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의 독서
한 줄 소감 :
교육 붕괴와 고용 격변의 이유를 설명하는 신선하고도 놀라운 통찰
이 책의 초판은 일본에서 2007년에 발간되었다. 나는 이 책을 2025년에 읽었다. 그리고 매 페이지마다 감탄했다. 2007년의 일본 사회가 2025년 한국 사회의 많은 부분을 거울처럼 비춘다.
공부하는 일부 학생을 제외하고는 학교 수업시간을 포함한 공교육 시스템 일체를 거부하는 학생들이 있다. 물론 내가 학교 다닐 때도 이러한 교실 풍경은 있었고, 또 그 이전 세대에서도 있었겠지만, 과거에 비해 현재 교권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고 체벌은 옛말이 되어버렸고 치맛바람은 더더욱 거세지고 있으니 교육 붕괴는 이미 돌이킬 수가 없는 지경이다.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에게 뭐라도 한마디 했다간 돌아오는 당돌하고 도발적인 말대답에 오히려 말문이 막혀버린다. 공교육 시스템은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냥 요샛것들이 워낙 싹수가 노랗기 때문에? 가정교육이 엉망이기 때문에?
취업에 별다른 욕구가 없이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니트족, 그리고 알바와 단기고용만을 이어가며 느슨하고 자유로운 삶을 이어가는 프리터족이 늘고 있다. 고용이 이루어지더라도 몇 개월 또는 1~2년 만에 이직을 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냥 요즘 젊은 친구들이 게으르기 때문에? 참을성이 없기 때문에?
이 책의 저자는 우치다 다쓰루다. 올해 들어 우치다 선생의 책을 세 권째 읽고 있다. 읽을 때마다 놀라운 지혜와 통찰을 선보이는 우치다 선생의 저작들은 언제나 나를 성장하게 해 준다. 이번 책은 그 제목대로 하류를 지향하는, 즉 기존에 통용되던 학습과 성장을 거부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딱히 불편하거나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 젊은 세대들의 언동을 분석하고, 그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사회학과 철학을 통해 들여다본다. 책은 저자의 5시간짜리 강연 및 질의응답의 녹취록을 토대로 쓰였다고 한다.
저자는 교육 붕괴의 원인을 시장경제의 작동방식에서 찾는다. 이러한 저자의 시도는 꽤나 신선하고도 실험적으로 들려왔다.
과거 어린이는 가정에서부터 가르침의 대상과 간단한 노동의 주체가 되었다가 공교육 시스템에서의 교육 객체로 자연스레 이관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학생들이 오직 경제적 소비주체라는 자아만을 일찍이 확보하여 이를 공고화시킨다. 화폐를 지불하면 즉각적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등가교환의 법칙, 서비스의 제공자와 소비자인 자신이 대등하다는 관계 설정을 이미 아주 어릴 때부터 습득한 상태이기에 학교에도 그러한 양식과 규범을 그대로 적용시킨다는 것이다. “이걸 배우면 뭐가 좋아요?”라는 말로 어른들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학생들은 결국 ‘이 수업의 효용을 지금 바로 납득시켜주지 않으면 나는 해당 수업을 구매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있다. 선생과 자신을 판매자와 소비자라는 대등한 관계로 설정하니 선생님 말을 안 듣고 대드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자유시장주의가 악의 근원이라는 반자유주의 또는 반자본주의와 같은 극좌성향의 발언이 아니니 저자를 오해하지 말자. 학생들은 현대사회의 기본적인 작동방식에 따라 학교에서도 본인의 위치를 ‘당당한 소비의 주체’로 설정해 놓은 상태라는 것에 집중하자. 이러한 원인은 현대의 많은 교육 문제를 해석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말썽쟁이 학생들은 열과 성의를 다해서 수업을 거부한다. 의도치 않게 수업에 한눈파는 일도 있을 법한데, 그렇게 하지 않고 본인을 다잡으며 최선을 다해서 딴짓을 하고 선생을 일부러 열받게 만든다. 그렇게 해야 본인이 똑부러지는 소비자의 위치를 잃지 않기 때문이다. 중고차를 사러 갈 때는 차에 대해 잘 몰라도 최대한 빈틈을 보이지 않으면서 아는 척을 하며 딜러를 상대로 어깃장을 놓게 되는 법이므로.
