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다 싶어 ~한다. 평소에는 사회 분위기와 주변의 시선 때문에 드러내지 못하다가 어떤 핑곗거리가 생기면 숨겨왔던 본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지난 팬데믹 동안 세계 각국에서 이때다 싶어 숨겨왔던 동양인 혐오가 터져 나오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람은 최악의 상황이 닥쳤을 때 본성이 드러난다고 한다. 팬데믹을 거치며 동안 유럽 국가의 이미지는 위선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코로나가 유럽에 확산되기 시작되고 마스크를 처음 썼을 때 나를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다. 마스크를 쓰는 것이 자신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말하며 다른 사람의 생명은 생각하지 않는 유럽 국가 사람들의 행동과 이제는 표면으로 드러나는 동양인 혐오. 지난 팬데믹 기간 동안 유럽뿐만이 아닌 세계 각국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코로나 관련 인종차별 소식을 접했다.
이탈리아의 음악원의 동양인 학생 등교 금지
2020년 1월 말 이탈리아의 한 음악학교는 코로나 확산을 이유로 동양계 학생들의 수업 참석을 금지한다는 이메일을 교수들에게 보냈다. 이 학교에는 42개국 출신의 1335명의 학생들이 재학 중이었으며 그중 아시아계 학생은 81명이었다.
작년 초 즈음에는 유럽에 비해 아시아가 코로나가 더 퍼져 있었다. 이 조치의 문제점은 학생들의 위험국 방문 여부를 따지지 않고 오로지 '동양인'이면 수업 참여를 할 수 없게 했다는 점이다. ‘동양인 = 바이러스’라고 본 것이다.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들로부터 동양인들을 격리시켰다.
이후 이탈리아에 코로나가 급격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에는 이동 금지령이 내려졌고 그러자 이탈리아 사람들은 움직이질 못하니 발코니에 나와서 다 함께 희망의 노래를 불렀다. 그것을 찍은 동영상을 봤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희망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이탈리아"였지만 나는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저 희망의 노래에 동양인도 포함되어 있는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동양인은 배제하더니 이탈리아 전역에 바이러스가 퍼지자 우리 모두 함께 이겨내자며 모두 발코니로 나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가식처럼 느껴졌다.
팬데믹 기간 동안 증가한 아시아계 혐오범죄
캘리포니아주립대의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미국의 16개 주요 도시에서 아시아계를 향한 증오범죄가 149%나 증가했다고 한다. 여러 아시아인들이 폭행당하는 영상 혹은 사진 등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쩌면 아시아계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인종 혐오를 하나의 놀이로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코로나 이전엔 그나마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혐오를 당당히 드러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도 아주 비논리적인 명분이 생긴 것이다. 만약 다른 백인 인종 국가에서 코로나가 먼저 확산되기 시작했다면 백인에 대한 혐오범죄도 있었을지 의문이다.
#StopAAPIHate
올해 3월 16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동양인 대상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백인 남성 로버트 에런 롱이 마사지 업소 3곳에서 8명을 살해했는데 그중 6명이 아시아계 여성이었다. 용의자 로버트 에런 롱은 살인 동기와 관련하여 ‘성중독증’이라는 표현을 썼다. ‘아시아인’을 혐오했다는 게 아니라 ‘여성’을 살해함으로써 자신의 성중독을 해결하려 했다는 말로 추측된다. 인종혐오가 아니었다면 왜 동양인 여성만 가득한 마사지 업소를 찾아간 것인가.
