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식 아파트 그 마지막 작은 방에서
학교를 졸업할 때쯤 조심스럽게 한 친구에게 내가 당했던 폭력을 말했다. 네가 여전히 나를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는 그 수많은 시간 동안, 나는 그런 말을 하는 너를 지우려고 애썼어. 몇 년이 넘게 흐른 지금에도 그건 내가 함부로 말하고 또 그런다고 지워질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너는 내 친구였고, 내 친구의 친구들이었다.
그들의 잘못과 절대 같은 값을 가질 수 없지만, 나는 내가 남들에게 저지를 수 있는 혹은 저질렀을 수 있는 잘못이 많다고 생각했고, 타인에게 상처 주고 상처 입는 법을 너무 빨리 깨달은 덕에 많은 걸 경험하면서도 그 모든 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묻고 살았다. 그리고 정말 웃긴 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방어하려고 그 모든 걸 내 기억에서 지웠다. 너는 내 친구고 선배고 그러니까 난 이걸 문제 삼지 않을 거야.
내가 상처 받았다는 사실을 다시 쥐어짠 건 놀랍게도 다시 너였다. 오늘 우리의 만남에서 너는 나에게 내가 당신에게 데어 울고불고 슬퍼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고, 진짜 웃기지만 사 년 동안 그걸 잊고 살던 나는 그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다시 그 기억을 꺼내 되짚어야 했다. 내가 다시 기억하지 못할 정도의 상처가 당신에겐 오랜만의 안부이자 대화였다.
나는 분명 아무렇지 않게 또 당신을 만날 거다. 사 년 전 너를 피해 구석에서 울었던 나는 이젠 너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치는 사람이 되었고 네가 준 상처들을 글로나마 토해내는 용기도 생겼어. 둘 이선 만나지도 연락하지도 않을 테지만 난 여전히 모임에 나갈 거고, 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거고, 그 얘기를 들어도 큰 상처가 아니었던 것처럼 다시 웃으면서 반응할 거다. 그래서 아마 너는 평생 내가 입었던 상처의 크기와 깊이를 모르는 채로 살아가겠지.
사람을 만나는 건 언제나 내 축복이자 불행이었다. 지난날 너무 많은 시간을 사람들과 보냈고, 또 그만큼의 시간을 후회하고 용서하고 자책하는 데에 보냈다. 그럼에도 왜 그 사람을 또다시 마주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왜 아무렇지 않은 척 구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그저 난 그런 사람일 뿐이다. 주변의 애정으로서 삶의 의미를 찾지만 예민하고 또 전전긍긍해하는 불완전하고 불안한 나.
그런 나는 한평생 친구들 사이에 둘러싸인 채로 살았다. 때로는 내 진심으로, 가끔은 다른 것들로 마음을 얻었고 그 감정들은 불안해하는 내 주위에서 두터운 벽이 되어 나를 감싸 안았다. 그게 다시 나를 향하는 가시가 된다는 걸 아는 지금, 내가 선택해야 하는 방향이 뭔질 알면서도 또다시 기대를 걸고 같은 실수를 반복할 내가 싫다. 내가 준 사랑만큼만 위로받고 싶다. 내가 바라는 건 별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