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최전선

그 일은 정말이지 결코 아름답지 않고 그래서 견딜 만하다

by 목격자

요즈음엔 정말로 자본주의의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다. 광고를 전공했으니 그 길을 따른다면 예정된 일이었다. 광고를 공부한 첫해엔 내게 그런 일이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낭만이라는 단어를 사랑하며 사람들을 웃게 하는 일을 하겠다는 사명감이 있던 때였다. 그런 내게 자본주의는, 몸담고 있으면서도 악의로 가득 찬 세계였다. 그 세계의 최전선에서, 하잘것없는 것도 멋스러운 척 구슬려 소비를 조장하는 임무가 내 업이 된다는 사실은 죄책감과 의심을 동시에 불러왔다.


불과 몇 년 뒤 나는 ‘낭만’에 어우, 기겁하며 자본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대단한 계기가 있던 건 아니다. 그저 일상에 학교 밖 비중이 늘어남에 따라 자연히 익힌, 자본주의 사회의 이치였다. 내게는 낭만과 이상 같은 것들을 좇으며 순진한 인생을 살 수 있을 만큼의 자본이 없었다. 좀 극단적이기야 하지만, 돈 없는 생에 깃드는 낭만은 궁상에 다름없으니까.


나는 돈을 벌어야 했다. 벌어야 하는 주제에 아주 깜찍한 급여를 주는 일을 시작했다. 낭만적으로 말해 깜찍하지 부모님께 용돈을 받지 않고는 생활을 이어갈 수 없는 돈이었고, 일은 전공과 최전선을 꽤나 벗어나 있었다. 왜 또 그렇게 이치를 거역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속이 갑갑하지만 세상일이 늘 이치에 맞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사건을 어물쩍 둥글리며 넘어가는 방식이 인디 영화 속 돈 없는 남자를 상기 시켜 조금 괴롭지만 지금 당장은 이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나는 결국 돌고 돌아 이곳 최전선으로 왔다. 최전선이라고 해서 최선의 돈을 주는 건 아니었지만, 그로부터 몇 뼘 떨어져 애매모호하게 일하느니 차라리 최전선으로 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예상치 못한 바는 아니었지만, 이곳에서 품위나 여유는 사치였다. “지금 당장, 딱 오늘만, 할인, 지급, 증정”이 큰 역할을 하는 세계. 이건 역시 이것대로 괴로웠다.


얼마 전 엄마와 통화를 하던 중 나는 그 힘겨움에 관해 털어놓았다. 이전에 엄마가 새 직장은 괜찮냐고 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엄마는 “아름다운 글 쓰려면 공익광고를 해야지, 뭐”라고 답했는데 뭐 공익광고는 그렇다 쳐도 ‘아름다운 글’이라니 진짜 몸서리치게 싫었다. 차라리 “지금 당장 클릭하면 할인권 증정”의 세계가 백배 낫다고 여겨질 정도로.


나는 요즈음 자본주의의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다. 그 일은 정말이지 결코 아름답지 않고 그래서 견딜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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