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 씨와 함께 108배를 4
정현 씨는 정말 웃기는 사람이다.
정현 씨는 고양이들을 탐탁지 않아한다. 내가 귀엽다며 학교에 거주하는 고양이 사진이나 유튜브 고양이 영상을 보여주면 정현 씨는 "뵈기 싫어! 치워!"라며 질색한다. 고등학생 때 학교 정원에 고양이 가족이 살아 자주 사료를 바치곤 했는데 한번 정현 씨에게 고양이를 입양하고 싶다고 하자 정현 씨는 "털 난 동물 키우는 건 딸자식 셋으로 충분하다!"며 일갈했다.
정현 씨가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데에 그럴듯한 원인이 있긴 하다. 지리산 집 근처엔 길고양이(엄밀히는 산고양이이다.)가 많은데, 밤이 되면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집어 놓고 쓰레기봉투를 찢어놓기 때문이다. 아무리 골치 아프다지만 어떻게 그 존재만으로 귀여운 생명체들을 미워한단 말인가... 내가 차라리 집 근처에 사료를 놓아두면 어떻겠냐 말하자 정현 씨는 "온 동네 고양이를 내가 먹여 살려야 하냐?"며 완고한 뜻을 보였다.
어느 날은 지리산 집 뒤뜰에 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는데 정현 씨가 신나게 뛰어가선 "우두두두! 이놈시키들! 우두두두!" 하며 내쫓길래 내가 정현 씨에게 고양이들 괴롭히는 걸 즐기는 것 아니냐며 쟤네도 먹고살려고 저러는데 그러지 말라고 면박을 주자 정현 씨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지리산 집 근처에는 슈퍼가 하나 있는데, 그 집 사장님은 노숙하는 고영님들을 위해 집과 사료를 제공하는 넓은 아량의 대인이다. 나는 정현 씨 몰래 멸치나 북어를 가져다가 슈퍼에서 머무는 고영님들께 특식으로 바치곤 했는데 한 번은 정현 씨가 멸치 반찬을 한다며 멸치 똥을 따라고 멸치를 한 봉지 던져주었다. 한 시간 동안 멸치 똥을 잔뜩 뗀 후에 내가 노동의 대가로 다듬은 멸치를 한 움큼 쥐자, "또 고양이 주려고 그러지!" 하며 아깝게 다듬은 멸치 주지 말라고 혼을 냈다. 결국 다시 30분 동안 남은 멸치 대가리에 붙은 똥을 떼서 그릇에 고이 담아두었다. 며칠 후 지리산 집으로 우리 집 영감탱이(나의 아버지를 지칭하는 말이다.)가 왔는데, 내가 안 보는 사이 보기 흉하다며 고영님들에게 바칠 멸치 대가리를 버려버렸다! 내가 생 지랄지랄을 떨어가며 염강탱이를 갈구자 정현 씨가 슬그머니 와서 다듬어서 고양이 주라며 내게 멸치 몇 개를 쥐어줬다. 나는 씨근거리며 다시 멸치 똥을 땄다.
그날 저녁에는 집 근처 절에 혼자 올라가서 '오늘 밤 영감탱이가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커다란 멸치 대가리로 맞는 꿈을 꾸게 해 주세요, 꼭. 간절히 빕니다.'라고 부처님에게 열심히 빌었다.(그날은 특별히 이천원을 시주했다.) 여차저차 기도빨이 먹힌 건지 다음날 새벽에 영감탱이가 꿈에 목탁소리가 들려서 잠을 설쳤다길래 속으로 아주아주 꼬시다 생각했다.
나는 고영님을 모시고 싶어 하는 다른 자매님과 언젠가 함께 살며 정현 씨 몰래 고영님을 데려올 치밀한 계획을 짜는 중이다. 정현 씨가 고양이를 질색하니 정현 씨의 갑작스러운 주거침입을 막을 수 있는 토템이 될 수 있으니 (고영)님도 보고 뽕도 따고 일석이조이다. 이 글 또한 정현 씨에게 보여주긴 글렀다...
하여튼 정현 씨에게 고영님들의 귀여움을 전도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