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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경 Sep 26. 2019

송재학『슬프다 풀 끗혜 이슬』
【문학나눔 선정도서】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 서평단 붘어 2기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와 하던 놀이가 있다. 손등의 살을 살짝 꼬집은 후 살이 빨리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고, 접힌 자국대로 천천히 되돌아오면 그때부터는 ‘진짜 할머니’가 되는 놀이다. (이 놀이는 우리 집에서만 하는 것일 테니, 편의상 ‘손등 놀이’라고 부르자.) 처음에는 이젠 늙었다며 한탄하시는 할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시작한 놀이였다. 할머니 손등을 주물럭거리며 “할머니 이거 봐요. 이 정도 속도면 저랑 비슷해요. 할머니는 아직 ‘진짜 할머니’가 아니에요!”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요즘에는 종종 이 놀이를 엄마와 하는데, 이젠 늙었다고 우울해하는 엄마를 위로해준다. 의외인 것은, 사랑하는 이의 손등을 보듬는 이 놀이는 행복하면서 좀 슬프기도 하다는 점이다.

 

송재학 시인의 시집 『슬프다 풀 끗혜 이슬』을 읽는 것은 간접적으로 이 놀이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시집에는 유독 ‘얼굴’, ‘눈썹’, ‘눈동자’ 등과 같이  신체 분위와 관련된 시어들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각자의 인생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보편적으로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날들(과거)’에 대해 생각하지만, 시집의 화자들은 몸 구석구석을 살피는 것을 통해 그때그때의 ‘생’을 말한다.     


찻잎을 물에 띄울 때 고요의 눈썹은 내가 그린 듯 가깝다

(중략)

양철 주전자가 물의 온도에 접근하면서 마침내 쇠붙이까지 물의 감정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물은 언제 뜨거워지는가」 中 1)     


「물은 언제 뜨거워지는가」의 화자는 찻잔에 비친 자신의 눈썹을 고요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양철 주전자'와 같은 자세로 체액과 감정의 온도 변화를 가늠한다. ‘몸 구석구석에서 생을 발견하는 일’은 바디체인지 영화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몸이 다른 인물의 것과 바뀌었음을 깨닫고 거울을 보며 새삼스럽게 얼굴을 더듬어보는 클리셰와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몸을 살피는 일’은 고요하고 세밀하다.     


눈썹 씨는 자신이 광합성의 재능을 가졌다고 믿습니다 생의 절반은 몸 일부였지만 눈썹 씨는 자신을 고스란히 옮겨주는 수면이 있다는 것을 비를 맞으며 빗방울에 젖으며 알았습니다 (중략) 가벼움은 언제나 눈썹 씨의 목표였습니다     


「눈썹 씨의 하루」 中 2)


나는 몸을 구부려

불면이 통과하는 위벽의 지하에 누웠다

(중략)

아침에 먹은 것을 저녁에 토하면서 헐렁한 위의 속삭임 안에 누웠다 나는 점점 더 힘들어지든가 아니면     


「서랍을 가지게 되었다-위胃를 이야기하자」 中 3)     


유사한 방식으로, 「눈썹 씨의 하루」와 「서랍을 가지게 되었다」에서 화자는 바쁜 시간 동안 미처 돌보지 못해 무거워지고 흐트러져 버린 ‘눈썹’과 ‘위’를 털어내고 비워내고 있다.      


처음에 언급한 ‘손등 놀이’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이 놀이가 슬프게 느껴지기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쩌면 언젠가 놀이의 끝에는 '진짜 할머니'를 마주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몸은 쌓이고 비워지기를 반복하며, 누군가를 보듬거나 누군가에게 보듬어지기도 하면서 늙어간다. 그렇게 생의 이미지 뒤편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의 이미지가 연이어 따라붙는다.     


살쩍과 눈매 등은 주검에서조차 여위어가고 가선이 지고 했던 얼굴 윤곽은 물이 빠지니까 부글거리는 발효를 시작했다

(중략)

찰랑거렸던 물결 흔적은 딱딱해져서 메스가 몇 차례 지나가야만 눈물만 한 핏방울이 비쳤다 명치에서 주욱 지퍼처럼 열린 그 안의 내용물은 따로 담겼다 저수지 물이 빠지면 원래 붕어도 뛰고 잉어도 펄떡거리는 법이다     


「육체의 풍경-부검」 中 4)


죽음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완전히 죽음이 깃든 ‘육체의 풍경’과 마주해야 했다. 부검의 현장에서는 사자(死者)의 키만 한 ‘저수지’로부터 축축한 죽음의 이미지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 다녔다. 죽음은 차있었던 물이 빠지고 말랑말랑하게 움직이던 것이 딱딱하게 침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진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스스로의 혹은 사랑하는 이의 몸으로 ‘손등 놀이’ 같은 것을 계속할 수 있다. 주름이 자글자글해지고 몸이 무뎌지고 굳어질 때까지 나와 당신의 몸을 보듬어야 한다.


“지금 당신은 어떤 온도, 어떤 표정, 어떤 모양인가요?”



송재학 시집 『슬프다 풀 끗혜 이슬』(문학과 지성사)는 ‘문학나눔 선정도서’이며, 위 서평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2019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의 “서평단 붘어 2기”로 선정되어 작성했습니다.




1) 송재학,『슬프다 풀 끗혜 이슬』, 문학과지성사, 2019, 39쪽.

2) 위의 책, 12쪽.

3) 위의 책, 54쪽.

4) 위의 책, 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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