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야경 May 31. 2019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서평】

진심과 말의 무게

사람의 마음과 별개로,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은 점점 간결해진다. 현대인들은 오히려 그것을 원하는 것 같다. 수많은 작위적인 기념일을 만들어내고, SNS의 이모티콘, ‘선물하기’ 기능 등을 통해서 시각적으로 나름 명확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한다. 이때 말은 몇 마디 거둘 뿐이다. 이마저도 인터넷에 보기 좋게 쓰여 있는 카드문구를 복사하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마음을 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인간이 속마음을 ‘털어놓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마음」에서 ‘선생님’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에게 “자신의 심장을 도려내어 그 피를 ‘나’의 얼굴에 쏟아 붓는다.”1)     


하목 수석의 「마음」의 이야기 구조는 신선하다. 이야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져 있는데, 전반적으로 3부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1, 2부가 그 바탕이 된다. 3부에서 선생님의 이야기는 놀랍도록 솔직하다. 가장 친한 친구, 가족에게서조차 이토록 자신의 비열하고 모순적인 점을 여과 없이 솔직하게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선생님은 과거 자신의 세세한 감정을 담담하게 내뱉는다. 선생님이 타인과 자신에 대한 지독한 환멸을 느끼게 된 과정과 그 증오심을 세밀하게 말할 수 있었던 조건은 크게 3가지였다. ‘선생님’이라는 인물의 성격을 미루어보아 이 3가지 조건 중 한 가지라도 없었다면 선생님은 결코 자신의 마음을 ‘나’에게 털어놓지 않았을 것이다.      

첫째, ‘나’는 ‘선생님’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아버지와 선생님을 비교하면서 선생님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지 새삼 깨닫는다. ‘나’의 몸속에는 아버지의 피가 흐르지만 ‘나’의 입장에서 아버지는 매번 고리타분한 말을 하는 보통의 노인일 뿐이다. 반면 선생님은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지만 자신의 피 속에 ‘선생님’의 생명력이 흐르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나’는 선생님을 존중하고 따랐다.2) 이는 ‘나’가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는 대신 ‘선생님’으로부터의 마지막 편지를 받아들고 곧장 ‘선생님’을 만나러 기차에 오른 것에서도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마침내 ‘선생님’은 이러한 ‘나’의 마음을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어떤 살아 있는 것을 붙잡아보려는 의지”로 해석하고 그 순수함과 진실함을 인정한다. 3)  둘째, ‘나’는 선생님의 과거로부터 전혀 관련이 없는 제 3자이다. 또한 ‘나’는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청년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선생님’이 평생 동안 느낀 타인과 자신에 대한 혐오를 경험할지 모르는, 그러나 아직은 경험해보지 않아 ‘선생님’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입장이다. 셋째, ‘선생님’은 이미 죽음을 결심한 상태였다. 그는 ‘나’가 그의 과거를 진심으로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자신의 과거를 말하기를 계속 미뤄왔다. 이후 자살을 결심하고 나서야 비로소 편지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던 것이다. 말 그대로 ‘죽을 각오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내 이야기를 듣고 혹시 나를 비난하면 어떡하지?’와 같은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의 말의 무게는 감탄할 만하다. 물론 이렇게 대단한 말의 무게를 한 번에 터득한 것은 아닐 것이다. ‘선생님’은 그의 가장 친한 친구 K가 자살하게 된 간접적인 원인을 “정신적으로 발전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자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자신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고 서술하기도 했으니까 말이다.4) 나의 말의 무게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중이다. 나의 마음을 털어놓는다는 명목으로 친한 친구에게 –그 친구와도 친한-다른 친구의 욕을 너무 가볍게 한 것은 아닐까? 내 마음과는 다르게 사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친한 친구의 욕을 듣고 있어야 했던 그 친구에게 나의 말은 폭력적이었던 것이 아닐까? 상대방이 내 마음을 진심으로 들어 줄 수 있는 상태 혹은 상황인지 고민하지 않은 채 내 속마음을 얘기할 상대를 너무 쉽게 선택해서, 나의 마음까지 간단한 것으로 만든 것은 아닐까? 말과 마음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그리 쉽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20세기 초에 발표되어서 인지 메이지 천황의 죽음이 이야기 흐름의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 고정된 성관념이 드러난 인물의 행동과 말이 여러 번 등장한다는 점에서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다소 있었다. 하지만 ‘나’가 선생님을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의 품안으로 들어오려는 것을 두팔 벌려 껴안을 수 없는 사람”으로 설명하듯 선생님은 현대적인 관점에서도 여전히 매력적인 인물임에 틀림없다.5) 모든 인간은 모순적이고 인간의 모든 마음은 모호하다. 다만 자신의 마음을 오랫동안 스스로 돌아보고, 가볍지 않은 말로 그 무게를 존중해줄 사람에게 전할 때, 비로소 그 마음은 ‘진심’이 된다.      



1) 하목 수석, 「마음」 e-book, 문예출판사, 2006, 247쪽.

2) 위 책, 101쪽.

3) 위 책, 247쪽.

4) 위 책, 406쪽.

5) 위 책, 28쪽.

매거진의 이전글 총균쇠【서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