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부하 직원 정보를 넘기다
눈을 감고 귀를 닫고 가슴속에 꽁꽁 묻어버렸던 이야기. 이 모든 것의 끝과 시작.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고 했던가. 세련된 명품 옷차림과 세련된 말투, 출중한 능력과 설득력을 겸비하고, 요리조리 기회를 잘 포착해 다른 그룹장들보다 훨씬 젊은 나이에 초고속 승진을 한 사람이었다.
그의 능력을 보란 듯 항상 일반 직원들의 월급으론 갈 수 없는 강남 유명 호텔 뷔페나 오마카세 일식집 등 비싼 레스토랑에서 회식을 제공했고, 가장 비싼 항공사의 VIP석을 타고 그의 고향인 미국과 전 세계를 오가며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성공한 삶'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뛰어난 매니지먼트 스킬로 팀원 한 명 한 명을 세심하게 분석해 조직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끌어낼 줄 아는 뛰어난 리더십을 가진 상사였다. 또한, 어려움에 처한 팀원들을 위해 기도하고 성경 조언을 해주는 교회 셀장과 같은 역할을 맡았다. 신천지인이고 아니고를 떠나 능력만 놓고 보면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한 상사였다.
한 때 인생 롤모델로 삼을 정도로 존경했다. 그처럼 성공해서 능력을 인정받고 눈부신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런 나를 알아본 신천지는 이런 롤모델을 앞세워 서서히 트루먼 쇼로 끌어들였다. 마치 나 또한 그처럼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왜 단 한 번도 등잔 밑이 가장 어둡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을까? 퇴사 바로 직전까지도 그를 너무나 신뢰하고 존경했기 때문에 3년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회사 내 소수 인원만 받는 기독교 동아리 회장이었으며, 외부에서 따로 성경 교재를 가져와 성경 공부를 하곤 했다. 하지만 그 동아리는 내가 입사 전 갑자기 사람들이 다 나가서 없어졌고, 그 동아리의 팀원으로는 그 상사와 한 인사팀 여직원만 남았다. 직원들 중 그 누구도 그의 교회가 어딘지 모르지만 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잠깐 한국에 인턴을 하러 왔다가 10년째 정착한 그에게 한 번 이런 질문을 했다. 프로그래머면 미국에서 일하는 게 훨씬 기회도 많고 연봉도 많이 받을 텐데 왜 돌아가지 않냐고. (회사 내 미국인 인턴들은 연봉 차이로 모두 돌아감)
처음에는 한국이 더 안전하고 살기 편하다며 두리뭉실하게 넘어갔으나 나중에 또 비슷한 얘기가 나왔을 때 미국에 계신 부모님과 트러블이 있다고 얘기했다. 이 때도 그저 복잡한 가정사가 있나 보다 생각하고 넘어갔다. (신천지는 부모님이 애타게 찾을 경우 신도를 해외로 보내버려 연락을 단절시키거나, 한국에 왔다 낚인 외국인들 역시 철저한 감시 아래 발을 묶어둔다.)
어째서 하고 많은 신천지인들 중에 한국에 사는 한국인이 아닌 캐나다에 사는 캐나다인 P가 입사 당시부터 접근해왔는지 생각해보면 신천지의 캐나다 지부들은 규모가 작아 캘리포니아와 뉴욕을 본부로 두고 연결되어 있는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고향이라던 캘리포니아 외에도 여행 목적이라며 뉴욕, 텍사스 등 여러 주와 호주, 독일, 필리핀, 인도 등 여러 국가들을 꾸준히 오갔는데 신천지인 Y 어학원 부원장과 청년들을 해외로 수출시키는 이명박과 친한 어떤 한인 협회의 시드니 지부 부회장이 접근한 이유 또한 퍼즐이 맞춰진다.
그는 종종 내 방에 들려 자리에 없을 때면 열심히 하라고 쪽지를 남긴다던가 작은 선물을 남기고 가곤 했는데 팀원들을 진심으로 아끼는 천사 같은 상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무슨 행동을 해도 전적으로 신뢰하고 믿었다.
그러나 어느 날 내 책장에 꽂아두었던 회사에서 테스트 한 MBTI 결과물이 없어졌다. (신천지 포섭할 때 MBTI, 애니어그램 사용) 그 팀은 팀원들의 MBTI 테스트 결과물을 그룹 게시판에 공개하는데 거기에 필요해서 가져갔나 하고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어느 날은 출근하니 내 자리 쓰레기통에 버렸던 메모지가 다음 날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걸 발견했다. 꾸깃꾸깃 접었던 메모지가 펼쳐져 있었는데 읽고서 다시 버리는 걸 까먹은 듯하다. 순간 싸했으나 일이 바빠 그냥 넘어갔다.
