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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경 Mar 18. 2019

시집 「나는 잠깐 설웁다」【서평】

내가 '잠깐' 서러운 이유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THE DARK SIDE OF THE MOON’이라는 앨범은 1970년대 발매되었지만 아직까지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허은실 작가의 글은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과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THE DARK SIDE OF THE MOON’ 앨범에 실려있는 사막 사진을 볼 때면 허은실 작가의 사막을 소재로 한 팟캐스트 오프닝이 떠오른다. “막막(寞寞)이란 글자는 사막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사막을 건너는 사람에게 위안이 되는 건, 역시 또 수억 광년을 막막히 건너온 별빛이네요” 핑크 플로이드 음악과 허은실 작가의 글은 수억 광년을 묵묵히 건너온 별빛처럼 오래 고민한 작품이라서 독자는 이를 통해 그동안 외면해왔던 자신의 내면과 마주한다.      

허은실 작가는 ‘이동진의 빨간 책방’이라는 팟캐스트의 작가로 오랜 기간 활동 중이다. 특히 이 팟캐스트의 오프닝 대본을 쓰는데, 그 대본들을 모아 2014년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을 출간하였다. 그리고 2017년 1월 그녀의 첫 시집 「나는 잠깐 설웁다」가 출간되었다. 

  

타인의 손에 이마를 맡기고 있을 때

나는 조금 선량해지는 것 같아

너의 양쪽 손으로 이어진

이마와 이마의 아득한 뒤편을

나는 눈을 감고 걸어가보았다     

이마의 크기가

손바닥의 크기와 비슷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난한 나의 이마가 부끄러워

뺨 대신 이마를 가리고 웃곤 했는데     

세밑의 흰 밤이었다

어둡게 앓다가 문득 일어나

벙어리처럼 울었다     

내가 오른팔을 이마에 얹고

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그 자세 때문이었다 

-「이마」 전문( 허은실, 「나는 잠깐 설웁다」. 문학동네, 2017년, 58-59쪽)-     

화자는 아무 생각 없이 이마에 손을 얹은 자신의 자세를 보며 슬픈 그 무언가를 떠올렸을 것이다. 부끄러운 자신의 이마를 맡길 정도로 소중했을 타인을 떠올렸을 수도 있다. 이렇듯 자세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순간에 불쑥 우리의 무의식을 보여준다. 그 무의식이 슬픈 추억이든 행복한 기억이든 그냥 내보인다. 그래서 무언가의 자세는 무언가의 솔직한 내면이다. 시인은 바로 그 자세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버지의 자세 : 아버지의 얼굴을 한 갓난아기      

