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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경 Jun 03. 2019

의미없는 것에 대한 의미부여

 【야경 그림판】첫 번째 이야기

난 단 것을 좋아한다. 늦은 오후에 눈은 점점 감기고 몸이 말을 안들을 때, 단 것과 함께 커피를 먹으면 기운이 바짝 난다. 단 것을 ‘우아하게 하나씩 천천히’ 집어먹으면서 해야 할 일을 마무리해야겠다고 나를 다독인다. 물론 그건 다짐일 뿐이고, 주로 할 일은 시작도 못한 채, ‘순식간에 아무 생각 없이 다 먹어치운’ 빈 과자·초콜릿 포장지만 남게 된다. 먹어치운 쓰레기들을 치우고 진짜 할 일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그 순간에는 좀 허무하지만......에너지 보충을  위해 무의식적으로 단 것을 찾아들 때에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어져서’ 개운하다는 느낌까지 든다.      


옛날에 엄마가 쓰던 전화번호부가 있었는데, 엄마는 집 전화기 앞에 앉아 꼭 그 공책을 펴고 친구와 통화를 했었다. 친구와의 통화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 공책은 모나미 볼펜 똥과 알 수 없는 선들로 가득 채워졌다. 나도 가끔 흰 종이를 앞에 두고 마음 가는 대로 선을 그리고 색칠을 한다. 그 낙서에는 애초에 그리고 싶었던 것이 없기에 완성도 없다. 말 그대로 ‘밑도 끝도 없다.’ 그렇게 낙서를 하고 있으면 복잡한 생각들은 가라앉고 ‘찰나의, 비교적 가벼운’ 생각들이 선을 따라 스쳐간다. 그 생각들 역시 맥락이 없다. 내일 있는 약속을 상기하기도 하고, 아주 먼 미래의 일을 상상하기도 하고, 뜬금없는 인물의 안부를 궁금해 하기도 한다.      


의미 없는 일들을 뭉쳐보자. 단 것(주전부리)을 먹으면서 낙서를 하면서 잡생각을 해보자. 의미 없는 일들은 이제 –나에게 만큼은- ‘의미 있는 덩어리’가 되었다. 배도 채워지고 종이도 채워지고 뇌도 채워져 가는 【야경 그림판】     


BGM : Jeremy Zucker – Cometru     




*우리나라 말에는 참 재미있는 표현들이 많다. (1)전화를 걸다 : 휴대폰이 등장한 이래로 전화를 어디에 ‘걸’ 수 없게 되었다.  (2)고래를 가로젓다 : 왜 ‘고개를 가로 젓다’라는 표현만 있고 ‘고개를 세로 젓다’는 식의 표현은 없을까. (3)해가 지다 : 해가 달에게 져서 해가 지고 밤이 되는 것인가? (이후 찾아보니 해가 지다에서 ‘지다’는 무엇을 뒤쪽에 둔다는 뜻이었다.)     


*저번 수업에서 외국인 친구들과 한 토론은 무척 흥미로웠다. ‘어떤 회사에서 정해진 비율로 흑인을 고용해야 하는 정책은 정말로 흑인을, 평등을 위한 것인가?’ 그 정책은 흑인이라면 응당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보호받아야 한다는 또 다른 우월주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에는 흑인과 백인의 비율이 그닥 높지 않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문제라고 간단히 넘어가기에는 생각할수록 빠져드는 질문이었다. 근본적으로 특정한 대상을 위해 일정한 비율로 고용 인원을 정해놓는 등...상대적 평등과 관련된 정책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작가와 작품을 어디까지 분리시켜 볼 수 있는가?’에 이어 또 다른 난제를 오랜만에 만났다.      


*오랜만에 마시는 맥주가 정말 맛있다. 맥주 최고의 안주는 ‘허니버터칩’이다. 북경 십찰해에는 NBeerPub이라는 분위기가 아주 좋고 수제맥주가 아주 맛있는 가게에 가고 싶다.      


BGM : Billie Eilish - Ocean E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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