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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정N Apr 16. 2019

영화 쿠폰 하나와 나와 내 아버지

블로그를 한참 할 때, 친구 부탁을 받고 영화 관련 포스팅을 올려준 적이 있었다. 고마움의 표시로 친구에게서 왓챠 쿠폰 코드 6개를 받았다.  dhndjem76, dndncke38.. 뭐 이런 식으로 나열된 코드였는데, 나는 왓챠를 몇개월 단위로 결제하여 사용하고 있던 터라, 최근에 영화 보는 거에 재미가 들리신 우리 아버지께 코드를 전달했다. 몇 개월 전의 그 일이 나에게 이렇게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을 만들 줄 꿈에도 모른채.





아빠, 이거 쿠폰 등록하면 돼.

dhndjem76

dndncke38

dndkdkk09

..




그런데 며칠 뒤, 코드가 작동이 안된다는 거였다. 왜이러지 하며 친구에게 묻자 기존에 등록한 사용권이 만료된 다음에야 사용 가능하단 말에, 다시 아빠에게 만료가 된 다음에 등록하라며 언지를 주고 또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오늘, 또 다시 쿠폰이 안먹는다는 말에 친구를 들볶으며 안되는 이유를 찾으려 애썼다. 한참을 둘이 머리 싸매고 찾아봐도 답이 나오지 않아, 내일 cs에 물어본다는 친구에게 주기 위해 아빠에게 쿠폰이 작동이 되지 않는 캡처본을 달라고 해서 사진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한참을 웃었다. 



여섯 개의 쿠폰 코드는 한 번에 하나씩이 아닌, 전체가 복사되어 붙여져 있었다. 


아 나는 너무 웃겼다.

그리고 너무 슬펐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당연한 쿠폰의 코드가 그리고 작동 방식이 내 아버지에게는 너무 어려웠던 거다. 한 줄에 하나씩이 당연한 나의 생각과 그 모든 코드를 한 번에 입력하는 아버지의 생각은 우리 세대의 흐름이자 차이였고 나의 세월과 아버지의 세월의 차이였다. 나에게 너무 쉬운 것들이 나의 아버지에게는 딸에게 두어번을 물어야만 해결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그걸 몰랐다. 


내 아버지는 19살 때까지 나와 가장 먼 사람이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뭘 잘하는지도 모를 것 같았던 아빠는 엄마의 죽음 이후 우리의 유일한 보호자가 되었다. 가장 먼 곳에 서있던 아빠와 나는 그렇게 서로에게 한걸음씩 걸어왔고, 그 끈질긴 서로의 노력 하에 지금은 꽤나 가까운 곳에서 서로를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보듬고 있었다. 어색하지만 서툴지만 그렇지만 우리의 최선의 방식으로. 



그런 내 아버지도 나이가 들었구나. 

어리광을 피며 지난 4년 간 아빠의 지갑을 갉아먹던 나는 어느새 아빠에게 새로운 걸 알려주는 사람으로 컸구나. 그리고 언젠가 나는 이 사람에게서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 시절의 나를 찾을 수 있겠구나. 많은 시간이 지났구나. 우리의 어린 시절에서도, 우리가 겪었던 낯설음의 관계에서도 그리고 우리가 겪었던 지옥에서도. 시간은 그렇게 우리의 변화를 몸소 휘감아왔다. 



나는 한참을 웃고 또 한참을 울었다. 시간은 우리의 관계를 가깝게 만들어줬지만 또 언젠가는 우리의 이별을 만들거다. 나는 아빠에게 가르쳐드려야 할 게 하나씩 늘어날 거고, 내 어린 시절을 좀 더 많이 발견할 거고, 그런 우리는 어느샌가 미래 너머 끝을 향해 시선을 돌릴 거다. 나는 그걸 또다시 감당할 수 있을까? 처음으로 또 다른 두려움을 마주했다. 내 어린 시절에 엄마의 죽음이 있었다고 해서 아버지의 죽음이 미뤄지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그걸 이제야 알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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