저자는 교육의 본질에 대해서도 설명한다(이 내용은 저자의 다른 책 무지의 즐거움과도 연결된다). 지금 당장 내가 가진 30cm의 자로는 측정할 수 없는 다양한 대상들이 세상엔 널렸다. 다양한 척도를 습득하는 것이야말로 학습의 이유이며, 이를 통해 급변하는 사회에 유연히 적응하며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배움의 이유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의 결과를 원하는 학생들은 학교에서의 지루한 배움은 그저 고역일 뿐이다. 30cm 자로 당장 측정되지 않으면 답답해하고, 측정이 안 되는 것들은 그냥 그것이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모른 상태로 넘어가버리기까지 한다. 하지만 배움이란 것은 배움의 당위성을 모른 채로 일단 배움의 한가운데에 던져지고, 그것을 정신없이 통과한 나중에서야 배움의 의미와 쓸모를 알 수 있게 되는 “시간적인 개념”이다. 화폐와 물건의 즉각적인 일시점의 등가교환이라는 “무시간적인 개념”을 교육의 작동방식에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과거와 달리 학벌이 취업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A를 한다고 B로 확실히 이어지는 노력의 시대는 끝났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리스크 사회가 도래하였다.
그럼에도, 결국 성공하는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 노력하는 자들이며, 나 혼자 모든 걸 결정하고 책임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개념이라는 것을 알고서 주변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하며 자신의 저변을 넓혀나간다. 내가 내 운명의 선장이라는, 자기결정이라는 환상에 빠진 것은 오히려 가난한 개인들이고, 리스크 헷지가 불가능한 연약한 개개인들은 고립되어 성공과 멀어진다. 결국 성공하는 사람들만 서로를 지원하며 성공하게 되는 양극화로 이어진다.
골목길에 쌓인 눈을 치우는 일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사회안전망을 위해 필요한 크고 작은 일들은 더 이상 존중받지 못한다. 개인의 창발성을 발휘할 수 있고 높은 연봉을 약속하는 직업만이 각광받는다. 모두가 파랑새를 찾아 이직을 이어간다.
젊은 세대의 빈번한 이직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더 이상 이런 대접을 받으며 이곳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이 분명 자리 잡고 있다.
조직에서 유능함을 발휘할 경우, 그에 대한 보상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일을 잘한다는 이유로 과중한 업무를 떠안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 지점에서 나의 유능함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업무만 늘어나 억울하다는 생각만 쌓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추가된 업무마저 밀고 나아갔을 때 비로소 사후에 ‘아 저 사람은 같이 일하기에 좋은 직원이야’, ‘저 직원에게 의지해도 되겠어’라는 종국의 평가를 얻을 수 있으며, 이때 내가 얻는 보상과 내 주변의 네트워크가 한 단계 올라간다. 노동에도 최소한의 일정 시간을 먹인 뒤에야 그에 대한 합당한 평가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노동이라는 것 역시 화폐와 상품의 즉각적 교환처럼 ‘무시간 모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한다.
모든 것이 돈으로 표준화되었다. 모든 것의 가치판단 척도는 오직 돈이다. 따라서 오직 돈만으로 인생의 성패가 판단된다. 명세서에 찍히는 숫자의 크기, 살고 있는 아파트의 이름, 타고 다니는 자동차,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전시하는 SNS, 연예인들의 부유한 일상을 보여주는 TV 프로그램.. 이 모든 것들이 교육과 노동의 붕괴를 야기하였을 수 있다.
우리는 시간선 안을 오가며 살아가는 존재이고, 나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세상에 존재하는 가치를 가늠하는 여러 도구들을 다시 되찾아야 한다는 것을 저자는 역설한다. 그리고 학생과 젊은 세대들을 위해서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그들의 말을 경청해야 하는지도 나름의 주장을 전개한다.
직장생활을 하는 입장에서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도 도움이 될 만한 신선한 내용이 가득 담긴 책이다. 내용이 워낙 촘촘하다 보니 독후감 몇 줄만으로 정리하기엔 한계가 있다. 두고두고 꺼내서 읽을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