아비는 춘궁이었네

기별 없이 찾아온 딸에게

원추리를 끊어다 무쳤네     

풋것은 오래 주무르면 맛이 안 나지     

꽃들에게 뿌리란 얼마나 먼가

이 맛은 수몰된 마을의 먼 이름 같아요     

아비는 오래 얼려둔 고등어 한 손을 내었네

고등어는 너무 비린 생선이에요

잡히면 바로 죽어버린다구요     

비린 날엔 소금으로 창자를 닦거라     

그런데 아버지 기일에 왜 

미역국을 끓이셨나요     

너를 좋아하다가 죽은 남자가 있다는구나

새 옷을 지어다 태워주었다     

세상에 미역처럼 무서운 것이 있을까

한 줌이었던 것이 이토록

방안에 가득하잖아요     

너무 오래 불리면 몸이 싱거워져     

검은 혀가 흰 허벅지를 휘감아요

내 몸에서 당신의 머리칼이 자라요     

약불에 뭉근히 두어라

미역국은 오래 끓여야 속이 우러나

불로 익히는 음식이란

뜸을 들여야 하는 거란다     

누가 부르는지 귓속이 간지러워요     

네가 피운 꽃들이 지고 있나보구나     

아침을 차려준다는

저녁을 짓는다는

그 말이 어여뻐서

숟가락을 쥐고 울었네     

아비는 말없이 가시를 발라주었네     

-「이별하는 사람들의 가정식 백반」 전문(위의 책, 16-17쪽.)-     

화자의 ‘아비’는 연락도 없이 찾아온 딸에게 맛있는 음식들을 건넨다. 여자에게 좋다는 원추리나물부터 고등어, 미역국까지. 그리고 음식의 조리법을 일러주기도 하는데, 이 음식들이 ‘이별하는 사람들의 백반’이라는 점에서, 자신이 떠났을 때에도 딸이 이 음식의 맛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아버지의 마음씨가 느껴지기도 한다. 이 시외에도 「뱀의 눈」, 「우리들의 자세」 등에서 ‘아버지’라는 시어가 여러 번 등장한다. 시인에게 아버지는 어떤 의미일까? 시인은 출산을 며칠 앞두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일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후 태어난 자식이 마치 아버지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고도 말했다. 그날의 경험은 상당히 충격적으로 느껴진다. 시인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을 정면으로 경험한 것이다. 시인의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아버지’라는 시어가 등장하는 시들을 읽다 보면, 마치 시인의 일기장을 읽는 듯하다. 나아가 그 날의  ‘슬픈 우연’에 기대서  “그런데 아버지 기일에 왜 미역국을 끓이셨나요”라는 구절을 읽어보면 좀 다른 의미가 보인다. 미역국을 처음 끓인 사람은 꼭 미역의 양을 실수하게 마련이다. 한 줌의 미역도 끓게 되면 무서울 정도로 불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미역의 생명력은 기일의 분위기와 대비된다. 하지만 아버지는 죽음에서 생명을 이야기하고 있다. 시인이 출산을 기다리며 들은 아버지의 부고 소식도 이와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 이 시에 등장하는 아비는 시인의 기억에 살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일 것이다. 시인은 담담하게 그 기억을 읊조리다가도 “아침을 차려준다는/ 저녁을 짓는다는/ 그 말이 어여뻐서/ 숟가락을 쥐고 울었네”하며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기도 한다. 시인은 그렇게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비가 많은 해다. 무당은 자꾸 물이 보인다 했다. 아버지는 산에서 발견됐는걸요. 바위를 덮은 이끼가 젖었다.

강물과 산이 푸른 웃음을 주고받는다. 만삭의 배를 감싸며 나도 씨익, 웃어주었다.     

아기는 뱃속에서 육십 년쯤 살고 나온 얼굴이다. 삼우제였다.     

청벽산은 푸르다.     

고요한 수면 아래     

흰 발목을 잡아채는 푸른 손아귀가 있다.

-「푸른 손아귀」 부분(위의 책, 14-15쪽.)-     

육십 년쯤 살다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을 하고 있는, 아버지의 삼우제에 태어난 아기의 이미지는 충격적이다. 무당에게 보인다는 물의 이미지는 태아를 감싸고 있는 양수(羊水)가 든 “만산의 배”로 옮겨 간다. 강물이 태아를 상징하고 산이 아버지를 상징한다면, ‘강물과 산이 푸른 웃음을 주고받는 장면’에서 삶과 죽음은 하나가 된다.

인도의 철학자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도 “삶과 죽음은 하나이다. 죽음을 이해하려면 삶 전체를 이해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볼프 에를브루흐는 『너와 함께 있을게』라는 그림책을 통해서 삶과 죽음이 같다는 생각을 더 쉽게 설명하고자 한다. 오리는 독일에서 가장 흔히 보이는 일상, 다시 말해 생을 상징한다. 반면 다음 페이지에 그려진 해골과 해골이 들고 있는 검은 튤립은 죽음을 상징한다. 오리와 해골은 대화를 나누는데, 오리가 먼저 해골에게 “대체 누구야. 왜 내 뒤를 슬그머니 따라다니는 거야?”라고 묻는다. 그러자 해골이 “아 드디어 내가 있는 걸 알아차렸구나. 나는 죽음이야”라며 대답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오리로 인해 해골이 존재하고 해골로 인해 오리가 존재하는 식으로 삶과 죽음이 관계 맺고 있음을 설명한다. 허은실 시인은 ‘푸른 손아귀’라는 선명한 이미지를 통해 삶과 죽음의 관계를 그려내고 있다. 울창한 청벽산과 고요한 강물 아래에서 갑자기 “흰 발목을 잡아채는 푸른 손아귀”의 이미지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죽을 때가 돼서 죽은 것과 태어날 때가 돼서 태어난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둘이 동시에 일어났을 때 화자는 “푸른 손아귀”를 느낀 것이다.                        


