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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챠오챠오 Jul 21. 2020

정현 씨, 만수무강하세요

정현 씨와 함께 108배를 2

 정현 씨는 정말 웃기는 사람이다.


 정현 씨는 엄살쟁이이다. 맨날 내게 자기는 곧 죽으니 본인 죽기 전에 얼른 돈 벌어서 여행 보내달라, 매달 용돈 보내달라, 비싼 과일 사와라 그러는데, 사실 서울에서 술과 담배에 찌든 나보다 지리산에서 내내 맑은 공기 마시며 지내는 정현 씨가 더 오래 살 수도 있지 않은가? 오늘내일하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20년은 더 살 것 같은 사람이 곧 죽긴 뭘 죽냐며 핀잔을 주자 정현 씨는 늙은이의 20년은 금방이라며 반박했다. 여하튼, 본인의 노화와 죽을 날을 핑계로 이것저것 많이 시키는데, 가끔 그냥 나를 부려먹고 싶은 게 아닌가 생각도 든다.


 정현 씨는 평소엔 잘만 엄살 부리면서 정작 실제로 큰 병에 걸리거나 위험한 때에는 본인이 제일 침착하다.


 몇 년 전 여름이었다. 정현 씨가 지리산 집 옆 계곡에서 놀다가 헛디뎌 뒤로 넘어졌는데, 머리를 부딪혔다.

 뭔진 몰라도 골든타임 어쩌구가 중요하다는 걸 어디선가 본 듯한 나는 부른 콜택시가 늦어 초조해진 마음에 몇 번씩 전화를 걸어 기사님을 재촉하고 있는 와중에, 정현 씨는 침착하게, 옷을 갈아입고, 세탁기를 돌리고, 가스 점검까지 마치고 나서야, 나를 따라 나왔다.

 

 어디가 그리 아픈지 산골에서 시내 병원까지 가는 승객을 걱정하며 빗길에도 겁나게 속도를 올리는 택시기사님 덕분에 나는 정현 씨의 손을 꼭 붙잡고 제발 병원 도착할 때까진 이 차에 탄 모두가 살아있기를 기도했다. 버스로 1시간 반 걸리는 거리를 기사님은 40분 만에 도착하셨고 택시비는 49350원이 나왔다.


 병원에 도착해 접수를 하는 과정은 상당히 순탄했다. 그렇고 그런 드라마의 클리셰와는 달리 응급실은 한가했고 의사들은 친절했다. 정현 씨를 CT촬영실로 보내고 복도에 앉아 기다리는데, 멀리서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신경을 긁었다. 머릿속이 복잡한 와중, 검은 옷을 입은 한 무리의 사내아이들이 내 앞을 지나쳐 장례식장 쪽으로 걸어갔다. 내 또래이거나 혹은 더 어려 보였는데, 그중 한 아이는 후줄근한 검은 반팔 티셔츠를 입었고 한 아이는 멋을 낸 건지 딱히 적당한 옷이 없었던 건지 엉덩이가 꽉 끼는 검정 스키니진을 입고 어기적 어기적 걸어갔다. 장례식이 어색해 보이는 사내아이들을 보자 왠지 긴장이 한껏 풀려 저녁 메뉴를 고민할 때쯤 정현 씨는 검사를 마치고 나왔다. 


 정현 씨와 응급실 구석에 앉아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데 한 부녀가 응급실로 들어왔다. 여자 아이는 입이 부루퉁하게 나온 채 제 뒤통수를 만지작 거렸는데 듣고 보니 그 애의 아버지가 낚싯줄을 잘못 던져 낚싯바늘이 그 애의 뒤통수를 찢은 것이다. 심각한 표정의 아이를 보며 겨우 웃음을 참는데 순간 옆에서 정현 씨가 깔깔거리며 소리 내어 웃었다. 아픈 애 보며 웃지 말라고 타박했더니 정현 씨는 더 크게 웃어버렸다. 일말의 비극적 예감마저 놓아버리자 왠지 정현 씨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검사 결과는 빤했다. 내가 짐짓 심각한 척 정말 문제없느냐고 되물었더니 의사는 무미건조하게 나중에 문제 생기면 그때 또 오시라며 하루치 진통제를 처방해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비 잔돈으로는 꼬깔콘을 사서 정현 씨와 노나 먹었다.


 정현 씨는 원래 딱딱한 복숭아를 좋아하는데, 요새 턱이 안 좋아 물복숭아만 먹는다. 정현 씨 턱이 얼른 나아 딱복도 먹고 맛있는 것도 먹었으면 좋겠다. 


 하여튼, 정현 씨 만수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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