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 씨와 함께 108배를 3
정현 씨는 정말 웃기는 사람이다.
정현 씨는 담배를 아주 해로운 물질로 취급한다. 작년에 정현 씨에게 담배 피우는 걸 들켰는데, 여러 차례의 협상 후 연초 대신 전자담배를 피기로 합의 본 후로는 정현 씨 앞에선 편하게 담배를 뻑뻑 핀다. 정현 씨는 내가 전자담배를 엄청 많이 피우는 에코-골초인 줄 아는데, 사실 나는 연초도 피고 전자담배도 피우는 하이브리드-골초이다.
여하튼 며칠 전 정현 씨가 내가 지리산 집 마당에서 쭈그려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더니 "무슨 똥 싸는 자세처럼 그래?" 하고선 본인이 변소에 들어가 버렸다. 변소에서 나오며 정현 씨가 내게 담배 좀 그만 피라 핀잔 주길래 내가 "담배 피우는 거 허락해줬음 신경쓰들 말아"라고 말했다. 정현 씨는 나를 한심스럽다는 듯 쳐다보더니 "그래~ 니 몸 상하지 내 몸 상하냐, 나중에 병원비 달란 소리나 말어." 하고선 집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정현 씨는 내가 담배를 피울 때마다 잔소리를 하면서도 "그거 피우면 기분이 좋아져? 숑숑 가?", "원래 그렇게 연기가 많이 나와?" 하며 호기심을 참지 못하는데, 내가 담배 피워서 아주 숑숑 좋다는 듯 말하면 흥미가 떨어진 건지 회유에 실패해서 아쉬운 건지 "칫"하고 가버린다. 정현 씨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브런치에 열심히 글 써서 언젠가 글쓰기 노동 값으로 담뱃값을 충당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현 씨를 망신스럽게 하는 글과 담배 모두 끊을 수 없다.
담배와는 달리, 정현 씨는 술을 아주 인생에 기름칠해주는 마법의 약물 정도로 취급하는데, 아쉽게도 정현 씨는 본인의 나이와 건강을 생각해 술을 자제하곤 한다. 밥상 차릴 때 술 생각이 나서 술을 꺼내고선 내가 정현 씨의 건강을 생각하며 내 잔만 따르자 "정 없게 니 꺼만 따르냐?"며 정현 씨가 한껏 성질을 냈다. 그래서 정현 씨와 함께 밥을 먹을 땐 늘상 반주가 따라붙는다. 전에 지리산 집에 내 친구들이 놀러 와서 비싼 양주를 마신 적 있었는데 정현 씨는 독한 술은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 권하지 않았더니, 친구들이 가고 나서 정현 씨가 "고 맛있는 걸 지들끼리만 먹냐"며 호박씨를 깠다. 참고로 정현 씨는 막걸리와 와인 류의 발효주를 좋아하고 소주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정현 씨는 건강 때문에 자신의 주량을 자의로 '딱 한 잔'으로 정했는데, 그래서 정현 씨에게 술을 따라 줄 땐 한잔을 따를 때도 가득 따라드려야 한다. 나는 자칭 타칭 애주가이기 때문에 반주할 때에도 늘 두 잔 이상은 마시는데, 정현 씨는 내게 술 좀 그만 마시라면서도 내 술잔을 보며 입맛을 쩝 다시곤 한다. 그런 정현 씨를 보며 나는 갈 때 가더라도 젊고 건강할 때 최대한 맛있는 술을 다양하게 먹어보아야 한다는 굳은 다짐을 했다.
정현 씨가 뒤에서 내가 뭘 쓰는지 보려 기웃거리길래 '흡연과 음주에 대한 정현 씨의 생각과 태도'를 글로 적고 있다 하니 정현 씨가 잠시 생각하더니 "재미없어"하더니 군것질거리를 찾으러 나가버렸다. 호호 내가 이것까지 글로 쓸 줄은 몰랐겠지? 이 글은 정현 씨 보여주면 안 될 것 같다...
하여튼, 정현 씨는 담배는 싫어하지만 애주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