그 당시 교회를 열심히 다녔어서 이어폰으로 교회 말씀을 들으며 일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와서 교회에 너무 빠지지 말라고 나무라곤 했다. 기독교 동아리 회장이 교회 말씀 들으면서 일하는 걸로 뭐라 하니 의아하긴 했지만 그냥 일에 더 집중하라는 말로 해석했다.
직원들이 회사를 대거 이탈할 때 그는 멘토 시스템을 적용해 3명씩 팀으로 묶어 항상 같이 다니게끔 했는데 서로 소속감을 느끼고 케어하라는 취지라고 했다. (이 멘토 시스템은 신천지의 3:1 잎사귀-열매 시스템과 굉장히 흡사하다.)
시간이 흘러 신천지인 31번 확진자의 코로나 사태로 나라가 쑥대밭이 되었다. 나와 팀원들 모두 신천지를 욕할 때마다 기독교 동아리 회장이라던 그는 항상 아무 말 없이 침묵하거나 내가 일을 열심히 안 한다는 이상한 핑계를 대며 꼽을 주곤 했다.
그러다가 몇 주 뒤 갑자기 나는 다른 팀으로 전배 되었는데 전배 된 이후로 그는 내 인사를 무시하고 찬바람을 쌩쌩 휘날리며 모르는 사람 취급했다. 그때도 이제 같은 팀이 아니어서 아는 척하고 싶지 않은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그렇게 그는 내 기억에서 잊혀 갔고 그를 거의 잊었을 무렵 Y 어학원 원어민 강사 P와 법적 분쟁이 붙었다.
그 와중에 원래 다니던 교회도 사이비란 걸 알게 되면서 종교라면 치를 떠는 나날을 보내던 중 갑자기 그가 밥을 먹자고 불러냈다. 그동안 모른 척하고 다니다가 갑자기 밥을 사준다길래 떨떠름했지만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넌지시 물어보길래 다니던 교회도 그만뒀고, 이제 종교에서 모두 손을 뗐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가장 믿고 신뢰했던 기독교 회장의 대답은 너무나도 의외였다.
신앙심이 부족하네.
두 사이비에서 겨우 탈출한 내게 온갖 성격적 이유를 대며 나의 신앙심이 얼마나 부족한 지를 밥 먹는 내내 지적했다. 다른 오만하고 가식적인 기독교인들과 다를 바 없는 모순적인 그의 모습에 회의감을 느껴 나는 더욱더 기독교와 담을 쌓고 멀어져 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퇴사를 앞두게 되었다. 그를 찾아가 그때 그 말이 나에겐 상처였다고 털어놓았다. 그러자 그는 자신은 절대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으며 만약 했어도 네가 오해해서 들었을 꺼라며 역으로 가스라이팅을 하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또한 그는 회사에 성경 교재를 가져온 적도 없고 성경 공부를 한적도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그 동아리를 아는 직원들은 모두 기억하고 있음)
그러면서 매일 그 인사팀 여직원과 돌아가며 어디로 이직하는지 끈질기게 물었다. 신천지에 또 미행당할 수도 있어 회사에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하니 (신천지인들이 매일 회사 앞에 찾아오고 회사에 바뀐 번호 알려줄 때마다 신천지인들이 추가함) 그러면 내겐 영문 추천서를 써줄 수 없다고 거절했다.
알았다고 수긍하니 다음 날 또 와서 알려주면 써줄 수 있다며 추천서를 미끼로 집요하게 묻는 그의 모습에서 신뢰라는 가면이 벗겨져 나갔다. 이 시점부터 왜 그동안 그가 종종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해왔는지 의문이 들어 대뜸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룹장님, 교회가 어디라고 하셨죠?
추천서를 미끼로 유혹하던 악마는 갑자기 침묵했다. 그리고 아무 말도 없이 조기 퇴근을 하고 사라져 버렸다. 다음 날 다시 한번 묻자 그는 끝까지 대답해주지 않고 나를 피해 다녔다.
교회명 말하길 거부하는 기독교 동아리 회장을 뒷조사하니 그는 이중 번호를 사용(신천지인들은 3300원짜리 투 넘버 사용) 하고 있었고, P의 시몬 지파 추수꾼 동료 중 다른 미국인 교포가 추가되어 있었으며, 그의 SNS에는 충격적인 사진들이 올라와 있었다.
하늘, 빛, 열쇠 이 세 사진만 달랑 올라와 있었는데 신천지 세뇌 교육을 받지 않았으면 절대로 그 의미를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캐나다인 P에게서 비유풀이 세뇌받았기에 이 세 사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하늘 = 장막
빛 = 진리의 말씀
열쇠= 천국의 비밀을 여는 지혜
그 사진의 덧글에는 그의 이름에도 ‘빛’이라는 뜻이 있는 것이 좋다는 덧글과 “개천……”이라는 덧글이 있었다. Open Heaven (열린 천국)을 좋아하기 때문에 하늘을 좋아한다던 그의 말과 우리가 천국의 문을 열어야 된다고 매일 지껄이는 P의 말이 오버랩되며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그가 한국으로 인턴을 왔던 당시엔 신촌에 있는 외국인들을 위한 교회에 다니다가 갑자기 SNS 상에서 모든 종적을 감추고 다니던 교회도 그만뒀다.
