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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경 May 31. 2019

총균쇠【서평】

역사적 과학의 첫걸음

  

「총균쇠」는 BC.11000년부터 이어진 인간의 역사를 담은 ‘입체적인 세계지도’다. 세계 이곳저곳의 인간의 역사를 대조하는 방식으로 현 세계를 설명하는, 시공간적으로 열려있는 역사 이야기인 것이다. 예시를 통해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16세기 스페인의 피사로가 잉카의 황제 아타우알파를 생포한 사건을 다룰 때 단순히 그 사건과 사건의 영향을 설명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타우알파가 피사로를 정복하지 않고 ‘왜 하필’ 피사로가 아타우알파를 생포할 수 있었는가?”와 같은 질문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독자 또한 이전의 역사를 접했던 방식보다 더 유동적으로 책을 읽게 되는데, 이 때문에 –책의 방대한 분량은 차치하더라도–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고민해보는 데에 많은 시간이 요구된다.       


「총균쇠」가 던지는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무한하지만, 이 모두를 관통하는 것은 “약 13000년 동안 인류는 어떻게 정복과 지배의 대상이 나눠진 것일까?”하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크게 세 단계 –세 개의 답이 각각 독립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단계’라는 표현을 쓴다- 로 나눠진다. 먼저 질문의 대한 직관적인 답은 바로 책의 제목인 총(기술적인 무기), 균(전염병에 대한 면역력), 쇠(야금술)이다. 좀 더 깊이 들어간 다음 단계에서 이 질문의 대한 답은 ‘야생 동식물의 가축화·작물화’이다. 본래 수렵채집의 생활을 주로 했던 인류는 식량 생산을 시작하고 가축을 작물화에 이용하거나 운송수단으로 쓰기도 하면서 큰 변화를 맞이한다. 가축화·작물화을 통해 잉여식량과 인구가 늘어나고 정주형 사회가 형성되면서 비로소 정치, 기술(발명품)이 발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마지막 단계에서 이 질문의 대한 답은 ‘지리적인 차이와 (기술)전파 방향 및 속도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류역사의 핵심적인 영향을 미친 식량생산이 독립적으로 발전한 곳은 대표적으로 비옥한 초승달지대 외에 몇 개의 지역에 불과하다. 대륙 또는 지역별로 가축화·작물화가 가능한 동식물종이나 기후조건이 달랐기 때문이다. 또한 특정 지역에서 발명된 기술이 전파되는 방향과 속도에는 대륙 간 주요 축이 큰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유라시아의 동서축이 아프리카나 아메리카의 남북축보다 빠른 기술전파에 유리했다.      


문자는 발명품 중에서도 아주 까다로운 축에 속하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발명된 지역은 극히 일부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독립적 또는 그럴 가능성이 있는 문자 발원지인 수메르, 중앙아메리카. 중국, 이집트는 식량 생산이 일찍이 시작된 곳과 일치한다. 책에서 한글이 언급되기도 했는데, 저자는 한글 자모가 중국 글자의 네모꼴 모양과 티베트 승려들의 문자 또는 몽고 문자의 알파벳 원리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언젠가 문자의 발명과 관련된 다큐멘터리에서 ‘물표’의 개념을 접한 적이 있다. 고대 인류는 잉여 식량의 거래를 위해 물표를 만들고 그 물표는 그림문자를 거쳐 점차 체계적이고 단순화된 ‘문자’의 형태로 발전했을 것이다. 이처럼 문자의 역사가 식량생산의 역사와 연결되는 것은 여러 학문은 결국 복잡한 인과관계 속에 서로 맞닿아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총균쇠」의 초판은 90년대 후반에 나왔으나 –즉 「총균쇠」의 내용이 20여년전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 

세계의 상황에 책의 내용을 적용시켜보면 여전히 「총균쇠」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먼저 저자는 유럽의 ‘만성적인 분열’과 대비되는 중국의 ‘만성적인 통일’을 지적하면서, 이를 중국이 유럽에 비해 기술적으로 도태된 원인으로 꼽는다. 그러나 나는 2019년 현재 중국의 화웨이가 5G를 개발하거나 미국과 무역전쟁을 버릴 정도의 위치로 도약했다는 점에서 중국이 유럽에 비해 기술적으로 크게 도태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중국의 만성적인 통일에 대한 강박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막대한 면적과 인구에 비해 전체 언어는 4가지 어족으로 분류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다양성이 빈약하다. 또한 중국은 기원전 진왕조가 정치적 통일을 이룩한 이래로 ‘통일의 역사’가 오래 이어져 왔다. 언어적, 역사적으로 나타난 중국의 이러한 흐름은 현재 중국의 제한적인 온라인 환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유튜브를 포함한 구글 검색서비스, 페이스북, 네이버블로그 등은 중국 현지 인터넷망을 통해 이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해외 로밍의 경우에도 중국 통신사를 쓰는 사람이라면 여전히 중국에서 제한하고 있는 인터넷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고 한다. 또한 ‘중국식 인터넷 문화: 민족주의 담론 분석(저자 : 이민자)’에는 만약 소수민족들의 집단저항이 담긴 내용이 인터넷에 올라온 경우 중국정부가 나서 이를 직접 제한하기도 한 사례들이 기술되어 있기도 하다. 이와 같은 중국의 온라인 환경은 2010년 구글이 중국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 중 하나이다. 중국의 정보통신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많은 정보와 의견들이 단시간에 확산되는 특수한 인터넷 환경에서조차 획일화의 강박을 이어가고자 하는 움직임이 중국의 또 다른 도태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되는 부분이다.     


책의 전반의 걸쳐 저자는 여러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인류가 정복과 지배의 대상으로 나눠진 것에는 환경적 요인이 주된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즉 어떤 민족이 지배의 위치에 있다는 것이 그 민족 자체가 더 우수하다는 것과 같은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제주도 난민 수용 찬반’문제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제주도에 들어온 500여명의 예멘 난민 수용문제를 두고 수용을 반대한다는 청와대 청원이 70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사실상 반대 입장이 거세다. 일단 현재는 법적으로 난민으로 인정받은 2명을 제외한 대부분은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은 상태라고 한다.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이유로는 우리나라의 재정 및 난민 수용 시설의 부족 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그들이 난민이기 때문에 혹은 예멘에서 왔기 때문에 신뢰가 안가고 위험하다’는 것은 난민 수용 반대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난민이 된 민족’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민족 자체가 열등하거나 원시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인 요인의 결과물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난민이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은 합리적인 의심이라기보다는 민족 배타주의라고 생각한다.     


“역사적 과학은 직접적, 궁극적 원인들의 사슬을 연구한다.”1)  「총균쇠」를 통해서 ‘역사적 과학’을 처음 첩했는데 인류역사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고, 그 지식의 고리가 현 세계까지 이어진다는 점에서, 역사적 과학이 연구하는 사슬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도 더 새롭고 큰 사슬의 연결고리들이 발견되기를 기대한다.     



1)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균쇠」, 문학사상사, 1997, 6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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