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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정N Dec 21. 2018

나에 대한 짧은 에세이

나는 이래서 우울하다

나는 영화관을 잘 가지 않는다.



일년에 한번도 채 가지 않는 거 같은데. 남들이 왜냐고 물으면 그냥 영화관 가는 것도 귀찮고, 같이 갈 사람도 없고.. 라는 식으로 얼버무리곤 하지만, 실은 남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거부감이라기보다는 과거 경험으로 인한 두려움 같은 거.



발단은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이 끝나고 교실에서 다같이 영화를 보던 날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친구들과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일련의 코스들이 너무 당연한 거였기 때문에, 친구들과 영화를 보는 거에 대한 어떤 느낌도 생각도 없었다. 다만 그 날 우리가 본 영화가 굉장히 슬픈 영화였던 게 문제였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이별'. 그 제목과 내용과 영화를 보던 그 순간을 아마 난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 날 내 책상 앞에 쌓인 무수한 휴지 뭉치를 바라보던 친구들과 선생님의 눈길까지도.







모의고사에서 두각을 드러내던 나는 수능 만점을 목표하던. 그야말로 촉망받는 고삼이었고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주말도 빠짐없이 학교에 나갔다. 수능이 50일 정도 남았을 무렵, 페이스 조절을 하고 여느 날과 같이 하교 후 부모님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1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도 엄마의 차가 나타나지 않자, 당시 휴대폰을 두고 나온 나는 사람들에게 물어 빌려 엄마한테 전화를 했지만 신호음만 계속됐다. 이런 일이 한번도 없었는데, 무슨 일이지. 내심 동생이 또 사고를 친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아빠한테 여러 번 전화를 바꿔 걸었고, 마지막 신호음 그 끝에서 나는 딱 한마디만 들었다.





엄마가 죽은 거 같아.



그 날 아빠가 우는 걸 평생 처음 봤다. 미친 듯이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달려가는 순간에 택시 아저씨의 휴대폰을 빌려 동생에게 집에 잘 들어가 방에 문 잠그고 있으라고 신신당부를 해놓고. 지금 생각하면 이때 동생에게 달려갔어야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달려간 병원에서 내가 본 건 처음 보는 흐느끼는 아빠의 어깨. 하얀 천으로 덮여 있는 아마도 우리 엄마. 정말 드라마에서 보던 거 같이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아 멍하니 있는 나의 머리 한구석에는 아니야, 이건 꿈일거야.



정신없이 며칠이 지났다. 난 친구들에게 학교를 나가지 않았고, 장례 첫 날 담임 선생님이 나를 찾아왔다. 가까스로 얼굴을 닦고 맞이하는 날 향해 선생님께서는 친구들에겐 당신이 말하겠다, 라고 말하며 학부모 면담 때 엄마가 나한테 쓴 편지를 건넸다. 내가 딱 하나 그 분을 미워하는 게 있다면 그 순간 나에게 그걸 건넨 거. 정말 영화처럼 쓰여있는, 힘들 땐 언제나 엄마한테 오라는, 항상 곁에 있겠다는 그 구절을 읽고 나는 그 자리에서 미친듯이 발작했다. 왜 없냐고, 왜 죽어서 사진 안에 있냐고 식장이 떠나가라 소리지르고 울부짖었다. 그리고 난 단 한명의 친구도 내 식장으로 부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가장 후회하는 것 중에 하나긴 한데, 그 땐 그 알량한 자존심이 친구들을 부르지 못하게 막았던 거 같다. 애들 공부해야 하는데 여기 오면 어떡하겠어, 이런 모습 보여줘서 뭐하겠어.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한테 내 힘든 모습을 보여주고 슬프다고 말하는 게 어려웠다. 그리고 역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우울증과 불안장애는 끊임없이 나를 갉아먹어왔다.



가까스로 학교를 나가고, 수능을 치루고, 마음에 들지 않는 성적을 받고도 웃으며 학교를 다니던 때, 치매에 걸린 엄마가 가족들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그 영화는 도저히 내가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안볼 수도, 잘 수도 없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펑펑 우는 거 뿐이었다. 나를 보던 친구들의 동정 섞인 눈빛, 그 속에 담긴 당혹감, 그리고 친구들이 안아주기엔 너무 거대하고 깊었던 내 우울감은 그 날로 내 안에 묻어두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대학에 들어갔다. 운이 좋게도 원하는 대학은 아니었지만 좋은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고, 그렇게 내 과거에서 탈피할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이 주어졌다. 성인이 됨과 동시에 담배를 폈고, 술을 많이 마셨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술을 먹는 게 약효를 느끼기 때문이라며, 제발 술을 끊으라고 말했다. 그럴수록 병원에 가는 게 짜증만 나서 술을 먹었고, 담배를 피고, 친구를 만났다. 뜻하지 않은 이별이 괴로워 연애 같은 건 관심 없었을 무렵, 나를 너무 좋아한다는 남자를 만났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사랑을 한다고 생각했고, 많이 사랑했다.




두 번째 이별 또한 예기치 않은 순간에 찾아왔다. 처음 내가 겪었던 엄마와의 이별은 더 이상 당신을 만날 수 없었음에 고통스러웠다면, 남자친구와의 이별은 내 사랑이 부정당하는 것에 대한 충격이었다. 더 이상 네가 좋지 않아, 라는 말이 그렇게 사람을 산산조각낼 수 있는 말인지 몰랐다. 나를 좋아하던, 좋아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유였던 연애의 끝이 너의 변심이라면, 다시 사람들에게 내 전부를 보여주는 일 따위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석기도 또 이해하기도 하는 마음이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 많이 상처받았던 그리고 상처받는 중이었던 것 같다. 친구는 많았지만 그 중 내가 정말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아이들이 나에게 속마음을 토로할 때 난 그게 별 일 아니라고 치부하고 대처했다. 그렇게 떠나보낸 인연이 지금의 나에겐 꼭 필요한 인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중 정말 비슷한 사람을 만났다. 온갖 허울 뿐인 말과 성격으로 무장하고 비밀 하나 털어놓지 않는 나에게 자기의 바닥을 드러내며 다가와준 친구들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걸 말할 수 있고, 또 내 전부는 아니겠지만, 못하겠지만 많은 부분을 보여줘도 같은 감정선에 서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난 내 상처로부터 단 한순간도 자유로웠던 적이 없고, 아마 앞으로도 이러한 우울감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테지만 적어도 요즈음의 나는 내가 어떻게 이 절망 속에서 탈피할 수 있는지를 배워나가고 있는 것 같다. 나를 드러내고, 보여주고, 표현하고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 아마도 지난 날 내가 겪은 일들에 대한 작은 위로로 좋은 사람들이 곁에 오가고 있는 건 아닌지.




이 브런치는 그런 나에 대한 작은 기록이다.

왜 나의 우울증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지난 5년 간 이 감정이 나를 얼마나 갉아먹었고, 또 나는 어떻게 이겨내고 때로는 파묻히고 있는지. 그리고 이런 나에게 잠시나마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두 고양이들에 대한 기록.




내 별 일 없는 경험이 당신들에겐 하나의 위로가 되길 바라며,

글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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