피로한 자세 : 유리벽에 이마를 찧어도 그것에 다시 기대 살아야 하는 사람들     

구운 살의 냄새 가득한

성수 방면 마지막 전철

가방을 끌어안고 입을 벌린 채

기울어진 사내가

깨달음처럼 튀어나간다     

가방을 끌어안고 두리번거리는

등 뒤로 스크린 도어가 매끄럽게 닫힌다     

철새들은 한쪽 눈을 뜨고 잔대

감지 않는 거겠지

기린처럼 아름다운 동물이

서서 자야 한다니

이상해 벌레들이 자꾸

집에 들어와서 죽어

오늘도 내 팔을 내가 베고

쥐며느리처럼 등을 말고 잠이 들면

이상해 올라가고 있는데

추락하고 있어 이 꿈은

-「Midnight in Seoul」 부분(위의 책, 94-95쪽)-     

 ‘사내’는 매일 아침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지옥철’에서 사람들 틈에 끼여 출근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지하철 안은 사람들로 꽉 차 있어서 온갖 사람들의 냄새가 난다. 피곤에 절은 사내를 토해내고 간 지하철. 사내는 잠시 두리번거리지만 곧 출근시간에 맞춰 제 걸음을 옮길 것이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낸 사내는 속으로 “길은 컨베이어 벨트. 달려도 달려도 줄어들지 않아(「나는 잔액이 부족합니다」 부분)”라며 절규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돌아온 집은 ‘벌레들도 자꾸 죽어나갈 만큼’ 불안정한 곳이다. 사내는 ‘철새나 기린’과 같은 불편하고 긴장된 자세로 잠을 청한다. 자신도 챙기지 못할 만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사내는 ‘올라가고 있는데 추락하고 있는’ 너무 현실과 닮은 꿈을 꾼다.

이 시와 같이 피로한 사회의 모습을 다룬 시들이 시집의 4부에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명동 거리를 흘러가는 정어리떼

뒤엉키고 부딪치며 뻐끔거린다

거대한 수족관 속

미끈한 활어들이 헐떡이며

그것을 구경하고 있다     

24시 피트니스 센터 전면 유리창을

구름은 천천히 흘러가고     

사방 유리벽에 이마를 찧으며 우리는

-「활어 전문」 부분(위의 책, 114쪽.)-     

활어 전문집의 수족관에 갇힌 활어들이 거리 위의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다. 거리 위의 사람들은 활어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수족관에 갇혀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자신들을 옭아매고 있는 수족관의 존재는 알지 못한 채 “사방 유리벽에 이마를 찧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잔인해진다. 미래를 위해, 명예를 위해, 행복을 위해. 그럴듯한 이유를 대며 자기 자신을 더욱더 혹독한 구조 속에 가둔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이는 타자의 강요 없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인간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셈이다. 말 그대로 피로한 사회이다.     


마주 보는 자세 : 같이 있으면 위로가 되는 사람들

남자가 김치를 찢는다 가운데에다 젓가락을 푹 찔러넣는다 여자가 콩자반을 하나 집어먹는다 고개를 숙이고 있다 남자가 젓가락을 최대한 벌린다 다 찢어지지 않는다 여자가 콩자반을 두 개 집어먹는다 왼팔을 식탁 위에 얹고 고개를 꼬고 있다. 

남자가 줄기 쪽에 다시 젓가락을 찔러넣는다 젓가락을 콤파스처럼 벌린다 김치 양념이 여자의 밥그릇에 튄다 여자가 쳐다보지 않는다 콩자반을 세 개 집어먹는다 남자가 김치를 들어올린다 떨어지지 않은 쪽이 딸려 올라온다 여자가 콩자반을 네 개 집어먹지 않는다 딸려 올라가는 김치를 잡는다 남자와 여자가 밥 먹는 것을 중단하고 말없이 김치를 찢는다

김치를 전부 찢어놓은 남자와 여자가 밥을 먹는다 말없이 계속 먹는다 여자는 찢어놓은 김치를 먹지 않는다 깻잎 장아찌를 집는다 두 장이 한꺼번에 집힌다 남자가 한 장을 뗀다 깻잎 자루에서 남자의 젓가락 끝과 여자의 젓가락 끝이 부딪친다 찢어주느라 찢어지지 못한 늦은 아침

늙은 냉장고가 으음 하고 돌아간다 

-「소수 3」 전문(위의 책, 82쪽.)-     

이 시는 마침표도 없는 간결한 문장들을 반복하면서 늦은 아침밥을 먹는 남녀의 밥상을 그리고 있다. 식탁의 분위기는 차분하고 고요하고 말이 없다. 남녀는 서로가 필요한 것 이상으로 각자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여자는 남자의 김치를, 남자는 여자의 깻잎을 찢어준다. 남자와 여자는 침묵 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대 사회는 배출구가 없다. 더욱이 사람에게서 배출구를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 소통’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니다. 마주 본 채 재촉하지 않고 밥을 먹는 것만으로 편하게 아침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 그런 관계들이 현대 사회의 작은 배출구가 될 수 있다고 위로하는 것이 아닐까.       


