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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ARON Jan 14. 2018

한식의 품격

이용재, 「한식의 품격」을 읽고 쓰다

이미지 출처: 리디북스


한식의 발전 방향도 아니고 한식의 문제점도 아니고, 자그마치 한식의 '품격'이라는 제목, 그리고 '한국 음식 문화의 적폐 청산!'이라는 거창한 문구가 아무런 장식 없는 흰 사기그릇 위에 적힌 표지가 강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흔해빠진 스토리가 전개될 줄만 알았다.
'방송에 맛집이라고 소개돼서 먹어봤더니 맛대가리 없더라! 이건 우리 한식이 아니다!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했어야지!'라든가, '우리 고유의 한식은 이러이러한 맛인데 지금은 변질되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우리 것을 되찾자!' 정도일 줄 알았는데, 기대와는 많이 다른 책이었다.

책 안에는 한식을, 적어도 우리가 한식이라고 알고 있던 모든 것을 원재료, 양념부터 시작하여 가장 근원적인 부분부터 말 그대로 탈탈 털어버리는 작가의 대담함, 어찌 본다면 오만함마저 가득 차 있었다.
이를 불편하게 여겼을 사람이 많을 것으로 본다. 주제가 주제이기도 하거니와, 이를 말하는 작가의 말투가 그렇게 얌전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전문성을 토대로 비판할 때에는, 특히 한식과 같이 '까방권'을 가진 것에 대해 비판을 할 것이라면 정말 제대로 비판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라 생각한다. 어중간한 양비론 또는 회색지대에 머무는 것은 그 누구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의 한식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불만이 책에서 비판하는 내용과 많은 부분 맞아 떨어졌기에 어느 정도 공감도 할 수 있었다.


우선은 '적당함'이 사라져버린 한식. 우리 주변에서 적당한 가격대에 그냥저냥 먹을 수 있는 한식집에 가보면 높은 확률로 너무 달거나, 너무 짜거나, 너무 맵다. 가끔은 저 셋을 모두 갖춘 식당을 만나기도 한다. 국물을 메인으로 먹는 국밥집이라면 사정이 조금 다른데, 책에서 지적된 것과 같이 간이 전혀 되지 않은 맹탕이 나온다. 식탁에 있는 소금, 후추, 양념장으로 알아서 맞춰 먹으라는 건데, 완전히 조리된 후에 맞추는 간과 조리와 동시에 맞추는 간은 엄연히 다른 것이지 않은가. 직업이 '요리해서 남에게 대가를 받고 파는 일'이라면 적어도 자신이 맞춘 간에 대해 자신감 정도는 있어도 되지 않을까.


반찬 문화에 대한 지적도 평소 내가 갖고 있던 생각과 비슷했다. 지금 대부분의 우리 식탁에서 반찬은 '질보다 양'으로 수렴하는 집합체로 변한 것은 사실이다. 양으로 승부를 하려니까 반찬 간의 조화는커녕 주가 되는 요리와의 조화조차 고민할 겨를이 없다. 이러한 반찬 문화가 개선되지 않는 한 도대체 왜 횟집의 소위 '스끼다시'에는 그놈의 콘치즈가 빠지지 않는가에 대한 내 물음은 절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이쯤 되면 반찬은 '네가 원하는 게 뭔지 몰라 모두 준비했어.' 정도가 되는 게 아닐까. 이건 자율이 아니라 방종에 가깝다.


'만능 양념장', '만능 간장'으로 통하는 획일화 된 양념 또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양념의 본질은 원재료의 맛을 돋우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원재료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준비를 하고 있어야지, 우리가 익숙한 맛을 가지고 온갖 맛을 내는 다른 재료들을 획일화시켜서는 안 된다. 이태원의 고급 레스토랑도 아닌 그냥 '적당히' 제대로 하는 멕시코 식당에 가서 나초 한 접시만 시켜도 찍어 먹을 소스가 3~4개는 나오지 않는가. 하다못해 맥도날드에서 맥너겟을 먹어도 고를 수 있는 소스가 3가지다.


물론 무조건 작가에게 동감만 하면서 책을 읽은 것은 아니다.


일단은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본질적인 부분부터 해체하여 되도록 자세하게 비판을 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그럴 거라면 요리 전문서적을 내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청자에 알맞은 수준의 적당한 설명은 스피드웨건이 되지만, 아무리 좋은 얘기라도 지나치면 설명충이 되는 법이다. 저자 본인도 지적하지 않았는가. '굳이 10이 무서워 0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저자가 지적한 문제들이 다만 '한식'만이 가지고 있는 문제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경험에 의하면 외국도 일정 수준 이상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제외하고는, 너무 달거나 짜거나 하는 문제는 똑같이 있었다. 물론 그 나라의 전반적인 음식 분위기를 파악하기에는 너무 겉핥기식의 경험일지 모르나, 나라를 막론하고 이는 어느정도 식당의 수준 또는 개별 식당의 차이에서도 드러나는 문제점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또한, 저자가 머리말에서 '음식 외적인 문제를 최대한 배제하고 맛에 집중한다'라고는 하지만, 한식이 맛없어진 이유가 사람들이 맛없게 먹고 싶어서, 맛없는 요리를 돈 받고 팔고 싶어서일까. 식당들의 높은 월세, 유통업자의 지나친 중간이득, 협소한 공간 등 현실적인 문제가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는 아닐까. 의식적으로 자제하려고는 하나, 맛 이외의 문제가 글 사이사이에서 새어나오는 것으로 보아 저자가 이를 자각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하기는 힘들다. 이 부분에 대해 따로 책을 낼 생각이 아니라면, 현실적 문제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언급을 하는 것이 맞지 않았나 싶다.


매운맛에 대해 혐오에 가까운 태도만을 취하는 것도 조금은 아쉬웠다. 물론 내 개인적으로도 지나친 매운맛을 정말 싫어하지만, '한식=매운맛'이라는 인식이 나오게 된 근본적인 배경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면 어땠을까. 내 나름대로 짐작해보자면, 우리가 한창 '한국을 세계로, 세계를 한국으로'를 외치기 시작할 때, 우리 고유의 맛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빈자리가 매운맛 밖에는 없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미 우리의 것, 혹은 우리의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들은 대부분 일본이 가져가 버렸고, 그들이 먹지 못하지만 우리는 먹을 수 있었던 것이 매운 것뿐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의 에필로그로 나오는 '한식 발전을 위한 제안 20선'은 나에게 허탈함을 안기며 책을 덮게 했다.
한식 발전을 위해 가장 도입이 시급한 방법론이 무려 오븐이라니, 게다가 오븐 자체가 이미 일정 수준 사용되고 있다니!
이 글을 쓰기 직전, 편의점에서 4300원짜리 고기진짜진짜많구나 도시락과 3500원짜리 치킨 도시락 사이에서 1분간 고민했던 나에게는 너무 가혹한 해결책이 아닌가. 우리한테는 여유롭게 오븐을 사용할 '저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뻔히 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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