아시아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했다. 하나하나 너무도 소중한 삶인데 자신의 인종과 성별 때문에 죽음을 맞이했다. 이름은 지워진 채로 동양인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죽음을 맞는다는 것. 같은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죽음 앞에 너무나도 무력해진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아시아·태평양계를 인종차별을 멈추자는 #StopAAPIHate 운동이 등장했다. 이전에도 아시아계를 향한 수많은 인종차별들이 존재했지만 팬데믹을 기점으로 혐오가 노골적으로 증가했고 이에 대해 아시아계 인종 혐오를 하지 말라는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혐오가 수면 위로 격하게 치솟았으니 그에 대한 대항도 거세질 것이다. 긴 싸움이 되겠지만 이 싸움 끝엔 좀 더 평등하고 다양성 있는 세상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팬데믹 기간에 독일에 있는 동안 나는 독일에 왜 왔는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앞으로 학교를 다닐 몇 년 동안 이 이질감을 이겨낼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1년 내내 떠나질 않았다. 원래는 학교 졸업 후에 독일에 남을 건지 한국에 다시 돌아갈 것인지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오랜 기간 살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점점 강하게 들었다. 이곳에서는 영원히 이방인으로 살 것 같았다.
코로나 시국 초반에는 아시안 마트를 갔을 때가 가장 안심됐다. 그때부터 이미 아시안 마트 직원들은 마스크를 썼고 랩으로 계산대와 손님이 서있는 구역을 차단해놨다. 그 안에서는 마스크를 쓴 나를 아무도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았다. 아시안 마트가 아닌 일반 마트나 길거리에서는 마스크를 쓴 나를 대놓고 이상하게 보는 시선들을 느꼈다. 그 시선들에 어떻게 대응할 수도 없다는 사실에 무력했다. 분명히 기분 나쁜 시선이 자주 느껴지는데 왜 쳐다보냐고 말을 하면 오히려 내가 시비를 거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았다. 직접적인 언어폭력과 물리적 폭력을 겪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 시선들은 나를 위축되게 만들었다.
작년 여름 한국에 갔을 때 어딜 가나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독일에서 받던 눈총이 없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안심이 되었다. 그것도 잠시 학교 때문에 다시 독일에 돌아가야 할 날을 세고 있을 때 베를린에서 3만 명이 가까이되는 사람들이 마스크는 자유를 해친다며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는 기사를 봤다. 자신의 자유가 다른 사람들의 생명보다 소중한 것인가. 이것은 개인주의가 아니라 이기주의가 아닐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시 돌아온 독일에서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실내에서는 마스크를 써야 하는 의무 때문에 썼지만 대중교통에서 내리거나 마트에서 나오자마자 마스크를 벗는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실내에서만 바이러스가 퍼질 것이라고 정말 그렇게 믿는 건지 아니면 그냥 귀찮아서 마스크 쓰는 시늉만 내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그들에게서 게으름을 느꼈다. 거리의 사람들을 보며 '위험한 건 아는데 나는 바뀔 생각이 없어.'라는 인상을 받았다. 독일에서 마스크 규정을 더 엄격하게 하면서 거리에서도 사람들이 더 많이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다. 팬데믹 시작 후 거의 1년 뒤였다.
1년 간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환멸’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두려움, 답답함, 분노도 있지만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은 환멸이다. 내가 다시 태어나서 이 나라의 문화 속에서 자라지 않는 이상 혹은 내 뇌구조를 바꾸지 않는 이상은 이곳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도 없고 이곳에서 이방인이라는 기분을 지울 수도 없을 것 같다. 만약 코로나를 겪지 않았다면 길거리에서 친절하게 도움을 줬던 사람들의 이미지를 기억하며 따듯한 세상이라고 느꼈을 수도 있다. 팬데믹을 겪으며 그동안 가려져있던 어두운 이면을 보고 환상은 깨졌다. 내 인종 때문에 이질감에 가득 차 있는 상태로 살아야 한다면 나는 이곳에 오래 머무를 생각이 없다. 앞으로 더 많은 경험을 하면서 생각이 바뀔 수 있지만 이미 많은 회의감을 느꼈다. 이 기억을 잊지 않고 어떻게 하면 내가 동양인으로서 잘 버텨낼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인종차별이 줄어들 수 있을지를 계속 고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