매화가 피는 밤

하동역 역사(驛舍)

막차를 기다리며

두 노인

도라지를 나눠 핀다     

노파의 입술을 떠난

담배 연기

자줏빛 두루마기에 봄빛이 감긴다     

또 만날랑가

안 만날랑가     

질문이 가닿기 전

기차가 짧은 경적을 울리며 들어선다

거친 손들 뜨겁게

스쳤던가

막차가 떠나고     

강물 바라보는 노파

시선 닿은 어디쯤

물빛이 검다

-「하동역」 전문(위의 책, 86쪽.)-     

하동역의 플랫폼 건너편에 일자형으로 벚나무 가로수가 있어, 벚꽃의 개화시기인 4월 초 경이되면,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이 시의 배경도 “자줏빛 두루마기에 봄빛이 감긴다”는 것으로 보아 벚꽃 잎이 날리는 봄날의 밤인 듯하다. 두 노인은 기차를 기다리며 서로에게 “또 만날랑가/ 안 만날랑가”라며 묻는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없지만 그래도 묻는다. 기차와 강물은 두 노인의 미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기차는 막차이고, 멀리 보이는 강물의 빛은 검다. 두 노인이 죽음의 길로 가고 있음을 암시해주는 부분이다. 봄은 모든 생명이 시작을 외치는 계절이다. 반면 이 노인들은 한 겨울에 살고 있다. 아무리 죽음이 자연스럽다 해도 죽음을 앞둔 두 노인은 두려울 것이다. 그래서 두 노인이 던진 이 질문은 시에서 묘사하고 있는 장면을 더 애틋하게 만든다. 만약 한 노인이 여행을 가서 “내가 죽기 전에 여기를 또 올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면 이는 이곳에 올 수 없을 것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두 노인은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을 강하게 예감하면서도 앞선 질문을 던짐으로써 죽음을 앞두고 느껴지는 불안과 아픔을 공유한 것이다. 두 노인은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한다.     


끝으로 허은실 시인의 시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점을 언급하고자 한다.「소수 3」과 「하동역」에서 공통적으로 엿볼 수 있는 특징은 시의 ‘이야기성’이다. 다시 말해 시의 서사적 요소가 강하다. 허은실 시인은 눈에 들어오는 이미지를 보고 그 이전과 이후를 상상하는 것을 즐겨한다고 했는데, 그런 습관에서 비롯된 특징인 듯하다. 시의 이야기성은 소설과는 또 다른 특징을 가진다. 소설이 이야기를 풀고 확대해나가는 것이라면 시는 그 특유의 서술 양식상 이야기를 숨기거나 일부러 이야기를 결핍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수 3」에서도 여자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거나 서로 말없이 밥을 먹고 있다는 부분을 강조할 뿐 그런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하동역」에서도 마찬가지로 두 노인이 던진 ‘우리 또 만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대해서 “시선이 닿은 어디쯤 물빛이 검다”며 은근하게 대답 아닌 대답을 하고 있다. 또한 장면을 바라보는 시각이 영화 기법으로 치면 ‘롱테이크 기법’과 유사하다. 롱테이크(longtake)란 카메라가 멈추지 않고 오랜 시간 동안 촬영하고 또 편집의 조작 없이 영화에 적용된 화면을 말하는데, 이 기법은 영화의 흐름을 끊지 않고 긴 호흡으로 사실감을 유지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어떤 대상만을 부각해 묘사하고 있기보다는 남녀가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는 장면이나 두 노인이 플랫폼에 서있는 장면을 멀리서 바라본 상태에서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이런 시들은 롱테이크 기법의 장점과 유사한 효과를 갖는다. 그래서 허은실 시인의 이야기성은 다 읽고 나면 그 장면과 이야기를 함께 곱씹어 보는 묘미가 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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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이동진의 시네마 레터」, 문학동네, 1999.

이숭원, 「김수영의 시정신과 그 계승」, 서울여자대학교 인문과학대학 국어국문학과, 1999.

이숭원, 「시 비평을 만나다」, 태학사, 2014.

정상혁, “詩, 모든 설움 쓰다듬는 ‘혀’ 되길”, 조선일보, 2017.2.24.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삶과 죽음에 대하여」, 정채현 역, 고요아침, 2013.

최춘식, 「시의 이야기성 연구-Delire I의 분석을 중심으로」, 한국프랑스문화학회, 1998.

한병철, 「피로사회」, 김태환 역, 문학과 지성, 2012.

허은실,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 예담, 2014.

허은실, 「나는 잠깐 설웁다」, 문학동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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