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같은 하루고 다른 선택을 한다. 바지 끝단에 모기가 물렸다. 움직일 때마다 슬슬 간지럽다. 바지 끝단에 모기가 물렸나. 잠만 이건 모기가 아닌 것 같은데. 이건 모기가 아니고, 선택 알러지가 또 도졌나보다.
선택 알러지의 증상은 다음과 같다.
-여름보다는 봄 혹은 가을에, 밤보다는 낮에 심하다.
-간지럽다. 거의 온 몸이.
-꼬리가 돋아날 것처럼 꼬리뼈와 엉덩이 그 사이가 꿈틀거린다.
-눈과 귀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들쑥날쑥 할 때가 있다.
지금 당장 기억나는 점은 이 정도이지만, 이 밖에도 설명하기 추상적인 증상들이 많아 따로 병원에 가 본적은 없다.
누구는 자판을 심었고 그 자리에 뿌리가 돋아났다. (20○○.○○.○○) 활자와 그림은 무수히 물을 붓고, 그 뿌리는 나에게서 자라날 수도 있겠다.
와, 멋지다.
와, 첨벙첨벙 되게 크다.
돋아난 식물이 가라앉은 후에는, 이파리마다 물고기의 지느러미를 달고 빠르게 갈라진다. 갈라진 곳에서 생겨난 갈라진 것들이 갈라지기만 한다. (특히 이때는 꼬리에 대한 환각 증상이 심하게 반복된다.)
책을 덮는 그 물살에 뿌리까지 훅 뽑혀나갔다.
홍수다! 홍수!
마르고 딱딱한 바닥에 앉아 벌어진 이파리 몇 개로 잔상을 맞춘다. 나는 책의 끝과 끝을 잘 맞추고 싶고, 지금 이 일에 몰두하고 싶은데 왜 잘 되질 않을까?
갈라짐은 걸음걸음마다 걸리거나 걸러지면서, 알러지 반응으로 털어내기도 하면서, 운이 좋다면 기록으로 비워내기도 하면서
어디쯤이면 고르게 될 수 있을까?
지글지글한 바닥에 누워 책의 뚜껑 같은 반듯하고 딱딱한 이불이 있으면 좋겠다고 숨을 고른다.
이 글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1) 책을 고르는 것부터 읽은 책을 회상하는 일까지 모두 강제성이 없는 ‘나’의 선택이어야 한다.
2) 책은 ‘흩어진 조각은 전체와 다름이 아니라는 마음’으로 써졌어야 한다. (설령 이런 전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확인할 방법은 없다.)
첫 번째 조건을 보면, 새삼 요 근래 독서들이 행복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가올 10월에는 강제성 100%인 글을 써야한다. ‘잘 읽고 잘 쓸 수 있을까?’ 보다는 ‘잘 맞춰 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압도하는, 스트레스는 있는 대로 받고 있지만 진도는 나가지 않는 글. 끔찍하다.
BGM : Kill The White (Vincent Augustus)
이 노래 가사를 찾아봤지만, 알 수 없었다. 더군다나 가수는 가사를 흘리는 식의 창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단번에 좋은 곡이라는 촉이 왔다. 무엇보다 이 노래는 이옥섭, 구교환 감독의 단편영화 배경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끝으로 덧붙이자면 이 글의 제목은 구교환 감독의 단편영화 “왜 독립영화감독들은 dvd를 주지 않는가?”의 제목에서 영감을 받았고, 앞선 노래 제목의 ‘White’는 앞으로 내가 채워야할 빈 종이들을 의미한다.…… 정말 끔찍하다.
(퇴고 후)
잠이 들기 전 네가 읽어준 책에는
자판을 심은 자리에
뿌리가 돋아나고 있었다.
활자와 그림은 무수히 물을 붓고,
와, 첨벙첨벙 크다
돋아난 것은 가라앉으며
이파리마다 지느러미 같은 것을 달고 흩어진다
갈라진 곳에서 생겨난 갈라진 것들이 갈라지기만 한다
덩달아 우리는 꼬리뼈와 엉덩이 사이를 꿈틀거렸지
불 끄자.
책을 덮는 물살에 우리
사이에 담가두었던 뿌리까지 훅 뽑혀나갔다
마르고 딱딱한 잎으로 네가 들려준 이야기의 잔상을 맞춘다
우리의 갈라진 목소리는 맺지 못하고,
지글지글한 바닥에 책뚜껑 같은 이불이 있으면 좋겠다고 숨을 고른다
-「자장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