만 하는 영화의 전단지를 구하고 싶어 주말마다 서울 나들이를 나섰다. 그때쯤 cgv가 자체 인디관을 만들기도 했다. 충무로 대한극장, 종로3가 서울극장, 피카디리, 인디스페이스 등을 누비며 소위 레어템인 인디영화 전단지를 수거(?)하고 다녔다.
주말에 부지런히 모은 전단지들은 스캔해 블로그와 영화카페에 올렸다. 많이 수거한 전단지들은 카페에서 우편으로 나눔이나 교환을 하기도 했다. 카페가 아직도 있어 가보니 이런 글도 썼었다. 댓글도 좀 있는 걸 보니 지금이나 이때나 지독한 관종이었음은 분명했다. 도마뱀은 조승우, 강혜정이 나왔다는 거 말고는 기억이 안난다.
영화계의 부흥 때문인지 전단지는 지금처럼 한장으로 된 것이 아니라 2,3장이 부클릿(?)처럼 되어있는 경우도 많았다. 엽서도 많이 제작됐었다. 그렇게 몇 년을 모으다 그만두게 된 이유는 그 양이 너무 많아서 였다. 책장 1줄을 전단지 파일로, 한줄을 영화 잡지로 채우고 나니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가끔씩 전단지를 가져오곤 한다. 요즘은 아예 영화관을 못가지만 다시 가게 된다면 또 전단지를 모으게 되지 않을까 싶다.
기억하는 모든 것들은 사랑이 된다. 영화 <마법사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인디영화는 <마법사들> 이었다. 그 전에 송일곤 감독의 <거미숲>이라는 영화를 인상적으로 봐서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마법사들>은 원테이크의 실험적인 영화였다. 32번인가, 33번인가 촬영하고 나서야 원테이크가 성공했다고 했다.
영화의 메인테마곡은 러브홀릭의 <실비아>다. 이 영화를 보고 마음이 너무 슬퍼서 한동안 실비아만 들으면 울었던 기억이 갑자기 난다. 영화를 본지 너무 오래 되어서 내용은 기억이 잘 안나는데 예고편을 보니 또 마음이 울컥해져 온다. 간단하게 내용을 소개하자면 밴드 마법사 멤버들이 자은의 기일에 모여 추억을 나누는데, 요정 같은 자은이 그들의 곁을 돌아다니며 함께 울고 웃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은은 영혼이기 때문에 친구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마치 함께 있는 것 같다며 마지막에 노래를 부른다. 영화를 보면서 배우들이 연기들을 너무 잘해서 놀랐던 것 같다. 지금은 누구나 알만한 정웅인, 장현성 배우가 출연한다.
죽은 친구 자은을 연기한 배우의 이름은 이승비. 장화홍련에서 귀신을 봤다며 토하고 경기하는 이모 역할을 한 그 배우다. 마법사들을 보고 이 천재적인 배우가 열심히 활동해 주리라 기대했는데 갑자기 유학의 길로 떠났다. 몇 년 전 이승비 배우는 홀연히 나타나 자신의 배우 생활을 끊기게 했던 사람을 미투고발했다. 이 영화는 나중에 연극으로도 나왔었는데 안타깝게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 마법사들 > 감독 송일곤 | 출연 정웅인, 장현성, 이승비, 강경헌, 김학선 | 개봉 2006. 03. 30.
cgv포토티켓
cgv는 종이티켓을 점점 줄여가기 시작했다. 나처럼 티켓을 모으는 소소한 재미가 있던 사람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통보였다. 티켓을 영수증으로 주겠다니! 괘씸한 마음에 잠시 롯데시네마나 메가박스로 갈아탔는데 그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티켓을 없애고 영수증을 주어 다시 cgv로 돌아와야 했다.
이런 나같은 고객을 위해서인지 포토티켓을 내놓는 상술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지갑에도 넣고 다닐 수 있게 명함, 미니 폴라로이드 사이즈이지만 그 전에는 일반 엽서크기의 진짜 포토티켓이었다.
포토티켓이 작은 크기로 바뀌었을 때도 실망이 컸었다. 이 작은 명함 사이즈에 많은 의미가 담긴 포스터를 담겠다니. 그래도 꼬박꼬박 영화를 보았다는 징표를 남기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포토티켓 서비스를 하는 cgv에서 많이 보았다. 명함사이즈 포토티켓 장수는 세어보지는 않았으나 포토티켓 케이스가 4개째다.
포토티켓 유료비용은 천원이다. 작년까지는 그래도 최상위 등급을 유지했어서 포토티켓 비용을 따로 내지 않아도 됐는데(SVIP의 경우 1년에 96장의 포토티켓 쿠폰을 발급해준다), 작년 토니스타크를 보낸 이후로는 영화관을 잘 찾지 않아 올해 등급은 15년 만에 일반 등급이 되었다. 그리고 코로나가 터진 올해에는 1월 <닥터두리틀>을 본 이후로 단 한번도 가지 못했다. 영화관을 안가게 되니 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내가 이런 날이 올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