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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경 Sep 07. 2019

매듭으로부터, 다시.【에세이】

북경에서의 마지막 날과 그 이후

 

01. 2019.06.15.     


작년 9월에 출국할 때 입었던 반팔을 똑같이 챙겨 입고 오늘 귀국을 한다. 시작과 끝이 노란색(티)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한국에 도착한다고 상상하면 기분이 묘하다.      


북사대 생활 중에는 원인 모를 약간의 식이장애를 겪기도 했다. 때로는 며칠 굶주린 사람처럼 정신없이 먹어치우다가 미련하게 모두 체하고, 소화제를 먹고,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자고 일어나서야 다시는 우적우적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날도 여럿 있었다. 또 어떨 때는 밥맛이 뚝 떨어져 식사를 계속 거르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잘 먹는다’는 게 정말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내 식욕을 객관적으로 진단해줄 사람도 없이 혼자 ‘잘 먹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이 원초적인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즐거움과 함께 약간의 씁쓸함을 주었다.      


중국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나의 만성적인 조급함’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거의 모든 아침을 알람보다 먼저 일어나며 시작했다. 일어나 당장 바쁘게 할 일도 없으면서 왜 한국 집에서처럼 쿨쿨 자지 못하는지, 강박적인 조급함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끝냈다. 또 기숙사는 서향이어서, 노을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는 취미가 생기기도 했다. 처음에는 ‘해가 언제 사라지는지’, ‘해가 보이지 않아도 태양이 채 데려가지 못한 빛들은 언제 모두 사라지는지’와 같은 식으로 노을을 볼 때도 내심 조급함을 느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 돌아가서 내가 할 일이 뭐가 있을지, 졸업을 하고 나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불안한 고민을 이어갔다. 물론 이런 조급함의 끝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으므로, 매번 제풀에 지쳐버렸지만...     


그래서 거의 매일 노을을 보면서, 가만히 앉아 그 풍경을 사진으로 담기도 하면서, 혹은 해가 지는 방향을 따라 마냥 걷기도 하면서, 불안을 가라앉히는 방법을 배우기도 했다. 무엇 보다 이유 없이 아프고 화가 나고 불안할 때 글을 쓰는 것과 다 쓴 글을 천천히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은 내 마음을 아주 편안히 해주었다.     


이렇게 여기 2019. 06. 15의 매듭을 표시해두려고 한다. 길 하나의 시작과 끝이 얽히며 ‘그때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적어두는 거다.     


02. 2019. 08. 12.     


2019. 06. 15일로부터 지금까지 나는 나태하게 많은 일들을 했다. 한국에 가면 하려고 계획했던 일들 중 몇 개를 실행에 옮기기도 했고, 어떤 것들은 막상 한국에 오니 의욕이 없어지기도 했고, 끝내는 포기하기도 했다. 출퇴근 시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한국이 이렇게 치열한 곳 이었나 놀라기도 했고, 여름이 이렇게 사람을 깔아지게 만드는 구나 지긋지긋한 태양에 질리기도 했다. 브런치에 글을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핸드폰 메모장에 아이디어를 적어두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리고 그 핸드폰은 메모장조차 복구하지 못한 채 –기록 없이- 망가졌고, 이제 하얀 새 핸드폰 새 메모장이 있을 뿐이다. 노란색 매듭을 한 번 더 조이고 이제는 하얀색으로 시작하려한다. 무엇을 적을지 모르겠지만, 무엇이라도 적어야 한다. 

     

03. 2019. 09. 07


‘오늘은 브런치에 글을 올려야지’ 종류의 결심들이 몇 번 되풀이된 후에, 드디어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오늘’이 되었다. 하지만 2019. 08. 12일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길은 하얀색이다. 앞이 너무 밝아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말 그대로 앞에 아. 무. 것. 도 없어서 보이지 않는 게 당연하건지 모르겠으나 하얀색으로 어느새 개강까지 맞이하게 되었다. 내 카카오톡 프로필도 하얀색 바탕이다. 가운데에는 검은색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다. “Forsi altro canterá conmiglior pectio / Miguel de Cervantes Saavedra” (세르반테스는 “아마도 또 다른 누군가 더 나은 악기로 연주하리.”라고 돈키호테 전편 말미에 기록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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