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의 독서
한 줄 소감 :
권력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공직사회의 괴이한 작동방식, 그 속에서 살아가는 공무원들의 합리적인 무능력
나는 이 책이 출간될 줄 예상하고 있었다.
내게 예지력이 있다기보다는, 책이 출간되기 전 이 책의 전신으로서 브런치스토리에 올라왔던 <사무관은 이름이 없다>라는 브런치북을 접했을 때부터 ‘이 작품은 필히 출간될 것 같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완결성, 적시성, 필요성을 고루 갖춘 글이었다. 동네 도서관에 책이 구비되기만 하면 바로 읽어볼 생각으로 기다리고 있다가, 참지 못하고 서점에서 구입해서는 이틀 만에 다 읽어버렸다.
이 책은 행정고시 출신의 문체부 소속 5급 사무관이 4급 서기관으로 승진하자마자 의원면직 후 1년 간 써내려 간, 단순한 에세이가 아니라 내용의 밀도와 표현의 탁월함을 고루 갖춘 일종의 르포르타주이다. 저자는 일명 ‘철밥통’으로 표현되는, 대중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공무원 및 공공기관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의 근원이 무엇인지, 그리고 실제로 공직사회가 어떻게 하등 쓸모없는 가짜 노동과 권위의식에 찌든 의전으로 채워지는지, 그리고 그 노동과 의전에 질식하며 생기를 잃어가는 공무원들의 마음은 어떠한지, 그 시들어가는 공무원들은 이에 따라 어떻게 ‘영리한 무능’을 체득해 나가는지 등을 자세하고도 섬세하게 설명해 나간다.
공직사회는 정치권이 뿜어내는 어둡고 끈적한 권력욕을 뒤집어쓰고 있을 수밖에 없다. 기관장이 되려면 각종 추천과 제청과 인사청문회와 임명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 긴 과정은 결국 정치권의 아가리와 목구멍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최상층부의 권력 창출과 유지를 위해 모든 부분에서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것이 공직사회의 태생적 한계인바, 여기서 모든 문제는 시작된다. 새로 부임한 기관장의 성향에 따라 기관 전체의 정책방향은 갈대처럼 흔들린다.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은 문제가 없어 보여야 하며 문제가 되더라도 그에 대응하고 있다는 모습을 연출해야 하기에, 아무도 읽지 않는 작은 기사 몇 줄이 뜨면 호들갑을 떨며 언론대응에 목숨을 건다. 기관장의 체면과 권위를 살리기 위해 각종 보고에 사활을 건다. 보고는 정보전달이 목적일 뿐임에도 그 양식에 목숨을 걸고 자신만의 보고서 작성방식에 자부심까지 느끼는 변태적 사태까지 발생한다. 실질은 없고 형식이 실질의 전부가 되어버린, 껍데기로 속을 꽉 채운 아웃사이드-인(outside-in)의 기괴한 구조를 가진 괴집단이 되어버리는 것인데, 이것은 각 기관과 기관장이 정치권력과 돈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는 한 피할 수 없는 비극적 운명이다. 공직사회는 상하 수직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는 좁고 깊은 우물이다.
공무원은 그 우물 안의 개구리다. 문제는 공무원이 서식하는 우물 안에는 높은 직책과 힘 있는 보직을 가진 황소개구리도 있다는 것이다. 공무원 개개인들은 지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다. 따라서 누구나 가지고 있는 지극히 정상적인 합리성에 근거하여, 움직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으며 무사안일함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포식자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너무 눈에 띄어도 문제, 너무 눈에 띄지 않아도 문제인, 그래서 전략적으로 ‘중간주의’를 택하게 되는 공무원들은 그들이 전부 철밥통이어서라기보다는 그렇게 해야만 직장생활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 말미에 공직사회의 여러 문제들 중 몇 가지를 해결할 방안들도 제시하지만, 공직사회의 태생적 오류를 손대지 않는 이상 변화는 불가능할 것이다. 공무원들 중 합리적인 사람들은 영리한 무능을 택하는 것이고, 능력 있고 용기 있는 사람들은 저자처럼 다른 길을 찾아 스스로 조직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길 외에 다른 길은 없다고 본다. 이 책은 후자의 길을 택한 사람이 쓴 만큼 그 의미가 남다르다. 왜냐하면 이 책은 후자의 길을 택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책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