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의 독서
한 줄 소감 :
베르베르 특유의 경량함으로 시원하게 내달리는 유쾌한 상상력
베르베르의 대표작은 역시 그의 데뷔작인 『개미』일 것이다. 발아래 작은 세상을 들여다봄으로써 인간세상보다 거대하고 역동적인 세상을 선보여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한 베르베르는 지금까지도 활발히 저작활동을 해오고 있다. 요즘 나오는 작품들에 대한 평가는 전만큼은 못한 것 같지만, 그의 상상력은 시간이 지나도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솟아나니 그 열정과 왕성함만큼은 대단할 따름이다.
이 작품은 ‘만약 인간이 사후세계의 비밀을 알아낸다면 어떻게 될까’에 대한 소설이다. 내가 읽은 판본은 부모님 댁 서재에 『개미』 옆에 나란히 꽂혀있던 것이다. 어렸을 적에 읽다가 말았던 기억이 나는 이 두 권의 책은 90년대 중반부터 우리집 책장에 꽂혀있던 만큼 종이는 누렇게 변했고 콤콤한 냄새도 난다. 표지 디자인 또한 딱 90년대스럽다.
주인공 미카엘 팽송과 그 일행들은 인간이 죽게 되면 그 직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사후세계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윤회와 환생의 절차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알아내게 된다. 이렇게 ‘영계 탐사의 시대’가 열리고 사후세계의 베일이 벗겨짐에 따라 인간사회와 인류문명은 어떠한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지에 대해, 저자는 특유의 재기 넘치는 필치와 재치 있는 시선으로 자신의 상상의 실타래를 남김없이 모조리 풀어낸다. 베르베르 특유의 문체, 즉 저자가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문학작품들과 사료들, 그리고 저자가 직접 창작한 다양한 조각글들을 전체 서사 중간중간에 촘촘하게 끼워 넣음으로써 읽는 맛을 풍부하게 하는 동시에 독자로 하여금 쉬는 시간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베르베르 작품의 특장점은 뭐니뭐니해도 상상력이고, 특히 그 상상력이 무겁지 않고 경쾌하다는 점에 있다. 베르베르는 인류학적 고찰, 역사적 사실, 과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작품을 전개해나가지만, 작품 전체의 분위기와 내용이 너무 무거워지지 않게끔 그 동원되는 각 분야 내용의 질량과 밀도를 적당히 조절하는 듯하다(작품의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조절하는 건지, 자신의 스타일을 위해 본능적으로 조절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저자 자신이 작품 구동에 사용되는 각종 부품과 재료를 가볍게 맞춤 사용함에 따라, 전체 서사 또한 육중함으로 숨을 몰아쉬거나 중간에 주저앉는 일 없이 가볍고 경쾌하게 앞으로 치고 나아간다. 그럼으로써 베르베르의 상상력은 작품이 전개되는 내내 그 속도와 주행감을 잃지 않고 상상의 시점부터 저 멀리 종점까지 한 번에 시원하게 내달린다. 작품에 올라탄 독자는 시원한 맞바람을 즐기며 독서를 만끽하면 된다.
‘죽음’은 수많은 예술작품들이 천착하는 주제 중 하나다.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노라면 이 작품도 한 번쯤 읽어봄직하다. 너무 심각하거나 진중하지 않아도 죽음에 대해 탐구해 볼 수 있다는 것을 베르베르는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