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의 독서
한 줄 소감 :
균형 잡힌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면, 당신과 세상 사이에 헌법을 두어라
이 책을 구입했던 건 대략 3년 전쯤인 듯한데, 과거 문유석 작가의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어봤던 경험을 토대로 재미있을 것 같아서 덮어놓고 구매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업무량이 너무 많고 고객 상대에 넌덜머리가 나는 격무부서에서 일하고 있었던바, 이 책에서 다루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느니 자유와 평등의 관계라느니 등등의 아름다운 말들이 전혀 와닿지가 않았고, 인간 혐오와 염세주의로 가득했던 당시의 나는 책을 몇 장 들추다가 왠지 모르게 짜증이 나서 그냥 덮어버렸다. 그러고서 부서를 옮기고,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책장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는 다시금 집어 들어 읽어보게 된 것이다. 편한 부서에서 심신을 정화시키고 난 후에 이 책을 다시 읽어보니 내용이 재미있고 실하다. 역시 스트레스는 여러 모로 나쁘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이 책은 우리 사회에서 아주 흔하게 다뤄지는 논쟁거리들 - 사형제도, 도박, 마약, 자살, 범죄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공정성, 혐오, 인공지능 등등에 대해 우리나라 헌법의 근간을 이루는 가치와 논리에 입각하여 하나하나 다뤄보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헌법이라 하면 사실 대한민국의 최상위법으로서 추상적이고 이상적이며 포괄적이기에 삶을 살아감에 있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구체성과 직접성은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저자가 책 초반부에 말하듯 헌법은 '내 권리를 보장한 계약서'로서 그 안에 담긴 조항 하나하나가 현대 민주사회를 구성하고 지탱하는 사회계약의 면면들을 전부 꿰뚫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
1215년 영국 귀족들의 <마그나 카르타>, 1688년의 명예혁명과 권리장전,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 1789년 프랑스 대혁명, 1960년 4·19 혁명, 1979년 6월 항쟁... 피와 눈물로 써 내려간 인류의 기나긴 역사를 통과하여, 우리는 지금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개념을 대전제로 체결된 사회계약을 토대로 지금의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고 있다. 국가와 조직은 나의 내밀한 자유를 침해할 수 없으되, 나의 자유 또한 법에 의해 일정 부분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자유와 시장논리로만 사회를 운용할 경우 생기는 극단적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평등과 최소한의 절차적 공정성이 사회 곳곳에 안전장치로서 심어져 있다. '무지의 베일'과 '최소 수혜자 배려'로 작동하는 정의正義가 사회의 모세혈관까지 뻗어가게끔 타협을 통해 자유와 평등의 균형을 맞춰가는 과정이 바로 정치다. 헌법은 이 모든 개념을 전부 품고 있다.
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대면하게 될 때면, 그저 고개를 돌려 외면하거나 흑백논리로 단순 돌파하고 싶어지는 유혹에 휩싸일 때가 있다. 그럴 때 헌법을 들여다보면 유일무이한 정답은 아닐지라도 비교적 최선에 가까운, 섬세하고도 치밀한 논리전개의 길이 보인다. 그 길을 엿보고 싶을 때 이 책을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