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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ARON Apr 30. 2018

정치와 정치인, 그리고 투표

장 폴 주아리, 「나는 투표한다, 그러므로 사고한다」를 읽고 쓰다

이미지 출처: 다음 책



책의 제목인 '나는 투표한다, 그러므로 사고한다(Je vote donc je pense)'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Je pense, donc je suis)'의 차용으로 보인다.

저자는 투표와 사고를 연결시키는 것에서 멈췄지만, 궁극적으로는 투표에서 사고를, 나아가 사고를 존재로 연결할 수 있는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책의 난해한 내용과 나의 부족한 이해력으로 인해 고통받으면서, 다음과 같이 크게 두 가지의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다.


1. 정치와 정치인이 가지는 의미

정치란, 본질적으로 '가치의 권위적 배분'(데이비드 이스턴)이라는 학문적 의미가 있으나, '국가의 운영 또는 이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막스 베버)이라는 정의가 좀 더 현실적이라고 본다. 여기서 개인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싶은 부분은 정치란 국가의 '운영'이지 국가의 '통치' 또는 '지배'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치인', 즉 '정치를 하는 사람'을 통치자 혹은 지배자로 여겨서는 안 된다. 이는 현대 사회와 같이 전문 정치인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역량과는 상관없이 얻어진 신분이나 계급체계에 따라 정해진 지배계층이 곧 정치인이던 시절에나 맞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책에서 저자가 얘기하는 '하부구조의 약화로 얻어진 권력'으로 이어지게 된다. 남이 가진 권력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을 선호하는 피학적 정치 성향을 지니지 않은 이상, 특정계층에게 '국가를 통치/지배할' 권력을 부여하는 행위에 시민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이유는 전혀 없다.

현대 사회에서 정치인의 역할은 서로 상충하는 여러 이익집단을 중재하고 사회적인 타협을 이끌어내는 것에 그쳐야 한다. 그리고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경우 그에 따른 대가를 분명히 치러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정치인을 조금은 더 우습게 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 정치를 좀 더 가볍게 볼 필요도 있다. 

비웃음을 사지 않는 정치인과 무게있는 정치를 원한다면, 그 진지함과 무게감을 증명할 의무는 유권자가 아닌 정치인에게 있다.



2. 과대평가된 투표

투표가 가지는 의미는 우리 사회에서 지나치게 과대평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마치 민주주의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투표의 가장 본질적인 전제는 다수의 원칙이다. 이는 많은 이익이 상충하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일 수는 있으나, 절대로 가장 '올바른' 방법일 수는 없다. 

실패한 민주주의 선거의 대명사 격이 되어버린 히틀러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민주적 절차에 따라 다수결로 선출되어 지금은 수감 중에 있는 두 명의 대한민국 전 대통령들만 봐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본다.

이쯤 되면, 국가의 중대사를 투표로 결정하는 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항의 '국민'은 '국민의 다수'로 바뀌어야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다수가 항상 옳지는 않다는 것을 좀 더 자각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다수결 투표에 의해 결정된 사항이라도, 그 정당성과 합리성에 문제가 제기된다면 국민이 그 결과를 굳이 무조건적으로 존중하거나 수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에 더하여, 사회의 소수자들—절대적인 숫자의 의미든, 사회적 의미든—의 합리적인 목소리가 있다면, 다수결을 앞세워 묵살하는 행위 또한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효율성을 아예 포기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기에,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효율적인' 다수결 제도 내에서 유권자 한명 한명이 '올바른' 선택에 표를 던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올바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이성과 정치적 지식을 갖추어 비합리적 선택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우리는 모두 저자가 인용했던 칸트의 말, '민주주의란 인간을 예속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는 자동 출구가 아니다'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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