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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경 Sep 15. 2019

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
【서평】

호모 비아토르, 로빈슨 크루소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류를 ‘호모 비아토르’, 여행하는 인간으로 정의했다. 인간은 끝없이 이동해왔고 그런 본능은 우리 몸에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1) 이러한 맥락에서 아마도 마르셀은 ‘로빈슨 크루소’를 참된 인간으로 호평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로빈슨 크루소』는 ‘대항해시대’를 배경으로 쓰인 소설이다. 대항해시대란 대략 15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동서양을 아우르는 탐험이 박차를 가한 시기이다. 특히 이때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등의 유럽 국가들이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대륙을 식민지화하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로빈슨 크루소가 식인종의 포로들로부터 구한 청년에게 ‘프라이데이’라고 이름을 붙여주며 자신을 주인님으로 부르라고 명령한 것도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벗어나서 생각하기 어렵다.      


로빈슨 크루소는 안정적인 삶을 권유하는 아버지에게 강하게 저항하며, 어렸을 때부터 항해에 큰 관심을 갖는다. 몇 번의 위험이 있었지만 항해와 상업으로 제법 큰돈을 벌게 된 그는 브라질에서 농장을 개척한다. 그러던 어느 날 농장 운영에 필요한 노예를 사기 위해 아프리카로 향하던 중 –이 역시 대항해시대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이다. 당시 노예는 아프리카의 ‘수출품’이었다– 배가 표류하여 무인도에서 생활하게 된다. 잘 알려져 있듯이, 『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 표류기’이다.    

   

최근에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재미있게 읽었다. 책에는 여행하는 인간으로서 ‘노바디’와 ‘섬바디’의 개념이 소개되어 있다. 인간은 낯선 곳에서 여행을 할 때 아무도 자신을 알지 못하는 ‘노바디’의 상태를 즐긴다. 이후 그곳에서 어느 정도 적응을 한 후에는 노바디가 아닌 ‘섬바디’로서 다른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무인도에서의 로빈슨 크루소의 여정도 ‘노바디와 섬바디의 루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무인도에 도착한 직후 그는 표류하는 배에서 생필품을 꺼내오고, 잘 곳을 정비하고, 가구를 제작하는 등 노바디로서 무인도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그때 그는 무인도에서 28년이나 머물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후 차츰 무인도 생활에 적응한 후에는, 맞은 편 섬에 대해 궁금증을 느끼며 그곳을 가기 위한 배를 만들기에 수차례 도전한다. 애초에 생존을 위해서라면 이때까지 애써 적응한 무인도, 그중에서도 집 안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본능적으로 낯선 공간의 노바디이기를 원했다.      


물론 『로빈슨 크루소』가 식민주의의 편에서 쓰인 소설이라는 점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로빈슨 크루소는 원주민이었던 프라이데이를 자기 나름대로 ‘문명화’시키는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프라이데이를 노예 취급하는 것을 당연시 여겼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는 아프리카로부터 노예를 사고파는, 대항해시대의 혜택을 누리고 있었던 상인이었다. 로빈슨 크루소의 이러한 식민주의적 성향은 인간의 여행본능과는 완전히 다른 것임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식민주의, 제국주의는 낯선 곳을 마주했을 때 노바디의 단계는 완벽히 무시한 채, 무력을 동원해서 –강제적으로- 섬바디를 넘어 원주민의 권위자가 되려고 하는 무차별적인 폭력이기 때문이다.      


『로빈슨 크루소』가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음에도, 로빈슨 크루소가 여러 시행착오 끝에  무인도에 정착하고 그곳에서도 끊임없이 탐험을 이어가는 여정 자체는 일상생활에 긍정적인 에너지가 되었다. 중국에서 혼자 유학생활을 할 때 마치 무인도에 갇혔다는, 우울하고 무서운 기분이 들면서도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여러 도시를 여행 다녔던 경험을 떠올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호모 비아토르의 본능을 일깨워, 외롭지만 자유로운 여행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1) 김영하,  『여행의 이유』, 문학동네, 2019, 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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