그의 친구 목록엔 모두 엄청나게 독실한 기독교인들만 추가되어있었는데 그중엔 Y 어학원 강사들이 꽤 있었다. 특히 한 캐나다인 원어민 강사와 굉장히 친한 듯한데 그 원어민 강사 역시 P와 동일하게 토론토 출신의 신사도 계열이고, 10년 전 그 상사와 같이 카페에서 만나 성경 공부를 한 사진들이 있었다.
신촌 위장 교회에서 포교 활동하는 토론토 신사도 교회(신사도의 끝판왕) 출신 Y 어학원 강사 P를 내게 붙인 이유에 대해서 마지막 퍼즐이 맞춰졌다. 그 당시 나는 신사도 교회를 다니고 있었고 다시 해외로 간절히 나가고 싶어 했다. P에게 나는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얘기했을 때 "아니 넌 나랑 같이 캐나다로 가야지."라고 했던 것은 앞으로 북미(신천지가 가장 포교 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는 대륙)에서 포교 활동을 하며 우리와 같은 신사도 교회 신자들을 포섭하라는 뜻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신뢰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누누이 이야기해온 그는 3년간 쌓아온 신뢰를 끔찍한 거짓말로 주춧돌까지 무너뜨렸다.
사기 범죄 집단 신천지는 정확히 내가 누구에게 현혹되고, 누가 내 현실 판단 능력을 흔들어 놓을지를 알고 그 두 사람을 붙였다. 인생 롤 모델인 직장 상사와 혹여나 자살할까 두려움에 떨게 한 마약 중독자 전남친은 실시간으로 나의 프라이버시를 직장 안과 밖으로 공유하며 트루먼 쇼를 하고 있었다.
부하 직원을 장기간 동안 속여 신천지로 끌어들이고 인생에서 겪지 않았어야 할 것들을 겪게 한 것은 매우 괘씸하고 배신감이 드나 근본적으로 나는 그와 같은 삶을 살고 싶은 건가에 대한 의문 또한 들었다. 영혼을 팔아 프라다와 같은 명품을 걸치고 부를 과시하며 높은 자리에서 인정받는 삶을 사는 게 내가 정말로 원하던 삶인 걸까?
그의 세련된 모습 이면에는 신천지에서 맺어준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결혼 생활로 인한 갈등, 미국에 남아계신 노부모님을 걱정하던 그늘, 그리고 공허함이 있었다. 나는 정말로 그처럼 되고 싶은 걸까? 내 인생의 목표와 가치는 정말로 돈과 명예, 사회적 인정인 걸까? 이에 대해선 아직까지 답을 찾아나가고 있는 과정이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주인공 앤드리아는 악마 상사 미란다의 전화를 받지 않고 유유히 자기 꿈을 좇아 떠나버린다. 악마 상사인 미란다에게서도 배울 것은 있었으며 이는 훗날 앤드리아의 자양분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신천지인 악마 상사에게서도 배울 점은 분명 있었다. 악마에게 지불한 대가는 너무나 크지만 그의 뛰어난 매니지먼트 스킬은 훗날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갔을 때에 분명 필요한 스킬이며, 그가 내게 얘기했던 한 조언만큼은 지키며 살고 싶다.
네가 더 위로 올라갔을 땐 저 사람들보단 더 나은 사람이 돼서 저 사람들의 행동을 되풀이 하지 말라고.
그 조언 하나만큼은 악마의 거짓말들 중 유일한 단 하나의 진심이었다고 생각하며 나는 그와는 다른 방법으로 실현해 나갈 것이다.
타락한 정치권과 기업, 사이비 종교, 전쟁 범죄자가 손을 잡고 국가를 뒤흔들어 공정과 상식이 무너진 사회에서 서로가 속고 속이고 배반을 일삼을 때,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신뢰를 기반으로 더 가치 있는 사회로 발전시켜나가는 리더가 될 것을.
앞으로 5년간의 대한민국이 어둡다. 대한민국의 화폐 가치와 국가 이미지는 나날이 곤두박질치고, 무당, 신천지, 친일파 등 정상이 아닌 것들이 더 당당하게 사회로 나와 무엇이 정상인지 알 수 없도록 흔들어 놓고 있다.
신천지와 형제 지간인 통일교와 결탁해 여러 사람의 인생을 파탄 낸 아베의 피살에 대해서는 일말의 동정심조차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