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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챠오챠오 Jul 19. 2020

정현 씨를 소개합니다

정현 씨와 함께 108배를 1

 정현 씨는 정말 웃기는 사람이다.


 정현 씨는 나의 엄마다. 그가 열심히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좋은 엄마라고 하긴 어렵지만 내 사람 취향이 그에게 맞춰진 게 아닌가 싶은 정도로 인간상 자체는 너무 내 취향이다. 나는 성인 이후 매 여름마다 지리산에서 정현 씨와 단둘이 지내고 있는데 정현 씨는 정말 관찰할수록 매력적인 인간이다.

 정현 씨는 잘생기고, 자기 관리 열심히 하고, 친구는 별로 없지만 서예와 수영처럼 꾸준한 취미 생활이 여럿 있고, 미감과 취향은 확실하지만 자기주장은 별로 없고, 술과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고, 가족 중 누구보다도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으면서도 멘탈 튼튼하고 자격지심 없고, 매일 유튜브로 불경 독송과 유명 스님의 설법을 들어서 꽤나 열린 사람이고, 칭찬에 약해서 칭찬을 들으면 콧노래를 부르는 귀여움까지 갖추고 있다. 심지어 웃음소리도 문자 그대로 '깔깔깔' 웃는다.


 전에 내가 글을 조금씩 끄적거리는 걸 알고선 정현 씨가 넌지시 어느 유명 작가가 그의 어머니 얘기를 쓴 에세이집을 언급하며 내게 자기 얘기도 써달라고 땡깡을 부렸는데, 내가 완전히 우스꽝스럽게 써버릴 거라고 으름장을 놓자 오히려 더 재밌게 써달라고 밀어붙였다.


 정현 씨는 돈을 아주 좋아한다. 이거 뭐 브런치에 글 써서 올린다고 해서 남들 웃기기나 하지 돈 받고 쓰는 것도 아닌데 돈이 되는 글쓰기라 하면 정현 씨가 좋아할 것 같아 있는 힘껏 과장하며 브런치 플랫폼과 함께하는 긍정적인 미래에 대한 브리핑을 들려주었다. 역시나 정현 씨는 깔깔깔 웃으며 좋아했다. 자기 얘기를 너무 망신스럽게 쓰진 말라는 당부와 함께. (미안 정현 씨)


 다음 주 즈음에 다시 정현 씨와의 여름을 보내기 위해 지리산으로 내려간다. 내가 정현 씨를 흥미롭게 관찰하듯 정현 씨 또한 나를 흥미롭게 관찰한다. 내가 재작년 여름에 방울토마토를 맛있게 먹은 걸 기억하고선 올여름에는 집 앞 텃밭에 방울토마토가 풍년이라더니 어느 날 뜬금없이 내게 방울토마토 사진을 찍어 보내고선 '너 와 먹을 수 있게 잘 키워 놓을게'라는 카톡만 띡 남겨 놓고선 내 카톡에는 답장도 안 했다. 내가 막장스러운 인생 경험과 함께 정신과에 다니며 정현 씨는 처음에는 그 나이 때의 사람들 답게 '어쩜 좋아... 내 딸이 정신병자라니...'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것 같은데 이젠 뭐 아주 깔깔 거리며 내 얘기를 듣는 걸 보니 그냥 내가 막장으로 사는 데에 대리만족을 느끼며 즐기는 모양이다.


 정현 씨는 오랫동안 불교에 심취해 있어서 모든 근심과 스트레스를 불심을 통해 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현 씨가 내가 내려가면 아침마다 집 근처 절에 가자고 하길래 내가 혼자 있을 때 절에 가냐고 묻자 요즘 아침은 바쁘다며 얼버무렸다. 덧붙여 정현 씨는 내게 마음을 비워내는 데에 좋으니 108배를 종용했는데, 자기는 무릎이 아프다며 쏙 빠지겠단다.


 정현 씨가 글을 쓰면 자기도 보여달랬는데 브런치 작가명은 죽어도 안 알려줄 거다. 이 부분만 똑 떼서 글만 보내줄 생각이다.


하여튼, 정현 씨는 정말 웃기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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